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상석 Sep 19. 2021

영(靈, spirit)이란 무엇인가?

영, 얼, 정신

          보통, 한국인들은 ‘영(靈, spirit)’과 ‘혼(魂, soul)’을 별개의 단어로 사용하지 않고, ‘영혼(靈魂)’이란 말로써 두루 표현한다. 이를 반영하듯,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영(靈)이란 단어를 찾을 수 없다. 한국인들이 영(靈)이란 말을 쓰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영’에 해당하는 우리말 ‘얼’이 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서 얼을 ‘정신의 줏대”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인가에 놀라거나 충격을 받아 제정신이 아닐 때, ‘얼 뜨다’라고 표현한다. ‘어리석다’는 얼이 익지 않아 어설픈 상태라고 한다. ‘어린이’란 얼이 덜 성장한 사람이며, ‘어른’이란 얼이 다 자란 사람이란 해석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얼은 자라고 성숙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사람의 얼은 태도나 인심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면, 성실, 정직, 온순, 자비, 친절, 등은 얼이 태도로 드러날 때 쓰는 말들이다. 우리말 ‘얼’은 ‘정신(精神)’이란 한자(漢字) 말과 호환된다. 예를 들면, ‘얼 차려’와 ‘정신 차려’는 같은 뜻으로 쓰인다. 또한, ‘한국인의 얼’을 ‘한국인의 정신’으로 대치해도 무리가 없다.

          정신(精神)이란 말은 장자(壯者) 사상이나, 주자(朱子)의 정기신(精氣神) 이론에서 나타난다. 오늘날, ‘정신(精神)’이란 말은 영(spirit), 마음(psyche), 이념(ideology)과 같은 개념을 포함한다. 좁게 정의하면, 정신(精神)이란 육체나 물질에 상반되는 개념으로, 마음과 생각의 주체인 영(spirit)을 지칭한다. 가령, ‘정신 차려서 생각해 보아라’와 ‘마음을 가다듬는다’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정신이 생각과 마음을 관장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바쁜 상황 속에 있을 때, ‘정신이 없다,’ ‘정신이 나갔다’라고 표현한다. 너무 바쁘면, 혼은 정신을 잃거나 놓치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주자(朱子, 1130~1200)는 불교와 도교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아 유학의 약점이었던 형이상학적 철학을 보완하여 주자학 또는 성리학으로 발전시켰다. 주자는 영(靈)이란 혼백의 알갱이(精英)이며, 영(靈)은 어떤 매개체가 아닌 신(神)으로 보았다. 조선 후기의 실학 사상가인 정약용 (1762~1836)은 “정신(精神)과 신체가 묘합하여 인간을 이루니, 정신(精神)은 형체도 없고 명칭도 없었는데, 형체가 없는 까닭에 이름을 빌려서 신(神)이라 하였다”라고 정신을 설명하였다. 정약용은 인간을 정신과 신체의 조화로운 모습으로 보았고, 마음의 주체를 사람의 정신(精神)으로 보았다.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는 서경에서 “오직 인간만이 만물의 영이다(惟人萬物之靈)”라고 말했다. 공자는 사람을 영으로 보았지만, 그의 가르침은 살아있는 사람의 예와 도덕에 한정되었다. 한 번은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어떻게 귀신을 섬겨야 하는지를 묻자, 공자는 “사람 섬기는 것을 능히 하지 못하는데 어찌 능히 귀신을 섬기리오”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그 제자가 “감히 죽음을 묻습니다” 하자, 공자는 “삶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고 반문하였다.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는 사람의 마음을 심(心 )과 성(性)으로 구분하였다. 그는 마음(心)을 다하면 성(性)을 알고, 성(性)을 알면, 하늘을 안다(盡心 知性 知天)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마음(心)을 간직하고 성(性)을 길러(存心養性) 하늘의 뜻을 따른다”라고 말했다. 맹자는 마음(心)과 성(性)을 분리함으로 영성(靈性)에 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마음에서 영성(靈性)을 나누어 말한 것은 장자(莊子, 기원전 369~286?)이다. 장자는 사람의 마음(人心)을 성심(成心), 기심(機心), 적심(賊心)과 같은 육체적 마음과 영부(靈府), 영대(靈臺)와 같은 영적인 마음을 구분하였다. 영부(靈府)는 정신의 집이며, 영대(靈臺)는 비고 깨끗하여(虛靜) 외부의 사물들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마음이다. 장자는 “밖으로 향해 내달려 늘 고달픈 육체적인 마음의 어그러짐을 풀고 하늘의 빛(天光)을 받아 영성(靈性)이 드러나도록 하는 수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고대 의학서,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 ‘마음은 생명의 근본인 동시에 신(神)의 집’으로 표현했다. 그리하여, ‘마음은 사람의 신명(神明)이 발생하고 머무는 곳’이라 보았다. 사람의 마음을 ‘신(神)이 거하는 집’ ‘신명(神明)이 발생하는 곳’으로 본 것은 흥미롭다. 우리말 표현 ‘신나다,’ ‘신명 나다,’ ‘신바람 나다’는 모두 흥겨울 때 쓰는 말이다. 흥겨운 감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신(神), 즉 영(靈)과 관련하여 표현하고 있다. 사람이 흥겨울 때, 마음속의 영(靈)이 밖으로 표출된다는 생각을 보여준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얼이란 말로써 영(靈)의 존재를 인식하고 표현하여 왔다. 조선 시대에는 주자학의 한 개념인 정신(精神)으로 영(靈)을 지칭하였다. 오늘날, 정신(精神)은 ‘사물을 느끼고 인식하고 판단하는 지적인 능력’으로 상당히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 함께, ‘얼’이란 말은 점점 고어가 되어가고 있다. 국어사전에는 ‘영’이란 단어가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영어 단어 ‘spirit’을 ‘영혼’으로 오역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영감(靈感, inspiration)’과 ‘영성(靈性, spirituality)’은 상당히 일반화된 용어이다. 하지만, ‘영(靈, spirit)’이란 개념 없이, 어떻게 ‘영감(靈感, inspiration)’과 ‘영성(靈性, spirituality)’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겠는가? ‘영(靈, spirit)과 ‘혼(魂, soul)’은 각각 독립된 개념이다. ‘영(靈, spirit)’은 우리말 ‘얼’ 또는 ‘정신’에 해당하고, ‘혼(魂, soul)’은 우리말 ‘넋’ 또는 ‘마음’에 해당하는 말이다.   


참고 문헌

윤지원 (2013). 壯者에 나타난 마음(心)과 몸(身)에 대한 고찰. 마음의 정원.

정인재 (2012). 서학의 아니마론과 다산 심성론. 교회사 연구, 39. 한국교회사연구소.

이전 01화 영(靈, Spirit)과 혼(魂, Soul)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