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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May 08. 2024

토니 스콧 (3)

21.  Crimson Tide

토니 스콧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주목해야 될 작품은 < Crimson Tide (크림슨 타이드) >라고 생각한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 탑건 >으로 시작한 액션 위주의 영화들과 중간의 < 트루 로맨스 > 그리고, 그다음에 바로 시작한 < Crimson Tide >로 나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영화부터 그는 그의 주특기인 액션 스릴러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길어지는데, 일단 액션 영화 장르는 누가 봐도 폭력이 바탕이 되어 있는 영화들이다. 그리고, 화면에서 보여주는 액션은 리얼리티에 기반을 하지만 그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폭력이나 행동들로 설계도를 짠 후 이루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지금 영화 중 정말 액션 장르가 없는 영화가 있을까? 마블이든 DC든 그 영화들은 히어로물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액션영화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마법물이지만 분명 액션영화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판타지물이지만 액션영화이기도 하다.

요샌 멜로나 코메디에서조차 많은 액션들을 보게 된다. 이젠 코메디액션 장르라고 불리는 것들이 흔해진 시대이다. 이렇듯 액션 영화 장르는 본연의 장르보다는 다른 장르에 녹아들어 가는 표현이 되어 버렸다.


스릴러 장르는 느와르처럼 애매한 지점이 많다. 느와르가 표현에 집중된 장르라면 스릴러는 플롯에 집중된 장르인데, 이 스릴러가 들어가지 않은 영화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Thrill 이라는 영어 단어에서 보듯 서스펜스에 바탕을 둔 긴장감을 플롯에서 계속 줄 수 있다면 모든 영화가 스릴러 장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아무 영화나 스릴러 장르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알프레드 히치콕이란 절대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이 스릴러의 대가이자 거장이 만든 영화들은 지금도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내러티브 구조와 화면 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칼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직접 보여주면 그건 슬래셔 무비가 된다. 하지만 알프레드 히치콕처럼 커튼 뒤에서 그 모습을 실루엣으로 보여주면 그 장면은 멋진 스릴러 장면이 된다. 그렇기에 스릴러라는 장르는 연출자의 역량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르이기도 하다.


그런데 토니 스콧은 이 두 장르를 가볍게 조화해 내며 멋진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만든 감독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을 알린 작품이 향후 그의 페르소나가 되는 덴젤 워싱턴과 함께 찍은 < Crimson Tide > 다. crimson 은 색깔의 한 종류로 붉은 진홍색을 나타내는 말이고 tide는 조류를 뜻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직역하자면 적조를 말하는 것인데, 이 적조란 말은 미 해군에서 1급 비상경계령 즉, 핵미사일 런치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토니 스콧은 이런 단어에 착안해 거의 대부분을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며 조명을 각별하게 붉은빛을 많이 쓴다. 그리고 이런 조명은 차가운 함 내의 쇳덩이들과 시너지를 일으키며 긴박하게 돌아가는 잠수함 내부를 유효 적절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플롯은 간단하다. 긴박한 상황에서 핵미사일 런칭을 놔두고 무전이 끊기면서 함장은 미사일 발사를 명령하고 부함장은 그런 함장에 맞서서 미사일 발사를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플롯으로 가기 위해 토니 스콧은 차분차분 하나씩 주인공인 진 해크만과 덴젤 워싱턴의 관계를 쌓아나간다. 그래서, 나중에 이 영화를 한번 더 보게 된다면 앞부분과 뒷부분에서 램지 함장과 헌터 부함장이 어째서 다른 사람인지 보다 더 알게 된다. 이렇게 인물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하는 부분들은 처음 봤을 때 캐치하기 어려운데 두 번째 보면 보다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 Crimson Tide > 이후 토니 스콧이 만든 영화들은 죄다 액션 스릴러였다. 웨슬리 스나입스와 로버트 드니로의 < 더 팬 >, 윌 스미스와 진 해크만의 <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 덴젤 워싱턴의 < 맨 온 파이어 >, < 데자뷔 >, < 펠햄 123 >, < 언스토퍼블 >까지 그는 끊임없이 거의 같은 장르의 상업영화를 만들어 대박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되는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현대 영화로 들어오면서 스토리의 중요성보다는 인물의 개연성이나 인물의 개성등에 더욱 강조점을 두는 경향이 짙어졌다. 그리고 그런 인물들을 보여주는 것에 어떤 내러티브와 미쟝센을 쓸지는 전적으로 연출의 문제이기에 감독들은 더욱 많은 부분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조명, 공간, 인물의 배치, 샷 사이즈 등 인물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인물을 보여주는 것에 몰두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 토니 스콧 감독은 그 누구보다도 탁월했다고 본다. 그리고, < 트루 로맨스 >가 액션과 액션 스릴러를 넘어가기 위한 과도기 같은 작품이었다면, < Crimson Tide >부터는 확연하게 인물의 대립구조를 만들며 스릴러를 배가시킨다.


우선 해군에 대한 설정에 흑인 장교가 Excutive Officer (XO : 부함장)로 오하이오급 잠수함 (대륙간 탄도 미사일 24개를 장착한)에 배정되게 만들었다. 미 해군은 인종차별로 유명했었고, 전 미군 중에서 가장 유색인종 장교와 장군이 늦게 나온 곳이다. 이런 곳에 미국적이라기보다는 합리적이면서 부하들에 유연한 사고를 가진 흑인이 부함장으로 근무하게 된 것이다.

Commanding Officer (CO : 함장)의 성격도 만만치 않다. 이혼해 혼자 살면서 잠수함 밖에 모르는 이 함장은 군체계를 누구보다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자기 인생을 모두 바쳤기에. 그렇기에 군의 명령 체계에 흠을 내는 부함장과는 지속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이런 두 인물의 대립구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 한마디와 공간의 분할, 그리고 사건의 대립을 통해 쌓아 나간다. 거기서 함장과 부함장의 편을 갈라 조그만 잠수함 내부 공간에서 거의 반란에 가까운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없는 긴박감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부터 토니 스콧은 메이저 스튜디오가 그에게 원했던 액션에 대해 최대한 자제된 연출을 보여준다. 제대로 된 총질은 한 번도 나오지 않고, 폭력에 의한 사람의 죽음은 없다. 오히려 러시아 잠수함과의 대결이나 화재씬 등을 실감 나게 보여주며 리얼리티를 구축할 뿐이었고, < 트루로맨스 >< 마지막 보이스카웃 > 등에서 보여주었던 폭력씬은 이 영화에서는 없다.

어쩌면 이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토니 스콧도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그가 관심 있어하던 것은 < 탑건 >의 화려한 액션이나 < 비버리힐즈 캅 2 >의 멋있는 총격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진정으로 관심 있어했던 것은 캐릭터들이었다. 과연 스토리와 플롯에서 캐릭터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그의 내러티브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 토니 스콧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2시간도 안 되는 런닝 타임 속에서 어떻게 인간관계가 구축되고, 그런 관계가 어떻게 정리되고 파탄되는지를 밀도 있으면서 빠르게 상업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감독으로는 토니 스콧의 연출을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연출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바로 이 < Crimson Tide > 다.


< Crimson Tide >의 제작은 쉽지 않았다. 제리 브룩하이머는 토니 스콧과 함께 첫 스토리를 컴퓨터가 핵미사일을 발사하려 하고 이를 막는 잠수함 선원들의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었고, 이는 해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때만 해도 트라이던트급 플로리다함의 선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로리다함의 부선장을 비디오 테이프에 담아 잠수함 선원들이 어떻게 일을 진행하는지를 담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선원들이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부분에서는 컴퓨터가 없이 수동으로만 런치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자 여기서 리얼리티가 깨져버렸다. 고민을 하던 제작진은 이런 스토리를 함장과 부함장의 충돌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 수정된 시나리오를 해군에 내밀자, 해군은 단번에 거절한다.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것을 어느 군대가 좋아하겠는가?

결국 해군의 도움을 받지 못한 제작진은 어려움 속에서 촬영을 감행해야 했다.


사실 잠수함 내부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내부야 모두 세트를 지어 해결하면 되니까. 게다가 플로리다함 내부를 찍은 비디오도 있었으니 프로덕션 디자인도 문제가 없었다. 잠수함끼리의 전투도 문제가 없었다. 모형이 해결해 줄 수 있으니까. 문제는 초반부의 잠수함 출정과 마지막 부분의 노을이 지면서 잠항하는 잠수함의 모습이었다. 이때는 잠수함의 전경이 모두 드러나야만 했다.

그래서 제작진은 당시에 해군이 수명이 다해 팔았던 오래된 잠수함인 바벨함을 빌려서 초반부의 백그라운드로 쓴다. 이 바벨함은 50년대부터 활동했던 잠수함이라 첫 출항 장면을 자세히 보면 최신형이 아니란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영화 설정상 대륙간 핵탄두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최신형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나머지 잠수함의 전경이 드러나는 부분은 프랑스 해군에서 지원을 받아 촬영을 했다. 그래서 잠수함 모습이 조금씩 틀리다.


문제는 마지막 부분이었다. 이 장면은 타이틀과 맞물려 있기에 반드시 오하이오급 잠수함의 잠항 모습이 필요했다. 결국 토니 스콧은 자신이 헬리콥터 비용을 내고 알라바마호가 있는 항구로 가 이 잠수함이 출항할 때까지 기다린 후 출항하자마자 잠수함을 찍기 시작한다. 때마침 노을이 질 때 이 잠수함은 출항을 했고, 촬영팀이 계속 자기들을 찍자 함장은 잠항을 하라고 명령을 한다. 그래서 토니 스콧은 자신이 원하던 장면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난 이런 부분이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얻기 위해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감독이고, 토니 스콧은 그런 장면들을 연출하는 것에 탁월했던 것이다.

그래서 < Crimson Tide >의 마지막 잠항 모습은 내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다.


영화의 다른 재미는 조연으로 < 반지의 제왕 >의 아라곤역으로 나온 비고 모틴슨과 < 소프라노 시리즈 >의 제임스 간돌피니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 둘의 연기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토니 스콧의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아마도 함장과 부함장의 승마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마지막 통신의 전문을 받기 위해 기다리면서 함장은 느닷없이 포르투갈 산 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거기에 부함장이 대답하고. 그런데 초반부에 함장은 분명 승마에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가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은 중요할 때 본심을 드러내는 인물이 함장이란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긴장도가 높여질수록 이루어지는 캐릭터들의 대화와 연기를 곱씹어 본다면 이 영화는 분명 보는 이들을 즐겁게 만족시킬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영화만큼 숙달된 연출 장인이 만들어 낸 영화를 보는 것은 힘들다.

그만큼 토니 스콧은 영화를 잘 만드는 장인 중의 장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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