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설렘.
‘기다리다’의 뜻은 어떤 사람이나 때가 오기를 바라다 이다.
육아에서 기다림은 빠질 수 없다. 임신이 되기까지,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후 현재까지. 기다림은 매 순간 진행 중이다. 기다림에 대해 글을 쓰려고 임신 기간에 남겨둔 사진을 찾아봤다. 2019년 6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아이를 기다린 시간이 차곡차곡 남아있었다. 내 안에 내가 아닌 다른 생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일 경이롭고 행복하던 그 시간. 아이를 키우면서 그때의 설레는 기다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2019년 6월, 아이가 우리에게 왔다.
아이가 세상에 왔음을 확인한 날은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하고 감사했다. 좁쌀만큼 작은 크기의 아이가 내 안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초음파로 아이의 존재를 확인하고, 시간이 지나 처음 심장 소리도 들었다. 모든 순간이 신비롭고 꿈만 같았다. 잘 자라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이에게 바랄 게 없이 감사했다. 입덧하면서 일도 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치곤 했지만, 기다리는 마음으로 버틸 수 있었다.
아이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시간은 설렘 그 자체였다.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가 너를 이렇게나 사랑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매일 들려주었다. 태교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여행도 다니고, 아이에게 직접 만든 소품을 주고 싶어서 바느질과 뜨개질도 했다. 배냇저고리도 만들고 덧신도 만들고 인형도 만들고 그림도 그렸다. 퇴근 후에 아이를 생각하며 소소하게 움직이는 모든 순간이 재미있고 행복했다.
물론 기다림 속에는 설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통계적으로 임신 기간은 수정일로부터 평균 266일, 즉 38주라고 한다. 마지막 월경의 첫째 날로부터는 평균 280일, 즉 40주라서 흔히 우리는 10달을 기다린다고 한다. 10개월의 임신 기간에 우리가 거쳐야 하는 단계가 많다. 그중 하나는 기형아 검사였다. 1차 기형아 검사 결과에서 우리는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그 전화를 받고 나서 너무 놀라서 손발이 떨리고 눈물이 났다. 그리고 고민 끝에 추가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든 아니든 나는 낳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면 추가 검사가 필요 없다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운증후군 아이 키울 능력은 되냐고. 지금 생각해도 너무 직설적인 말씀이었다. 자기 동생이라면 자기는 무조건 양수 검사하라고 할 거라고 하시며 추가 검사의 필요성을 강조하셨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준비를 잘하려면 결과를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양수 검사는 조금 두려워서 니프티(NIFTY) 검사를 선택했다. 그 검사에서 정상이라는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1차 검사부터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기다림은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그 뒤, 임신 중기에 이뤄진 임신성 당뇨 검사에서는 정상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아침 공복과 식후마다 혈당을 점검하고, 식단을 관리해야 했다. 임신성 당뇨 판정을 받았을 때도 차에 홀로 앉아서 한참을 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검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왜 그리 쉽게 좌절하고 울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처음 겪는 일이고,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까 두려웠던 것 같다. 임신성 당뇨를 판정받은 것치고는 식단 관리나 운동을 꾸준히 잘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덕분에 건강한 임신 생활을 유지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아쉬운 점이 있으면 좋은 점도 분명히 있다. 아이와의 만남을 기다리면서 일어났던 힘든 순간도 지금은 추억이 되었다.
우리는 장거리 연애에 이어 주말 부부였다.
그리고 나는 임신 32주까지 일을 하고, 34주에는 경상북도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했다. 출산 휴가 및 육아 휴직 기간에 남편과 같이 지내기 위해서였다. 나날이 불러오는 배를 토닥이면서 하루하루 일을 마무리하고 이사 준비하며 바삐 지냈다. 가끔 무리해서 힘들다 싶은 날이면 아이가 잘 있는지 불안했다. 그래서 하이베베라고 하는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기도 샀었다. 지친 하루 끝에도 아이도 자기의 자리에서 건강히 기다리고 있음을 전해주는 그 소리로 위로를 받았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건강하게 세상에 와주었다.
39주 동안 내 안에 품고 있던 아이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수술대에 누워서 아이를 처음 만나고, 아이의 울음을 들었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토록 기다렸던 우리의 아이. 그 아이가 우리에게 와서 매일 함께 자라고 있다. 이 아이를 만나려고 얼마나 기다렸던가. 우리의 세상으로 건강히 와주기만을 기다렸던 그 마음을 왜 자꾸만 잊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여전히 기다림을 배우고 있다.
아이가 커가는 과정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뒤집고 기고 앉고 서고 걷고. 옹알이에서 엄마를 부르고 원하는 것을 말하고. 기저귀를 쓰다가 스스로 화장실에 가고. 아이는 자기 속도에 맞추어 차근차근 자라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은 그 자람의 과정을 기다려주고 지지해 주는 것이다. 섣부르게 도와주려고 하거나 조급하게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 그 기다림의 마음이 중요하다.
오늘도 아이의 속도에 맞추어 기다려본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우리는 우리의 속도로 그저 나아가면 된다고. 아이를 기다리던 마음으로, 아이가 자라는 과정도 소중히 기다려본다. 가끔 일상에 지치고 젖으면 이 마음을 떠올려야겠다.
우리의 육아와 일상은 달리기 대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함께 걸어가는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