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짝은 명자언니만 있는게 아니었다
지영이 아줌마는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엄마는 늘 지영이 아줌마를 큰언니쯤으로 여겼고,
어린 내가 봐도 경우가 분명하고 정많은 어른이었다.
내가 다 크고 나서도 종종 지영이 아줌마와 안부를 나누곤 했는데
역시나 좋은 사람이었다. 따스한 아줌마였다.
그런데 명자언니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내게 지영이 아줌마는 미스테리한 인물이었다.
두 얼굴 중에 어느것이 진짜 지영이 아줌마인지 헷갈렸다.
물론,
지영이 아줌마가 명자언니를 심하게 괴롭힌건 아니었으나
내게 하듯 다정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하듯 넉넉하지 않았다.
내가 어릴 적엔 주말 밤이 되면
TV에서는 영화를 한 편씩 상영해주었다.
영화관은 멀고 비디오도 없던 시절, 일주일 한 번의 영화상영은 큰 즐거움이었다.
보통은 아빠와 드러누워 함께 영화를 보곤 했는데,
그 날은 무슨 특별영화라며 신문 TV편성 프로그램에
사운드오브뮤직이 방영된다는 소식이 적혀있었다.
주목할만한 프로그램들은 상세한 정보도 함께 실렸는데
엄마는 그걸 보여주며, "오늘밤에 지영이 언니네 가서 볼래?" 물었다.
유독 보수적이었던 우리 집안 분위기에는
저녁시간 이후에는 다른 집에 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었다.
친척집 이외에, 어두운 시간에 다른 집에 가 있는 것은 내게 최초의 일이었다. 엄청난 이벤트였다.
전에 없이 할 일을 서둘러 마치고, 엄마를 졸라 일찍 건너간 옆집에서는
언니들도 과자며 간식꺼리를 TV앞 소파에 늘어두고
영화가 시작되는 시간을 목놓아 기다리고 있었다.
난 여기 앉을래, 난 이거 먹을래,
잔뜩 달뜬 언니들의 목소리 사이를
명자언니가 빨랫더미를 들고 휙휙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다녔다.
언니의 발걸음이 가볍지 않아, 나는 좀 맘이 불편했다.
집에 뛰어들어오는 내게 했던 인사도 전에 없이 쌀쌀했던 것도 같았다.
명자언니가 속으로 배신자라고 나를 생각할 것만 같아서 신경이 쓰였으나
그렇다고 눈치만 보고 있기에는 내가 너무 신이 났다.
TV에서는 아름다운 음악들이 흘러나오고, 마리아 선생님과 아이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몰입하기에 부족함 없는 영화였으나, 방해요소는 명자언니었다.
괜히 왔다갔다 하며 TV를 가리거나 근처에서 명자언니는 자꾸 멈춰섰고,
지영이 아줌마는 때마다 "빠릿빠릿 좀 움직이라."고 잔소리를 했다.
나중엔 아예 멀찌감치 자리잡고 서서 TV를 보고 있는 명자언니의 모습에
지영이 아줌마는 한숨을 푹 쉬더니 "와서 보고 해! 될 일도 안 되겠다!" 소리쳤다.
언니는 얄밉도록 까르르 까르르,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달려와 냉큼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기다렸다는 티를 너무 내서, 지영이 아줌마가 기분이 상할까 내가 되려 눈치가 보였다.
소파에 나란나란 앉은 세 아이 옆에 쪼그려 앉은 명자언니.
언니는 엄마 없는 일곱아이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니도 TV안에 들어가
춤을 추고 노래를 했을까.
부자아빠라도 있는 걔네들이 부러웠을까.
마리아선생님같은 새엄마를 꿈꾸었을까.
안방에 들어갔던 지영이 아줌마가 뭔가를 찾으려고 마루로 나왔다.
여기저기 부산하게 뒤지시는데, 영화에 폭 빠진 우리 넷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참을 돌아다니시고 명자언니 자리도 뒤져보시더니, 다들 소파에서 일어나보라고 하셨다.
무엇을 찾고 계셨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으나
여하튼 그 물건은 가영이 언니가 깔고 앉아 있었다.
지영이 아줌마는
"아니 무슨 노무 기집애가 이 큰 걸 깔고 앉아서도 몰라! 곰탱이야 곰탱이?!" 하며
가영이 언니 등짝을 찰싹 때리셨다.
가영이 언니는 여전히 눈은 TV에 꽂아놓은 채, 헤헤 거리며 주섬주섬 자리에 앉는데
가만 보니 한두번 맞은 폼새가 아니었다.
놀란 나와 눈이 마주친 명자언니가 씨익 웃었다.
내게 ‘쌤통이지?’ 묻는 표정이길래, 난감해진 나는 얼른 눈을 돌려버렸다.
아, 등짝은 명자언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영이 아줌마의 손바닥은 모두의 등짝으로 향해 있었다.
나중에 내가 명자언니에게 슬쩍 물었을 때 명자언니는
"가영인 가끔 맞아. 지영인 좀 덜하고. 내가 제일 많이 맞지." 라며
뭐 그런게 궁금하냐는듯 나를 보았다.
"안 아파?"
"아프지. 근데 뭐 그 까짓거. 넌 안 맞아?"
"나는 회초리는 맞아."
"회초리가 더 아프겠다 야. 난 회초리는 안 맞아봤어."
"어. 회초리 엄청 아파."
"등짝은 별로 안 아파. 꿀밤은 좀 아프다."
"꿀밤도 많이 맞아?"
"어. 나도 맞고 가영이도 맞고. 지영이는 안 맞나? 걘 별로 맞을 짓을 안하잖아."
나는 지영이 아줌마를 이제 맘놓고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줌마가 좋았지만, 명자언니 등짝이 안쓰러워서 그 맘이 자꾸 멈칫댔었다.
엄마에게 "왜 지영이 아줌마는 자꾸 명자언니 등짝을 때려?" 라고 묻기도 했었는데
엄마는 그저 "걔가 오죽 뺀질대니." 라고만 대답하기에
엄마도 지영이 아줌마와 똑같다고, 둘 다 너무하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명자언니 얘기를 듣고 나니,
지영이 아줌마의 등짝때리기는 제법 합리적인듯 했다.
안쓰러운 맘을 걷어내고 생각하면
내가 봐도 명자언니가 제일 맞을 짓을 많이 했다.
저만큼 잔소리를 들으면 좀 신경쓸 법도 한데
좀 말을 듣나 싶다가도 이내, 완벽한 도루묵이 되어버리는 언니였기 때문이다.
옆집이 이사올 때부터 명자언니는 그 가족 속에 있었다.
지영이 언니에게 언제 명자언니가 이 집에 왔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글쎄? 어릴때?" 정도로 말하는걸 보니, 지영이 언니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을만큼
명자언니는 옆집 식구들에게 아주 오래된 일원이며 가족이었다.
다른 점이라고는 그저, 피를 나누지 않았고, 나이답잖은 역할을 맡았을 뿐이었다.
아줌마가 나와 엄마에게 보여주는 다정함과 푸근함은 사실,
아줌마의 가족과 우리를 분리하는 경계선이었고 거리감였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나도 엄마보다 지영이 아줌마에게 훨씬 착하게 굴었다. 우리엄마도 지영이 언니나 가영이 언니에게 회초리를 들지는 못할 터였다.
사운드오브뮤직을 함께 봤던 밤 이후에 나는
명자언니가 덜 안쓰러워졌다.
언니의 역할은 아직 맘이 쓰이더라도, 언니의 등짝만큼은 언니탓으로 보였다.
가끔은 엄마 말대로 '저렇게 뺀질대니까 등짝을 맞지.' 하며
마음으로 지영이 아줌마 편이 되기도 했다.
그저 맞을 짓 좀 하지 않았으면 싶을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자라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갔고
맹목적인 믿음보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기 시작하면서
명자언니가 덮어놓고 안쓰럽기만 하지 않아질수록
갑갑하고 이해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횟수가 잦아졌다.
게다가 유치원을 다니고, 국민학교에 입학하며 나의 세상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오전내내 명자언니 뒤를 쫓는 일들은 사라지고, 언니들을 대신할 친구들이 많아졌기에
명자언니는 내게 더이상 비중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다가다 만나면 잠깐의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의,
잘 아는 동네언니 정도로 내 일상에서 조금씩 지워가고 있었다.
명자언니가 기어이 말도 안되는 사건을 일으키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