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서로 닮는다 했던가.

by 친절한 손원장

부부는 서로 닮는다 했던가. 우리 병원 환자 중 두 분이 똑같이 말기 녹내장으로 고생하시는 80대 노부부가 계신다. 두 분 모두 잔여 시야가 5도 미만으로 주변 시야가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동네 병원에 오시는 것이 목숨을 건 도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주변부가 안 보이면 특히 길바닥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에 자주 걸려 넘어지게 되고, 넘어져서 크게 다칠까 무서운 나머지 보폭이 줄어 결국 보행 속도도 줄어들게 된다. 갈 수 있는 거리가 짧아지면 외부 활동에 제약이 생기고, 결국 활동량이 줄어 하체 근육이 줄면 외부 활동에 더 제약이 생겨 악순환이 지속된다.

그럼에도, 꼬박꼬박 외래 예약 일에 오셨던 분들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병원 복도를 서로 두 손을 꼭 잡고 조심조심 진료실로 들어오는 모습이 나는 정말 눈물겹고 감사했다. 하지만 30년 넘게 점안한 녹내장 약에도 결국 시야는 점점 줄어들었고, 오랫동안 사용한 안약의 여파로 심한 눈꺼풀 염증이 동반되어 안 그래도 좁은 시야가 더 침침하게 되었다. 그런 분들한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불편한 점을 들어주는 것 밖에 없었다. 30년 이상 망가진 시신경을 내가 무슨 수로 고쳐드릴 수 있을까? 할머니께서 녹내장을 놓친 이전 병원에 대해 한 맺힌 하소연을 시작하면 20분은 그냥 앉아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1년 넘게 같이 오시던 두 분 중 할아버지만 아들들을 데리고 오셨다. 많이 우셨는데 눈이 괜찮은지 물어보시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불안한 느낌이 스쳐갔다. 진료 후 아드님께 할머니께서 왜 안 오셨는지 조심스럽게 여쭤보니, 길에서 넘어지신 이후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고 짧게 대답을 하셨다. 세극등 너머로 봤던 할아버지 눈에 초점이 흐렸던 건, 할아버지의 녹내장이 나빠져서가 아니었다.

외래가 바쁘다는 이유로 할머니 말을 끊지 않았던 것을, 스스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지 않을 수 있고 나를 둘러싼 인연도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 멀리 떠나신 할머니가 눈이 밝아져 다시는 넘어지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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