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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야 비로소, 오래 전의 안녕을.

이제서야 떠나보내는 그녀를 기리며

by 이정

얼마 전, 식사를 준비하느라 대파를 씻고 있었습니다.

"이정아. 대파는 이리 깨깟이 씻어야 하는기라. 대파에 농약이 그르케 많다더라."

투박한 손으로 구석구석 대파를 씻으며

옆에 붙어 구경하는 나에게 해주었던 양집사님의 목소리.

틈만 나면 부엌일을 하는 집사님 옆에서 배운게 참 많은데

나는 특히나 대파만 보면 집사님이 떠오릅니다.

보라색 잔꽃무늬 몸빼바지에,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다 늘어진 연초록색 티셔츠.

티셔츠를 둥둥 걷어붙여 드러난 튼튼한 팔과 그에 맞는 투박한 손.

그 손으로 어찌나 대파 구석구석을 씻는지,

나는 그 손끝이 고마웠습니다. 내 입에 농약 티끌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집사님의 마음에 행복해져서

기분이 좋아요, 라는 말 대신 "집사님, 날씨가 참 좋아요." 라고 말했습니다.

싱크대 앞의 작은 부엌창문. 그 창문으로 늦은오후의 농익은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집사님은 대파만 들여다보던 눈을 들어

그 햇살을 가만, 쳐다보았습니다.

"날씨가 요상시러워서 내일은 또 변덕을 떨라나..."


그녀의 인생은 참 요상했을겁니다.

무사히 지난 날들을 보내며, 별 일 없던 오늘보다

변덕을 떨지도 모르는 내일을 걱정하며 잠드는 인생이었을겁니다.

집사님의 입이 무거워서인지, 내가 너무 무심해서인지,

나는 그녀의 인생을 속속들이 알지 못합니다.

내가 아는 것은 그저

오빠와 남동생들만 챙기느라 집사님을 식모처럼 부렸던 친아버지에게 배운대로

무뚝뚝하고 매정히 대해도 늘 자신을 지켜주던 성미언니와

낯도 기억나지 않는 친정엄마 대신

푸근히 품어주었던 외할머니가 그녀의 눈물버튼이었다는 것 정도.

착한 것 빼고는 볼 것 없던 남편이

세상을 떠나가는 시기는 야속하게도 일찍 당겼고,

성미언니 몫까지 뺏어 애지중지 키워낸 아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집사님의 속을 시켜멓게 태워냈다는 것 정도.

그녀의 남자들은 가혹했으나,

그래도 다행히 그녀 인생의 여자들은 꽤 다정했다는 것 정도일까요.

그 여자들 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기를

나는 집사님과의 마지막 통화로 욕심내보기도 합니다.

외할머니에게 받은 정으로 대를 물려 갚아낸 집사님에게

나 또한 대를 이어받아 때로는 위안이 되어준 이로 존재했다면

그래도 집사님을 떠나보내는 지금,

마냥 슬프지만은 않을 듯 합니다.


대파를 씻을 때마다,

미역국을 끓일 때마다,

걸레를 빨 때에도, 김치를 버무릴 때에도,

예상치 못한 순간, 집사님은 내 곁에 있습니다.

집사님의 곁에서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주지 않은 탓에

나는 그녀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아니, 굳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장례를 다 치뤘다는 성미언니 전화를 받았다고 엄마가 울던

그 순간만 내 머릿 속에서 지운다면,

엄마의 성화에 집에 들른 성미언니에게

뒤늦은 축의금과 조의금 봉투를 기어이 건네는 엄마를 끌어안고

함께 울던 성미언니의 모습을 내 마음 속에서 지운다면,

집사님의 부재는 내 인생에서 이미

달라질 것도, 이상할 것도 없었던지라

나는 이제껏

어딘가에서 집사님이 열심히 회복하며 우리집에 놀러올 날을 세고 있을거라고

다시 만나는 날, "야야, 니 어른이 다 되삤네!" 하며 환히 웃을거라고

그리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세어보면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입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그 날,

대파를 씻다말고 나는

핸드폰 메모장에 '그 시절, 나의 아줌마들.' 이라고 적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집사님을 만나기 한참 전으로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

다른 아줌마들을 써내려가는 동안,

나에게는 내내 집사님을 떠나보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내 마음 속을 뒤적여 보면,

이 연재가 영영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한 켠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양집사님6과 양집사님7의 내용은 원래

한 편으로 발행하려고 했었으나, 아직 미련이 남아 기어이

두 편으로 발행하고는 며칠만이라도 이 순간을 유예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고,

조금 무리하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건만

아이들의 방학을 핑계삼아 연재를 하루 건너뛴 채로 시간을 늘려보기도 했습니다.

그래놓고는 돌연,

집사님이 떠난 후와 성미언니와의 만남을 쓰려던 글은

시작하지도 못하고 건너뛰기로 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기에는

그 숱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덜 익은 모양입니다.

집사님이 내게 종종 말했듯 '고집이 쇠심줄'인가봅니다.


이 에필로그도 차마 시작을 못하였습니다.

무어라고 내 마음을 정리해내야할 지 가늠이 안 되었기에

커서가 깜빡이는 컴퓨터 화면만 노려보며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쪽 귀에서

"야야, 그냥 휘딱 해삐라!" 며

할 일을 느적대거나, 뒹굴대며 게으름을 피울 때마다

내게 잔소리를 하던 집사님의 목소리를 듣기도 한 며칠이었습니다.


비가 옵니다.

어제는 맑더니, 요상스럽고 변덕스런 날씨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여름이불을 싹 빨에 볕에 널자고 남편과 약속했었는데,

쏟아지듯 옵니다. 쉬이 개일 하늘이 아닙니다.

내 뜻과는 무관히, 비가 내리면 내리는대로 받아들이듯,

집사님의 마지막도 그리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애쓰지 않고, 고집부리지 않고,

휘딱 해삐기로 합니다. (집사님, 저 잘했죠?)


이왕 해버리는 김에

생략하려던 양집사님8을 이어갈까 했으나,

이 연재는 이렇게 마무리 하기로 했습니다.

너무 자세히 되짚지는 않고, 속속들이 들여다보지는 않은 채,

나는 이것으로 집사님에게

아주 오래 미뤄둔 인사만 전하고,

내일부터는 다시

회복하고 있는 집사님이 있다고 여기며 살 것입니다.

외할머니를 그리 받아들였듯이

집사님 또한

어딘가에서 종종 나를 보고 듣고 있으리라 생각할 요량입니다.


앞으로도 집사님은

내가 대파를 씻을 때마다, 미역국을 끓일 때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건네주겠죠.

그렇게 앞으로도,

내 맘 속에서 살아요 집사님.

때로는 외할머니 손을 잡고 같이 놀러오기도 하고,

잔소리를 하러, 흘겨보러도 오세요 집사님.

나는 늘


모든 순간 미어지도록 반가울거에요.


십수년을 우리 모녀 곁에 있어주어,

나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마지막 인사로 전해주어

감사했습니다. 나의 집사님.


더불어,

나의 사랑하는 아줌마들의 행복을

함께 기도해주었던 많은 분들께

아줌마들을 대신해 감사함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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