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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Sep 24. 2022

다치고 나면 알게 되는 것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새벽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잠이 깼다. 잠결에 일어서서 한 발을 떼려는 순간 털썩 주저앉았다. 어라 왜 이러는 거지? 다시 다리에 힘을 넣으며 일어서자마자 종이 접듯이 오른발 발가락이 모두 접혔다. 으악!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자고 있던 자세가 불편했는지 다리 부분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조물조물하면서 다리와 발가락을 만져보다가 밀려오는 잠에 다시 빠져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통증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건 필시 무언가 잘못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퉁퉁 부어오른 새끼발가락은 지난 새벽의 사건이 꿈이 아니라고 말해줬다. 걷기가 불편할 정도로 통증이 있었지만, 아이를 대신 돌봐줄 사람은 없으니 조심조심 발을 떼며 움직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붓기도 멍도 통증도 심해졌다. 다치고 나니, 그동안 새끼발가락이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됐다. 



  오른발 전체를 접었지만, 심하게 붓고 아픈 발가락은 새끼발가락뿐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섯 발가락 중 가장 작기도 하고, 가장 바깥쪽에 있으니, 크게 불편함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발 딛기, 서 있기, 걷기 등 일상 속에서 자주 취하는 동작 모두 불편하고 힘들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발가락의 존재감을 아주 강하게 뿜어냈다. 크기가 어떠하든, 어떠한 위치에 있든, 각자의 역할은 중요하고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친 부분을 고정하기 위해 테이핑을 하려면 부목이 필요했다. 발가락은 부목 역할을 그 옆에 있는 발가락으로 할 수 있다고 한다. 다치고 나서 시간이 지나니 새끼발가락 옆 네 번째 발가락도 조금씩 부어올랐다. 그나마 더 심해지지는 않아 새끼발가락의 부목 역할로 잘 활용했다. 만약 네 번째 발가락까지 통증이 더 커지거나 많이 부어올랐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다치기 전에는 발가락 하나하나를 이렇게 자세히 살펴볼 일이 있었나 싶다.



  다치고 나면 알게 되는 첫 번째는 ‘나’이다. 내 몸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이런 역할을 하고 있었구나, 여기가 이렇게 중요한 곳이었구나 등 몸 구석구석을 돌아보게 된다. 새끼발가락 조금 다쳤다고 걷는 일이 이리도 버거워질 줄 누가 알았을까. 발가락 골절이나 통증을 검색해보니 새끼발가락을 다쳐도 통깁스를 했다며 신기해하는 분도 많았다. 아프기 전에는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도 없었는데, 요 며칠은 틈날 때마다 관찰하고 있다.



  두 번째는 ‘내 주변’이다. 다치기 전에는 혼자서도 뭐든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딱히 누군가의 도움이 없어도 일상을 유지하는 데에 문제가 없다고 느꼈다. 그런데 움직임이 불편해지고 운전도 할 수 없게 되니,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를 씻기거나 놀아주는 등 몸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은 남편이 애써줬다. ESL 수업에서는 마치고 집으로 갈 때 수업에서 알게 된 이웃께서 집 앞까지 태워주셨다. 도움이 없었다면 끙끙거리며 통증을 참아가면서 생활하느라 더 힘들었을 것이다.


  마지막은 ‘익숙함의 소중함’이다. 나와 내 주변, 나의 무탈한 일상. 그 모든 게 매일 비슷하게 흘러가다 보니 어느덧 익숙해지면서 소중함을 잊기 쉽다. 다치고 나면 익숙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와닿는다. 있을 때 잘하라는 유행가 가사가 절로 떠오른다. 다치기 전, 아프기 전에 조심하고 관리를 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한동안 치과 진료받느라 시간, 비용, 에너지를 쏟았던 기억도 떠오른다. 치아 관리를 소홀히 했던 대가를 크게 치러야 했다. 익숙한 것일수록 그 익숙함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발가락을 갑자기 다치고 나니, 매일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무탈하게 지나간 것만으로 얼마나 감사한 하루들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발가락이 아플 때마다 떠올려본다. 이 통증이 사라지기만 해도 얼마나 행복할지. 있을 때 잘하자, 내 몸이든, 주변이든, 일상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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