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양 집사님 7

충분히 아니까. 말하지 않아도. 가족이니까.

by 이정

그 날은 오후수업만 있는 날이라서

집 앞 가게에 가야한다는 집사님과 함께 집을 나선 참이었다.

같은 라인에 사는 이웃들은 모두 안면이 있을텐데

처음 본 아주머니가 엘레베이터에 타셨다.

아마도 방문자거나 이사를 왔거나 했다보다, 싶었다.

그 아주머니는

엘레베이터에서 우리 둘을 곁눈질로 자꾸 보시더니,

1층에서 내리는 집사님을 붙잡아 세웠다.

"살림해주는 분이죠? 하루에 얼마에요?"


아주머니의 말투는 꽤나 고압적이었고,

위아래로 집사님을 훑는 눈동자는 바빴다.

어떻게 알았을까.

집사님의 너무 편해뵈는 몸빼바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와 하나도 닮지 않은 얼굴생김 때문이었을까.

당황한 집사님이 우물쭈물 할수록

그 아주머니의 무례한 표정은 더욱 도드라져서

나는 냅다 집사님 앞을 막아섰다.

"아니에요. 제 이모에요."


그 아주머니는 당황을 한건지, 어이가 없는건지 모르게

휘둥그레진 표정으로 우리 둘을 바라보았고,

나는 집사님 팔짱을 끼며 "이모, 가요." 하며 그 자리에서 끌어내었다.

뒷통수가 따가웠기에 나는 더더욱 집사님의 팔짱을 세게 감았다.

"야야, 니 어른한테 와그라노."

"왜요. 내가 뭘."

"아이고 이 가시나. 글고 내가 와 니 이모고."

"맞잖아요. 우리 가족이잖아요."

집사님은 황당한 표정으로 나에게 끌려 가다가 이내 푸하, 웃음을 터뜨리셨다.

"아이가? 니 진짜 지자리방맹이대이."


아... 나는 집사님이 외할머니가 자주 쓰시던 표현을 쓸 때 참 좋았다.

천방지축인 나와 사촌들을 보고 외할머니는 늘, "아이고야 저 지자리방맹이!" 하셨더랬다.

이왕 지자리방맹이가 된 김에 나는 일부러 더 발걸음을 경쾌히 걸었다.

그 아주머니 때문에 집사님의 기분이 상했을까봐

팔짱을 꼭 끼다 못해, 거의 집사님 팔을 끌어안았다.

뒤에서 우리를 보고 있을지도 모를 그 아주머니에게 보란듯이 그리 꼭 붙어서 걸었다.

이제 좀 놓으라고 집사님은 나를 밀어냈지만 나는 콧노래까지 흥얼대며

"아, 왜요. 좋으면서 괜히 그래-" 라고 어리광도 부렸다.

집사님은 그 날을 '나에게 고마웠던 날' 로 기억하고 있었으나,

내게 그 날은 '집사님에게 처음으로 팔짱을 낀 날' 이었다.


숨어있던 그 날의 기억은

집사님이 나와 통화를 하고싶다는 말에 다시 소환되었다.

내게 고마웠던 기억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 날의 그 이웃아주머니의 무례한 질문 또한 가슴에 맺혔다는 뜻이리라.

어른에게 톡 쏘아붙이듯 말했다고 잔소리를 하고,

귀찮다고 좀 떨어지라고 밀어내기도 하는 집사님 반응에,

내가 과한 반응을 한건가 싶다가, 나중에는

혹시 집사님이 다른 집도 같이 일할 마음이 있는 것을 내가 막아버렸나, 싶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던 집사님은 사실,

상처입은 채였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내게 고마운 마음을 잊어도 좋으니,

그런 상처는 제일 먼저 기억에서 놓았으면 좋았을텐데.

무뚝뚝하고 씩씩하기만 했던 집사님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상처들을 남몰래 간직하며 지내신걸까.

그런 사소한 기억을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었다니

집사님의 속은 생각보다 여리고 보드라웠구나 싶어졌다.

십수년간, 집사님의 딱딱하게 굳은살 투성이 손바닥만 보았지,

숨겨져 있는 속모양을 헤아린 적 없었던 것에 후회가 되기도 했다.


다음 날, 집사님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통을 붙들고 "집사님! 집사님!" 자꾸 반복해서 부르는 내게

예전처럼 웃으시고, 변함없이 "우찌 지냈노." 여전한 말투였으나

힘이 없었고, 말수는 더 적어지셨다.

어떻게 지내시는지, 건강은 어떠신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내 질문을 겨우겨우 따라오는듯한 집사님의 대답은

자꾸 눈물이 나게 만들었다.

이 목소리를 듣는게 정말 마지막이구나, 라는 생각이 맴맴 돌아서

나는 한 치의 틈도 없이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었다.

나와 엄마가 집사님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우리가 궁금하지도 않았는지,

집사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쉼없이 전달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연락을 그리 안 할 수가 있어요 집사님!" 하는 나의 투정에

"실수할까바서 그랬지." 하는 말에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지금 집사님이 얼마나 열심히, 얼마나 정성껏,

이 통화에 힘을 쏟고 있는지 느껴졌다.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조심, 정신을 집중해서 전하고 있는지 가늠이 되니

참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실수는 무슨. 우리가 뭐 남인가."

울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내게 집사님은 담담히 말했다.

"니는 전에도 그카더라. 남 아니라카더라."


집사님은 나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내게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을 꼭 말하고 싶다고, 있는 힘을 다해 전화를 걸었던 집사님은

인사는 커녕, 그 일을 기억하느냐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 아니라카더라.' 는 말에

얼마나 많은 마음이 담겨있는지 나는 충분히 받아들였다.

그 기억을 이 정신으로도 잊지 않고 있었다는,

그 때 그리 나서줘서 참 고마웠다는,

그래서 꼭 그 마음을 전해야 했었다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너무 담담해서 더욱 슬프게

집사님은 그리 내게 전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나는 전화를 황급히 마무리해야 했다.

내가 집사님의 상황을 마음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얼른 건강해지셔서 집에 놀러오시라고,

우리가 항상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며

"나랑 엄마는 집사님 없으면 안돼요. 알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집사님도 나의 그 한마디에 담겨졌던

수많은 마음들을 전달 받으셨을까.

우리가 얼마나 집사님에게 많은 것을 받아왔는지,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고맙게 간직하고 있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오롯이 전해졌기를.

집사님의 마지막 순간을

나와 엄마가 함께 있어주지 못했으나,

우리가 꼭 전하고 싶었던 그 마음은

집사님의 곁에 있었기를.


외할머니에게 달려가 안기며

부탁대로 오래동안 막냇딸을 잘 지켜주다 왔다고,

그 딸의 딸까지도 보담다가 왔다고,

자랑도 하고, 칭찬도 받고,

사실은 여렸던 속마음도 위로받기를.


나의, 우리 집사님.

그 곳의 외할머니가

깊은 주름도 살살 어루만져주고, 두꺼운 손바닥도 보드랍게 쓸어주고,

아팠던 뼈마디마디마다 호호 불어주며

살아 계실 때에, 늘 외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

"고맙대이 고맙대이. 복받으래이."

속삭여주고 쓰다듬어주며 꼭 안아주셨기를.


나의 가족. 우리 집사님.






keyword
이전 28화양 집사님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