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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새, 3]

by 검은개

사랑은 왜 사랑이지, 살에 앙 붙어 사랑되었나, 저곳 소슬바람 타고 살앙 이곳 사랑되었나, 그래 살앙, 살다가 살아가다가 슬그머니 기울고 뻗은 팔은 어긋난 턱처럼 삐걱거리고 가벼운 포옹조차 멀어지는 철제 의자에 앉아, 앙앙 고개 떨궈, 스스럼없이 살기 힘든 건 당연한 거지, 걸까, 그래도 살앙, 살이 스며 삶이 되고 사랑이 살랑거려 삶을 울리는 걸까, 애달프게 울먹이고 살 비비며 눈 닦은 주름으로 삶을 한 줄 한 줄 증명하며 살아가는 걸까, 사는 건 곧 살에 앙 붙어 앙앙거리는 울보 되는 거니, 살갑게 살 맞대어 줄까, 그러니 살앙,


사슴은 가지 뻗은 뿔만큼이나 수려한 녹용이 되었고, 배추흰나비 애벌레는 사랑을 알까? 장수풍뎅이는 밤새 나무 진을 빨고 명 짧은 생을 파다 죽겠지, 플랑크톤은 사랑을 할까? 여름 잠자리 두 마리 엉겨붙어 날아다니고, 잠자리채 들고 쫓아가는 아이들은 알까?


사랑 타령하다 턱에 걸려 발목 삔 사람이 무릎 꿇다가도 꾸역꾸역 걸어가는 것을 보았어, 비슬비슬, 분명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지, 그러다가 간혹 해변을 발견하고 굳은살 박인 팔꿈치로 기다가, 어디선가 부는 비눗방울 살에 닿아 터지는 감촉에 놀라, 위태롭게 투명한 방울, 한자리에 오롯이 누워 한 가닥 두 가닥 하얗게, 지워지는 가닥을 세는 거야, 사랑을 세듯 그렇게 허공을 세지, 그 비눗방울은 누가 불었을까, 사랑, *더럽게도 앙 붙어 팔월에 내리는, 그러니 살앙,


엉망으로 넘어졌다가 얼어서 곱은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던 사람이, 여태 인생을 낭비해왔다는 걸 깨달았을 때,
씨팔 그 끔찍하게 고독한 집구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게 뭔가, 대체 이게 뭔가 생각할 때
더럽게도 하얗게 내리는 눈.
『흰』 (한강),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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