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나도 스스로 서야 한다.
육아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육아의 끝이자 그 목적은 아이의 자립 혹은 독립이라 한다. 자립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서는 것이다. 스스로 서는 것을 물리적인 측면에서 먼저 살펴보자. 인간은 동물과 비교해서 성장이 느린 편이다. 태어난 지 30분만 지나도 혼자 일어서서 걷는 송아지나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혼자 일어서서 걷기까지 약 1년이 걸리거나 그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물리적으로 스스로 서는 것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혼자 서는 것은 더욱 많은 시간과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가 말하는 자립은 정서적인 면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스스로 서는 것을 뜻한다.
갓 태어난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먹는 것도 트림하는 것도 기저귀를 가는 것도 잠드는 순간조차도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도 아이는 자신만의 방법을 익혀나간다. 몸과 마음의 근육이 자라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둘 늘어난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처럼 느껴지는, 아이 스스로 뒤집고, 앉고, 기고, 서고, 걷고, 달리는 일은 놀라움과 감동의 순간이었다. 점차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아졌다. 언제 크겠나 싶던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는 천천히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 만큼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
떠서 먹여주는 것보다도 스스로 떠서 먹고 싶고, 손을 잡고 걷는 것보다 혼자 걷고 싶어 하는 등 아이는 일상 곳곳에서 자립의 의지를 강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기다려주고 도와주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그냥 해주고 나면 후다닥 끝날 것 같은 일을 한참 기다려야 하거나, 부모가 직접 하고 나면 어지르지 않고도 끝날 수 있는 일을 아이가 해내느라 엉망진창이 되는 모습을 참아야 했다. 아이의 도전이 진행될 때마다 부모로서의 도전도 함께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조급함을 버리고 아이를 기다려주면, 아이는 스스로 해내는 아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부모는 그저 방법을 알려주거나 도움을 요청할 때 적절히 도와주고, 베이스캠프처럼 든든히 기다려주면 된다. 그런데 그 시간과 과정은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고 귀찮을 수도 있고 지칠 수도 있다. 쉽지 않은 과정임에도 아이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아이에게 일상적인 책임을 맡기려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다. 일단, 아이를 믿어야 한다. 부모가 믿고 지지해 주는 만큼 아이는 그 마음을 영양분으로 삼아 자기만의 싹을 틔우고 뿌리를 뻗어갈 수 있다.
아이는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때마다 만족스럽고도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자신감이 쌓여가면 아이의 자존감도 자란다. 아주 사소한 일부터 조금은 어려운 일까지 아이에게 스스로 도전할 기회를 주고,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책임감, 의사결정능력, 문제해결능력 등 아이의 자립을 위해 필요한 능력, 자립력을 키우는 일은 작은 순간부터 시작된다. 일상 속 작은 순간이 쌓이고 쌓여서 아이의 자립이라는 크고 감동적인 순간이 오는 것이다.
건강한 자립을 위해서는 실패와 어려운 경험도 겪을 수도 있다. 아니, 꼭 필요하다. 힘든 순간에도 다시 할 수 있는 용기와 끈기를 기를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거기다가 도움을 요청하거나 협력할 수 있는 부모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는 힘을 낼 수 있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옷이나 양말을 골라서 직접 입고, 신발을 신고 벗으면서 가지런히 두는 일 등 아이의 생활 속에서 독립적인 습관을 길러줄 수 있다. 요리, 미술놀이, 몸 놀이 등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도 아이가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한다. 자기가 토핑을 직접 고르고 올려서 만든 피자를 먹으면서, 아이는 “내가 해냈어요! 엄마가 도와주지 않고 스스로 했어요!”라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이의 자립을 떠올리면서, 나의 자립도 생각해 본다. 나는 과연 자립한 성인이라 할 수 있을까. 나의 아이를 키우고 있어도, 여전히 자립하지 못한 엄마의 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엄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내가 투정만 부려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도 엄마로서 자립하기까지 두렵고 어렵고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사람으로 자립하는 것도 어려운데, 그게 제대로 되기도 전에 엄마로서도 자립해야 하다니. 경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자립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원점에 서 있는 것 같다. 나의 자립 과정을 지켜보고, 여전히 헤매고 있는 나를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아이가 스스로 해내는 게 늘어가는 일은 기특하고 감동적이다. 볼일을 보고 나면 기저귀를 갈아줘야만 했던 아이가 스스로 볼일을 보고 뒤처리까지 하는 요즘. 조금 우당탕탕 하더라도 스스로 해내려고 하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점점 아이의 시간과 공간에서 내가 없는 날이 오리라 생각하니 허전하다.
아이의 자립 기념일은 나의 육아 독립 기념일이 될까. 나의 품 안에 있던 아이가 오롯이 서는 순간을 그려본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자. 오늘도 조금씩 나와 멀어지며, 홀로서기를 위해 나아가는 딸의 성장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