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여자의 아지트, 여주집

사라져가는 선술집 풍경

by 강승숙

아이러니하게도 여주집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레스토랑 아래층에 있었다. 윗층 레스토랑은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옛 경양식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여주집은 다른 방식으로 나름 서민 술집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술한모금 못하는 나는 오래되고 큼큼한 냄새가 날 거 같은 선술집을 즐기는 남편덕에 여주집에 종종 들른다. 드르륵 미닫이 문을 열면 어떤 날은 세 개의 둥근 테이블에 사람이 꽉 차있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아주머니 혼자 화투패를 떼고 있다.


이번에 갔을 때에는 두어번 허탕을 친 뒤였다.


- 아주머니 무슨 일 있었나봐요. 지난 번에 왔다가 두 번이나 허탕쳤어요.

- 아이구, 병원 간 날이나 보네.


아주머니는 괜히 미안해했다. 남편은 늘 하던대로 조기구이를 주문했다. 아쉽게도 다 떨어졌다고 했다. 우린 메뉴판을 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 안 시켜도 돼요.


아주머니는 그 새 기본 안주를 차려왔다. 푸짐하다. 땅콩, 건빵, 하얗게 깎은 오이, 사과까지. 늘 이런 건 아니다. 보통은 시래기국과 건빵, 땅콩을 내온다. 아주머니는 그날 기분에 따라, 또는 그날 있는 것들을 내오는 거 같다. 이번에는 오이와 사과가 나왔다.


우리는 두부구이를 시켰다. 막걸리 4천원에 두부구이 6천원, 합하면 만 원이다. 기본 안주가 계산없이 푸짐하다. 얼핏 보아도 남을 거 같지 않다. 뭐 남는 게 있을까 싶은데 아주머니는 중간에 믹스커피까지 타준다. 겨울에는 석유난로 위에서 끓고 있는 주전자 물로 커피를 타주고 여름에는 병에 한가득 타놓은 냉커피를 따라준다.


그냥 나오는 기본 안주도 푸짐하지만 메뉴판에 적힌 안주도 값나가는게 없다. 비싸봐야 만 원이다. 안주가 저렴한 여주집에 들르는 사람들은 60대 이상부터 해서 늙수그레한 이들이다. 대체로 오랜 단골이다. 돈이 궁한지 안주는 안 시키고 막걸리만 먹는 사람도 있다. 아주머니는 조금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먼 길 떠났다 돌아온 식구 마냥 맞이하고 안주를 고루 내놓는다.


예전에 들은 말이 기억난다.


- 늘 오던 양반이 며칠이구 안 오면 죽었나 병났나 걱정이 돼. 한번은 들르던 양반이 한 2주 안 와서 기다렸는데 나중에 보니 돌아가셨더라구......


그 말을 하는 아주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다 떠날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깔려있는듯 했다. 그럴만도 하다. 오랜 시간 여주집에 들러 이야기도 나누고 한잔씩 하던 이들은 아주머니와 같이 늙어가는 신세다. 그들은 매상을 올려주는 손님 이상인 것이다. 오늘 왔다가 내일은 못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일까, 아주머니는 안주를 시키든 시키지 않든 그닥 게의치 않고 사람을 대하는 듯 했다.


남편이 술을 마시는 동안 땅콩을 집어 먹으면서 조용미 시인의 시집 <초록의 어두운 부분>을 읽었다. 시집에는 살구나무, 라일락, 죽단화, 태산목, 수국, 덜꿩나무, 매화나무, 태산목, 작약 백합같은 나무나 꽃이 등장한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독해가 안 되는 시 구절이 있지만 식물을 음미하는 재미가 있어 자꾸 읽는다. 죽단화, 태산목같은 식물은 검색을 해가며 읽는다.


이상하게 이런 공간에서 시집을 읽으면 잘 읽힌다. 시집을 읽다가 수첩에 끄적이다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게 괜찮다.



다시 시집을 읽었다. 이번에는 '작약을 보러 간다'를 읽는다. 마음에 들기도 하고 궁금한 것도 있어서 남편에게 읽어보라며 시집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저수령, 은풍골이 어디냐고 물었다. 지리를 훤히 꽤고 있는 남편은 저수령이 단양에서 경북 넘어가는 고개로 아주 구불구불하다고 했다. 나는 화자가 당신도 없는데 왜 그 먼 저수령까지 작약을 보러 가는지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자기 생각을 이야기 한다.


- 시를 좋아하시나봐요. 이런데서 시집 읽는 건 처음봐요. 보기 좋습니다. 제가 시를 쓰고 있습니다.


맞은편 식탁에 앉은 베레모 쓴 노인이 말을 붙여왔다. 신사같은 풍모가 느껴지는 분이다.


- 네, 가끔 시집을 읽습니다.


남편 대답에 노인은 뭔가 더 얘기를 하고 싶은 듯한 얼굴을 하다가 그만두고 일행과 잔을 주고 받았다. 메뉴판 아래 쪽 손님들이 제법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는 조금만 큰 소리로 말하면 절로 사연을 듣게 된다. 두 사람은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다. 둘 다 혼자 온 사람들인데 테이블이 부족해서 합석한 듯 했다.


두 사람은 합이 잘 맞는지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왼쪽 남자가 먼저 일어섰다. 남자는 매일 춘천에서 새벽 첫 차를 타고 용산에서 기차를 갈아 탄 뒤 대전까지 간다고 했다. 오른편 남자는 아쉬운듯 자주 오라고 했다. 일어선 남자는 두어 달에 한번은 올 수 있다고 했다. 혼자 된 남자는 조금 더 있다가 일어섰다.


남편이 암탉의 안부를 물었다


- 그 닭은 잘 있어요.

- 아유 잘 있어요. 알도 낳고


그 닭 이야기를 들은지도 사 년이나 된다. 곤계란을 팔던 시절 일이었다. 아주머니가 들여온 곤계란을 한쪽에 두었는데 그만 거기서 하나가 턱하니 부화를 하면서 병아리가 나왔다. 놀랄 일이다. 그게 인연이 되어 아주머니는 지금껏 키우고 있다. 병아리는 이제 어른 닭이 되었다. 하루 종일 아주머니를 기다리다가 아주머니가 퇴근하면 졸졸졸 엄마처럼 쫒아다닌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닭이 떨군 똥을 치우는게 일이지만 닭과 지내는게 낙이라고 했다.


아주머니에게 여주집이라는 공간은 놀이터같기도 하다. 한동안 여기 저기 아파서 서울 큰 병원까지 다니기도 했지만 일은 놓을 수가 없다고 했다.


- 집에 들어앉아 있으면 답답해 못살아요.


아주머니는 제법 단골이 있어서 어느 정도 수입은 되는 듯 하다. 하지만 들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제 가게는 젊은 날의 가게가 아닌 듯 했다. 아주머니의 놀이터, 아지트가 된 것이다. 아주머니는 멍하니 빈 방에 홀로 있기 보다는 손님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하면서 시간보내는 쪽을 택한 듯 했다.


아주머니뿐 아니다. 시장에서 가게 하는 이들 중에는 여든 넘은 분들이 꽤 있다. 이들 중에는 손님이 거의 들지 않는데도 가게를 열어 두곤 한다. 가게 한 쪽에 누워 잠을 청하는 주인도 있다. 모자를 파는 할머니 가게가 있는데 한번도 손님이 든 걸 본 적이 없다. 내 생각에는 그 할머니 역시 가게를 놀이터 삼아 나와 있는 거 같다.


젊은이나 새로운 손님이 거의 찾지 않는 여주집은 가게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아주머니도 나이가 들었고 손님들도 나이가 들어가서다. 아주머니가 되도록이면 오래 이 아지트를 유지하면 좋겠다. 아주머니는 이제 절의 보살이나 숲의 마녀같은 존재가 된 듯 하다. 돈 없고 갈 데도 마땅치 않은 노인들에게 의지처가 되는 공간을 열고 있어서다.


도로변 그늘 아래 의자, 지하상가 사이사이에 쉼터에는 출근하듯 도착해서 종일 머물가 귀가하는 노인들이 많다. 경로당에 가는 게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종일 그 곳에 머물면서 컵라면도 사 먹고 천원짜리 빵도 사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유튜브를 보는 이들도 있고 탑돌이 하듯 운동삼에 원형 공간을 뱅뱅 도는 이들도 있다. 마냥 말없이 앉아 있는 이들도 있다. 이런 이들은 점점 늘어날 거 같다.


여주집은 소란한 손님이 별로 없다. 애초에 아주머니가 강단있게 잘라내서 그럴 것이다. 오랜 세월 선술집을 해온 아주머니는 내공이 있다. 종종 소란할 때도 있지마 대체로 이 곳은 가볍게 약주를 하며 대화가 이어진다. 아주머니는 대화에 들어가기도 하고 구경하기도 한다.


집에는 닭, 아지트에는 이야기 나눌 사람이 있는 여주집 아주머니의 지금이 참 괜찮아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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