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씨에도 육아는 이어지기에.
당신의 오늘 날씨는 어땠나요. 혹은 당신의 기후는 어떤가요.
날씨 혹은 기상의 사전적 의미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순간적인 대기 현상이다. 매일의 기온, 바람, 구름 따위가 나타나는 기상 상태를 날씨라고 한다. 그리고 장기간의 대기 현상을 종합한 것을 기후라고 한다. 이것을 우리의 일상 혹은 마음에도 적용해 보자. 수시로 달라지는 기분이 날씨라면, 평균적인 감정 상태나 성격은 기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 나의 날씨는 폭풍우가 몰아쳐도, 나의 기후는 사계절이 뚜렷하면서도 살기 좋은 우리나라 기후처럼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육아 그리고 엄마로 살아가는 나의 대기 상태도 그러하지 않을까.
육아의 날씨는 아이의 말과 행동에 따라 맑았다가 흐렸다가 시시각각 달라진다.
아침이 되면 아이의 기분과 상태를 살펴본다. 개운하게 잘 잤는지, 조금 피곤한지,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 곳은 없는지 등을 스리슬쩍 혹은 구석구석 살핀다. 휴, 다행이다. 오늘 아이의 마음 날씨는 맑음이다. 맑음 예보를 통해 오늘은 육아하기 수월하겠다고 안심하며 하루를 시작해 본다. 그러나 육아 날씨는 산간지역이나 섬 지역 날씨처럼 빠르게 변하곤 한다. 안심하는 엄마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갑자기 폭풍우 같은 생떼를 몰아치고, 그런 순간마다 엄마의 정신력은 추풍낙엽처럼 흩날리고 바사삭 바스러진다.
일기예보가 아무런 의미 없을 정도로 날씨 변화가 심한 날은 자주 찾아온다.
몇 초 사이에 달라지는 아이의 감정선을 따라가느라 너덜너덜한 일기도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비록 거칠고 힘든 날씨가 반복되고 거듭 쌓이더라도 전반적으로 사랑이 가득하고 따스한 아이의 말과 행동은 저 어딘가에 있을 지상 낙원의 기후처럼 느껴진다. 오래오래 그곳에서 살고 싶은 그런 기후. 당최 종잡을 수 없는 육아 날씨에도 끝내 행복한 마음으로 버티는 힘이 된다. 한참을 생떼로 휘몰아치다가도 미안했다며 사랑한다고 나를 안아주는 따스함은 어찌나 보드라운지.
반면, 나의 날씨, 즉 엄마의 날씨가 아이의 날씨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봄, 한여름에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갑자기 화가 쏟아지고 번쩍번쩍 소리를 치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아이에게 종잡을 수 없는 날씨 그 자체였으리라. 분명히 맑은 날씨였는데, 피할 틈도 없이 비가 쏟아져 아이의 마음 밭에는 홍수나 산사태가 났을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아이는 언제든 우산을 펼 준비가 된 듯 내 눈치를 살피며 긴장하곤 했다. 오락가락하는 감정선을 잡지 못했던 게 지금도 너무나 후회된다. 크나큰 일교차와 불쑥 쏟아지는 소나기 속에서도 잘 자라고 있는 아이가 고마울 따름이다. 아이는 화내는 엄마는 미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언제나 화창한 날씨를 유지하겠다고 다짐할 순 없지만, 최소한의 따스함은 늘 유지하는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마음의 날씨나 기후가 육아 혹은 삶에 미치는 영향은 크고 넓다.
그리고 마음 날씨뿐만 아니라 실제 날씨도 육아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우리나라 혹은 지금 내가 있는 동네처럼 사계절이 있는 온대 기후의 육아는 특히 그렇다. 봄에는 미세먼지, 여름에는 폭염, 가을에는 찬 공기, 겨울에는 눈과 한파 등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숙제가 찾아온다. 게다가 계절이 하이파이브하며 교대하는 환절기에는 달라지는 공기에 적응하느라 수시로 감기에 걸린다. 또 꽃가루알레르기처럼 특정 알레르기라도 있는 아이라면 날씨 변화는 온몸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올해도 공기가 차가워지고 첫눈이 내리자마자 며칠째 콧물과 코막힘으로 아이도 나도 고생 중이다. 날씨 혹은 계절의 변화를 이렇게 느낄 때마다 새삼 재미있으면서도 어렵다.
44개월째 육아 중인 현재까지도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외출 전 옷을 고르고 필요한 소품을 챙기는 일이다. 햇살이 뜨거울지 아닌지, 바람이 부는지 아닌지, 비가 오는지 아닌지 등 고려해야 할 게 왜 이리도 많은 걸까. 요즘에는 기온에 맞는 옷차림을 알려주는 시각 자료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걱정을 사서 하는 성격 덕분에 어떤 계절이더라도 아이와 외출하거나 여행을 갈 때마다 가방 속에는 사계절을 위한 대비로 가득했다. 여름에는 실외는 덥지만, 실내에는 에어컨으로 추울까 봐 언제나 얇은 외투를 챙겼다. 어차피 이것저것 챙겨나갈지라도 매일 아침,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기예보이다. 어릴 적 일기예보 시그널 음악을 들으며 내일 날씨를 기다리던 나는 여전히 일기예보를 자주 확인한다. 설령 정확하지 않거나 수시로 달라지더라도 미리 확인하고 나면 대책을 세울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해진다.
똑같은 일기예보를 들어도 누군가는 걱정이 생기고 누군가는 행복할 수 있다.
혹은 어떤 날씨에도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우산장수와 부채장수를 자식으로 둔 엄마는 어떤 일기예보에도 행복할 수 없다고 한다. 날이 맑으면 우산이 안 팔릴까, 날이 흐리면 부채가 안 팔릴까 걱정한단다. 달리 생각하면, 날이 맑은 날은 부채가 잘 팔리고, 날이 흐린 날은 우산이 잘 팔릴 것인데 말이다. 육아하면서 나날이 느낀다. 아이의 마음 날씨가 수시로 달라지더라도 내 마음이 안정적인 기상 상태라면 힘들지 않게, 무난하게 지나갈 수 있다. 어떤 일기예보를 확인하든, 실제로 날씨가 어떻든, 중요한 것은 내 마음 날씨 혹은 기후가 아닐까. 우산장수도 부채장수도 모두 행복할 수 있는 날씨가 없지만, 어떤 날씨여도 행복한 면을 바라보면 된다.
무릎이 쑤시면 비가 오려나 예상하듯 우리의 몸과 마음은 날씨 변화를 알려주기 위해 미리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혹은 계절은 그 특유의 냄새로 자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린다.
그런 경험 속에서 우리는 일기예보를 보지 않아도 날씨나 기후의 변화를 느낀다. 육아도 그렇다. 쌓여가는 아이와의 경험을 통해 미묘한 표정 변화로도 아이의 섬세한 감정선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 어떤 날씨에도 흔들리지 않는 육아 기술도 쌓여간다. 아이의 날씨를 아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알려주기도 한다. 아이는 다양한 순간을 통해 마음 날씨를 알아가고 표현하는 방법을 익혀나간다. 서로의 날씨 혹은 기후를 알아가는 노력 속에서 아이와 나의 거리도 점점 가까워진다.
어떤 날씨에도 육아는 이어지고, 삶은 계속된다.
이왕이면 사계절이 있어서 불편한 점보다 그 계절이 가진 날씨와 풍경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면 좋겠다. 봄은 꽃이 피고, 여름은 초록이 우거지고, 가을은 세상이 알록달록 물들고, 겨울은 하-얀 여백의 미를 알려주고 싶다. 비가 오면 물웅덩이에서 신나게 참방거리고, 눈이 오면 떼구루루 구르기도 하고, 바람이 불면 바람개비를 들고 나서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다. 세상의 모든 날씨는 재미있고 즐겁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이와 나의 마음 날씨에도 맑음, 흐림, 무지개 등 다채로움을 가득 채워주고 싶다. 어떤 날씨에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며 함께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 나의 날씨는 어땠을까.
우리 아이의 날씨는 어땠을까.
내일의 날씨도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