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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Aug 05. 2023

죽어! 죽으라고?

당황하지 말자.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고서 나의 배를 손으로 두드리며 죽어! 죽어!라고 연신 말했다.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잠시 멈칫거리다가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나: 죽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이야? 

아이: 응! 벌레처럼 죽어!라고 한 거야!

나: 죽으면 엄마랑 이제 놀 수 없는데도 괜찮아?

아이: 응! 아빠랑 놀면 돼.

나: 죽으면 엄마가 맛있는 밥을 해줄 수 없는데 괜찮아?

아이: 응! 아빠가 해주면 돼.

나: 죽으면 엄마랑 다시 만날 수 없는데 괜찮아?

아이: 응! 아빠랑 있으면 돼!


아이는 이런 대화도 엄마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청개구리처럼 대답을 이어갔다. 

그래서 누워 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아이와 거리를 두었다. 

엄마는 이제 죽어서 없는 사람이 되었으니, 너랑 더는 놀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한 말인데 그렇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되냐며 구박했다.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 아이에게 진지하게 말해주기 위한 행동이라고 대꾸했다. 

아이는 나의 행동에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나: 아가야, 죽는다는 건 이제 만날 수 없다는 뜻이야. 그래서 엄마한테 죽어!라고 말하면 엄마 마음이 정말 속상해. 그런 말은 엄마, 아빠,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하면 안 되는 말이야. 엄마랑 아빠는 벌레도 죽이지 않고 집으로 돌려주었어. 몰랐었지? 

아이: 미안해요. 이제 그렇게 말하지 않을게요.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요.ㅠㅠ

나: 그래, 엄마는 항상 너의 곁에 있을게. 사랑해.


아이는 나와 남편이 벌레를 잡을 때 ‘죽어!’라고 했던 것을 기억했나 보다. 

사실 언제 그랬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자주 하는 말이나 행동도 아니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최소 한 달 안에는 한 적 없는 말인데, 아이의 기억에는 남아 있었다니. 

아이 앞에서 말이나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걸 이럴 때마다 깨닫는다. 

같이 누워서 장난치다가 왜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났을까. 

정말 뜬금없이 아이가 한 말이기에, 심장이 철렁했다.


아이는 ‘죽음=멀리 떠나는 것=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을 알게 됐다. 

죽게 되면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며, 죽음과 관련된 말이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울먹거렸다. 책이나 영상에서도 ‘죽음’이 스치듯 나오기만 해도 흘려듣지 않고 바로 질문하곤 했다. 

아침에 등원할 때도, 밤에 자기 전에도, 갑자기 생각이 나는지 ‘죽음’에 대해 질문했다.


아이가 41개월이 되었고, 생각이 점점 자라는 게 느껴진다. 

질문의 횟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질문의 종류도 엄청나게 다양해졌다. 

아이는 질문을 주고받으며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가고 있다. 

엄마와 아빠의 답변을 허투루 듣는 법도 없다. 

답변을 기억해 뒀다가 다른 상황에서 톡톡 이야기하기도 한다. 


‘왜’, ‘어떻게’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답을 해줘도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대답은 듣지 않고 질문만 하기도 한다. 

한때는 금지 표지판을 보면 왜 안 된다는 거냐, 무엇이 안 된다는 거냐 등 질문을 쏟아냈다. 


아이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나에게도 배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지기도 하며 티키타카 재미있게 놀기도 한다. 

아마 앞으로도 아이는 질문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날도 올 것이다. 


아이와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이 시간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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