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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잇다, 4] 바다 무덤, 손택수

by 검은개

뱃속에 있던 아기의 심장이 멎었다 휴일이라 병원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식은 몸으로 이틀을 더 머물다 떠나는 아기를 위해 여자는 혼자서 자장가를 불렀다


태명이 풀별이었지 작명가는 되지 말았어야 했는데, 무덤으로 바뀐 배를 안고 신호가 끊어진 우주선 하나가 유영하는 우주 공간을 허우적거린 이틀


그후 여자는 어란을 먹지 않았다 생선의 눈을 마주하는 것도 버거워서 어물전 근처는 얼씬도 않던 여자, 세월호 뉴스 앞에 며칠째 넋을 놓고 있던 여자


한동안 가지 않던 바다에 간다 상처라는 게 흔적이 남아야 치료도 되지 둘 사이의 금기였던 아이들 이야기를 나눈다


버리지 못한 초음파 사진 속 웅크린 태아처럼, 부푼 배를 끌어안고 자장자장 들려줄 수 없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바다




새가 차 앞 유리를 박았다. 곧 비를 토할 듯 하늘이 검게 번지고 있었고 달이 구름에 가려 어둑했다. 운전하며 낮게 나는 새가 차에 부딪히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검은 ‘현’, 바람 ‘풍’ 자를 쓰는 ‘현풍’이란 동네에는 까마귀가 많았다. 어떤 논에는 검은 점들이 조밀하게 모여 뭔가를 쪼고 있었고 음침한 공기에 눈길을 거둔 적도 있었다. 어디를 보아도 반질반질한 검은 깃을 가지런히 쓸고 있는 까마귀. 새는 앞 유리에 금을 내고는 힘없이 떨어져 시야에서 사라졌다. 브레이크를 순간 밟았다가 얼른 다시 액셀을 밟았다. 차에 야생동물이 치이면 그냥 액셀 밟고 지나가라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갓길이 보이고 비상등 켜고 차를 세웠다. 밖으로 나가 차 앞 유리를 보니 금 세 개가 길게 나 있고 핏자국이 보였다. 코팅이 되어 있어서인지 유리창처럼 금방 깨질 것 같진 않았다. 휴지를 찾아 핏자국을 닦고 다시 차에 탔다. 견인차를 부를까, 잠시 고민하다가 시계를 보았다. 9시 48분.

소리를 들은 것은 8시 52분. 씻고 막 침대에 누워 잠들던 참이었다. 희미해지는 의식 사이로 익숙한 소리가 들릴 듯 말 듯하더니, 점점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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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유리의 금이 더 갈라지는 것 같았다. 아니 착시 같았다. 곧 앞 유리가 깨지고 유리 파편이 얼굴을 덮쳐 피범벅이 된 얼굴이 유리에 어렸다. 엑셀에 얹힌 발은 무의식적으로 힘을 주고 속도계가 120을 가리켰다. 어느새 빗방울이 한 방울 떨어지더니 이제는 사이드미러로 뒤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차 안으로 빗물이 들어올 것 같았다.


그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 자신의 혀가 지느러미로 변했다고, 갈증이 나서 하루를 버티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그의 혀를 보았다. 멀쩡히 혀가 붙어 있었고 분홍색 혀에 백태가 껴 하얀 솜털이 나 있는 듯했다. 그의 혀를 손가락으로 툭 치며 이건 지느러미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내 말을 믿지 않고 지느러미가 되었다고 믿는 혀를 이로 긁으며 갈증이 난다고 했다. 가져다준 물을 벌컥벌컥 마시던 그는 잠시 후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그 후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연신 물을 들이켜고 혀를 손으로 건드리며 누워 있었다.

그는 말을 잃어갔다. 정말 혀가 지느러미가 되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그를 부축해 병원에 가자고 했다. 그는 나의 손을 억세게 뿌리치고 소리를 질렀다. 알지 못할 괴성. 그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혀를 잃어 입까지 잃었다고 믿는 듯 알지 못할 소리만 질렀다. 건장한 체격이었던 그는 몸이 말라 갈비뼈가 보이고 얼굴색이 잿빛을 띠어갔다.


10시 17분. 비는 그치지 않고 세차게 내렸다. 셀프 주유소가 보여 차를 잠시 세웠다. 차에서 내려 앞 유리를 자세히 보았다. 빗방울이 앞 유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노크하듯 살짝 차 앞 유리를 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목적지까지는 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다시 차에 탔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를 차에 태우고 바다로 갔었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간절하면서도 혼이 빠져나간 듯 멍한 눈. 한 시간 넘어 달린 도로의 끝에 바다가 보였다. 그는 바짝 마른 나뭇가지가 된 몸을 겨우 질질 끌며 바다가 보이는 나무 둥치에 앉아 한 시간, 두 시간.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몰려와도 그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 따뜻한 차 사 올 게

돌아오니 그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걸까, 찾아 헤맸다. 해안 도로를 따라 걷고 또 걸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걸어서 어디를 갈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다시 그가 앉았던 나무 둥치로 돌아가 보았다. 그는 없었다.


11시 30분. 비바람이 거세지고 앞 유리의 금이 더 갈라지고 있는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곧 깨져 날 덮칠 것 같았다. 다행히 목적지가 보였고 시동 끄고 차에 있는 우산을 챙겨 내렸다. 그리고 걸었다. 그는 혀가 지느러미가 된 이후로 -되었다고 믿은 이후로– 침대 옆에 놓여 있는 무드 등의 스위치를 켰다 끄는 행위를 자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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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듣고 있으면 규칙적인 리듬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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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계속 반복해. 그만해. 지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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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아있다는 신호일까.


나무 둥치에 앉은 그가 말했었다.

- 바다 무덤 같아.

- 잊어.

- 그날 이후 엄마 뱃속에 갇힌 것 같아. 태아가 되어.

- ...

- 아직 나의 슬픔이 부족한 걸까.


그가 앉았던 나무 둥치에 앉았다. 그는 어디에 있는 걸까. 세상이 그가 말한 바다 무덤 같았다.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는, 삶과 죽음이 구분되지 않는.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는 보이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만큼 오래 기다려 보자고 생각했다. 나무 둥치가 비를 머금고 나의 몸이 식어가고 우산에 부딪는 빗방울 소리만 가득한 시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지그시 눈을 감았다. 두둑 두둑 두두둑. 그리고 멀리 낮게 들려오는 소리, 희미하게 그러나 또렷하게, 바다 무덤에서 들리는 노랫소리.


- 자-장 자-장 우-리아가 잘-도 잔-다 우-리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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