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꽃, 7일간의 사랑
남편이 마지막 남은 양배추 포장을 풀고 있었다. 양배추가 보름 만에 소포지에서 풀려나는 순간이다.
-어, 꽃이 폈네!
쪼르르 달려가보니 손가락만 한 줄기가 양배추 둘레를 감은채 시든 꽃 수개를 달고 있었다. 놀라웠다. 양배추는 보름간 춥고 어두운 냉장고 시베리아에서 묵묵히 줄기를 내고 몽우리를 만들고 있었다. 남편은 내 마음을 알고는 구부러진 줄기를 끊어주었다. 얼른 그릇장에서 긴 물통을 꺼내 물을 받았다. 그리고는 창가 밝은 곳으로 가서 할미꽃처럼 구부러진 양배추 줄기를 찰랑 물속에 담갔다.
양배추꽃을 처음 보았기에 신기한 마음이 들어 자꾸 들여다 보았다. 꽃모양은 개나리를 닮았다. 꽃 빛깔은 개나리보다 연하여 달맞이꽃, 노랑 씀바귀꽃을 생각나게 했다. 물을 시원하게 먹고 햇빛을 받으며 쉬라 하고는 외출을 했다.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하루가 지나고 돌아온 저녁, 꽃은 물을 먹고는 조금 더 싱싱해져 있었다. 줄기 곳곳에 물방울까지 달고 있었다. 물방울은 테이블 바닥에 떨어지기도 하였는데 뭔가 끈적해 보였다. 송진 같기도 했다. 끈적한 흔적에 손가락을 댄 뒤 다시 입에 대었다. 단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세상에 나와서 기뻐요 하고 말하는 거 같기도 했다.
양배추꽃의 변화가 즐거워 일기를 쓰거나 기록을 했다
양배추꽃은 하루하루 지나며 한 송이씩 꽃을 피워나갔다. 아침이면 꽃병 물을 갈아주기도 하며 남아있는 몽오리들이 얼마나 꽃을 피울지 세어보기도 했다. 양배추꽃의 시한부 같은 여정을 알면서도 나는 마지막 몽오리까지 피워내길 응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양배추꽃은 시들어가면서도 남은 몽오리들을 어떻게든 피워보려는 듯 애쓰는 거 같았다. 참 이상하다. 길에서 만나는 꽃들도 이뻐서 발길을 멈추곤 하지만 이렇게 집으로 들어온 인연은 더 각별하다. 흔한 푸성귀라도 그렇다. 더구나 냉장고에서 여러 날 있었는데도 멀쩡히 살아있으니 어떤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꽃들은 천천히 시들고 말라가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줄기 끝에 달려 미처 꽃을 피우지 못한 몽오리들은 애써 연노랑 기운을 내비쳤다.
괜시리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양배추꽃 송이송이를 강아지 만지듯 쓰다듬기도 했던, 기운 내서 더 살아봐 하고 응원했던 일주일의 여정이 끝났다.
어쩔 수 없이 줄기에서 꽃송이들을 떼어냈다. 흰 종이위에 가지런히 꽃송이를 늘어놓고는 양배추 부족의 가족사진을 찍었다
늘 반찬으로 해 먹던 양배추, 이 양배추에서 얻은 가녀린 꽃과 일주일간 얼굴을 맞대며 생명이 가진 시간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줄기 끝에 좁쌀같이 매달려 한번 피워보려고 애쓰는 꽃몽오리들, 개미눈물만큼 자그마한 노랑빛을 내비치더니 그대로 끝난 몽오리들을 기억하고 있다.
올 2월 정년퇴임을 하여 일상에 적응한 지 두 달 조금 넘었다. 정년퇴임을 해서 새로운 시작이라고, 이제는 시간이 다 내꺼라고 중얼거려 보지만 법적 나이에 도달하여 오랜 시간 머물던 일터에서 나온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섭섭해지기도 하는 시절이다.
이런 시절, 냉장고에서 살아나온 양배추꽃은 내게 어떤 귀뜸을 해주는 듯 했다. 끝까지, 세포 구석구석까지 피워보라고 말해주는 거 같다. 이제 남은 날들, 뭐라도 하나씩 피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