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죽을 때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때리는 그가 싫었고, 욕하는 그가 싫었고, 매일 술에 취한 그가 싫었다. 몸이 약해 병들고, 간경화로 간 잘라내고, 발가락 썩어 절단하고, 손가락이 절단되고, 그처럼 바득바득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미워하고, 증오했다. 집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군대를 집에서 다닐 수 있었지만, 일부러 멀리 지원해 경기도로 갔다.
소 팔아 등록금 내주고, 매달 용돈 보내주고, 돈이 부족하면 그에게 문자 보냈다. 방학에도 공부한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고, 명절에도 가지 않는 횟수가 잦았다. 그의 핏줄인 것을 부정하면서 경제적 지원은 당연하다는 듯 살았고, 흐르는 피가 무서워 도망치듯 부정했다.
그가 죽고 장례를 치르고 평장을 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묘. 밭일하다가 해가 정수리에 떨어지면 트럭 몰고 묘로 갔다. 돌 옆에 앉아 매일 바다를 봤다. 그의 죽음이 그렇게 슬프지 않았는데, 매일 갔다. 해야 할 일을 지금에서야 한다는 듯, 역겹게, 그렇게. 한 번은 다른 묘의 식구가 와서 말을 걸었다. 아들이냐, 효자라고, 일하다가 온 거냐고. 그 말에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돌 옆에 앉아 그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아니 용서할 거라고, 아니 용서 못 한다고, 주저리주저리 한 것만 기억난다.
용서라니, 누가 누구를, 위선자를 용서해 달라고 빌어야지, 그를 위하는 척 병실을 지키고, 지긋지긋한 병실을 언제 벗어날지 날짜를 세고, 병이 낫는 것보다 병실을 떠나는 게 중요하다고, 착한 척 위선 떨던, 그가 나를 용서해 줘야 하는 건가, 아닌 건가, 그를 빼다 박았다는 간호사의 말이, 효자라는 옆 침대 할머니의 말이, 듣기 싫어 베개로 귀 막고,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그를 보며, 그거 하나 참지 못하냐고 화내고, 그러면서 휠체어 밀고 산책하고, 점점 병자가 되는 것 같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던, 그의 아픔을 지구 반대편에 일어난, 알고 싶지 않은, 위선자로,
해방될 수 없다. 몇천 번의 글을 써야 해방될 수 있을까, 아니 없는 건가. 기억의 파편이 박혀 피가 멈추지 않는다. 멈추는 건가, 그러다가 마는 건가, 이젠 흐려져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기억은 왜 아직 남아, 아니, 벌인가,
화목한 가정을 보면 부러웠다. 그런 사람에게 끌렸다. 장인어른은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자상함을 가졌고, 장모님은 두 손 가득 밥을 퍼주는 사랑을 가졌다. 그 속에 자란 아내는 해맑았다. 그래서 결혼한 건지도 모른다. 왜 그가 폭력적인 사람이었다고, 아내에게 말을 못 할까, 너도 같은 놈이라고, 속았다고, 알았다면 결혼 안 했다고, 그런가, 그 피가 어디 가겠냐며 경멸할까 봐 그런가, 폭력적인 가정에 자란 사람은 폭력적일 확률이 높대, 결혼 전 남자 집에 가서 가족을 봐야 한다니깐, 라고 말하는 아내 앞에, 그가 죽어 아내가 그를 보지 못한 게 다행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정말 뭔가,
그의 기억에 들어갈 수 있다면, 단 하나만 찾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난 족한데, 그것마저 없을까 두렵다. 그는 가루가 되어 네모에 갇히고, 다시는 알지도, 볼 수도 없다는 게, 꿈에라도 나와 말을 걸어주면 믿을 텐데, 꿈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게, 슬프고, 아프고, 눈물이 나는 게, 이상하지, 정말,
증오가 사랑이 될 수 있을까, 애증이란 단어는 사랑일까 증오일까, 왜 온통 아이러니에 살아가야 할까,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증오하면 증오한다고, 사랑에 증오가 피고, 증오에 사랑이 피고, 그에 대한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고, 그가 술잔에 흘린 눈물만 선명하고, 죽기 전에 숨 쉬지 못해 힘들어하는 그의 얼굴만 선명하고, 가슴을 두드리던 손들만 선명하고,
어둠으로 기우는 마음을 전적으로 다 믿지 말고, 그 감정의 결을 보다 세심하고 다정하게 들여다보면서, 어두운 감정에 속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들에 대해 좀 더 섬세하고 고유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언어로 이름 붙일 수 있다면.
『새벽과 음악』(이제니), P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