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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Apr 02. 2023

머리카락과 손톱.

자를 수 있는 용기!

잘라낼 때마다 쾌감이 든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손톱을 깎곤 했다. 몸의 일부이긴 하지만, 언제든 잘라내도 부담이 없는 곳이라 그런지 수시로 잘라댔다. 특히 죄 없는 머리카락은 걸핏하면 앞머리를 내거나 길이가 짧아졌다. 손톱도 조금이라도 길면 갑갑증이 나서 기르지 못했다.





미국 생활 중 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머리카락을 스스로 자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미국의 미용실 가격이 비싸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시작했다. 일반 가위와 숱가위를 샀고, 바리깡(이발기)은 이웃께서 나눠주셨다. 셀프 미용의 첫 시작은 남편 머리카락이었다. 남편이 하도 졸라서 도전했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처음 해보는 이발에 진땀이 났어도 생각보다 재밌었다. 이제는 30분 정도면 뚝딱! 끝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다음 대상은 딸내미였다. 딸의 앞머리 길이를 다듬어주기 시작했다. 딸은 한국에 있을 때 미용실에 가면 무섭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던 아이였다. 그런데 엄마인 내가 미용실 놀이를 하자며 잘라주니 거부 반응이 확 줄어들었다.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보며 재밌어하기도 하고 신기해하며 구경했다. 앞머리만 다듬어주던 딸내미의 머리카락도 최근에 단발로 잘라줬다. 싹둑! 가볍게 자른 머리카락을 아이가 맘에 좋아해서 나도 기뻤다. 


셀프 미용을 해주면서 남편의 구레나룻을 실수로 다 밀어버린 적도 있고, 아이의 앞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버린 적도 있었다. 어설픈 미용사의 손길에도 우리 집의 고객들은 거부하지 못하고 그저 받아들였다. 그래도 그런 실수들이 쌓이면서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미용실 가격은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정기적으로 남편과 아이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고 있다. 





그리고 미국 생활이 적응될수록 차츰 타인의 시선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지 않게 됐다. 외모도 옷도 깔끔하게만 하고 다니면 됐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러면서 나날이 길어가는 나의 머리카락에도 슬슬 도전하고 싶어졌다. 첫 셀프 미용은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로 아주 조심스레 도전했다. 남편 머리카락을 처음 잘라줬듯이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그 후 나의 도전은 점점 과감해졌다. 제법 긴 머리였던 내 머리카락은 숏 단발이 되었다. 왕창 잘라내고 나니 머리를 감을 때도 말릴 때도 달릴 때도 정말 만족스럽다. 이대로 계속 단발을 유지해도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셀프로 엉성하게 자른 머리카락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좋다.


손톱을 자르는 일도 비슷하다. 나의 손톱을 자르는 일도 그렇지만, 아이의 손톱을 자르는 일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다. 아이의 신생아 시절부터 3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아이의 손톱과 발톱 관리는 내 몫이었다. 작고 작은 아이의 손에 더욱 짧디 짧은 아이의 손톱. 지금은 손톱깎이로 똑똑 깎을 수 있을 만큼 아이가 자랐지만, 아이용 손톱 가위로 처음 잘라주던 순간의 설렘은 잊을 수가 없다. 기를 틈도 없이 내 손톱을 잘라내듯이 아이의 손톱도 주기적으로 살펴보며 잘라주고 있다. 잠시 방심하면 아이는 길어진 손톱으로 얼굴이나 몸을 긁어서 생채기를 내곤 했다. 조그마한 손을 잡고서 하나하나 다듬어줄 수 있는 순간이 소중하다. 





언젠가 아이가 자라서 스스로 손톱을 깎는 순간을 떠올려본다. 아이의 머리카락도 엄마의 손길을 거부하고 미용실에 가겠다고 하는 날도 올 것이다.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셀프 미용을 멈추고 미용실에 가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머리카락도 손톱도 나의 손길로 보살필 수 있는 지금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셀프 미용과 손톱 관리. 너무나 귀찮을 때도 있지만, 하고 나면 개운한 일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싶어지면, 일단 자른다. 머리카락이든 손톱이든. 시간이 지나면 언제든 다시 자라니깐, 잘못 잘라도 얼마든지 괜찮다. 그러니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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