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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새, 2]

by 검은개

발가락 사이에 모래알 묻히고 다시 멀어진다 다가가고 멀어지고 다가가다 사라지고 하얀 손길의 감각만 남긴 채 다시 멀어진다 맨발로 서 있었다 하얗고 가느다란 발목을 드러내고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파랗고 검고 하얀 눈썹이 아무렇게나 흩날리는 걸 보며 간혹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희미하게 웃기도 했다 맹물처럼 서 있기도 했다 발끝 가지런히 잘린 발톱 가장자리에 닿고 허락된 것이 여기까지라 가슴을 찢은 적이 있었다 그렇게 투명한 거품이 부서지고 갈라져 눈앞에서 사라졌다 사라졌을까 사라져야 할까, 달이 떠 있는 지구에서 닿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알고 있어서 진정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끝없이 닿기 위해 수억만 번쯤 앞으로 나아갔는데 간혹 흔적을 만들고 결에 결이 더해져 절절하게 마음을 수놓고 허리 숙여 그 큰 눈으로 모래를 보았다 눈물에 젖은 입술을 닦아줄까 흐릿한 눈썹을 쓸어 줄까 수묵화 같은 머리를 감겨 줄까 희망을 품은 적도 있었다 아이가 쌓은 모래성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지구는 도는 것을 멈추지 않고 느닷없이 웅크려 그 작은 어깨가 소멸하고 있었다 빠르게 얼어 가고 투명한 벽이 서서히 높아지고 높아져 발톱에도 닿을 수 없어, 달아 지구야 더 세게 밀어주렴 더 더 더, 부딪고 부서지고 깨져 허공에서 사라진다 해도 하얀 초승달 같은 감각 하나만, 당신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바다, 바다가 되는 꿈을 꾸었다 가슴에 불씨를 피워 타오르는 나를 천진하게 바라보는 당신을, 지켜보는 꿈


바다, 바다가 되는 꿈
파도가 되는 꿈
『물이 되는 꿈』중에서 (루시드폴,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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