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Sir 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한국에서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존칭으로 쓰이는데 사실 이 단어는 영국에서 영국 여왕이 수여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호칭이다. 한국말로 하면 '경'쯤 될 것이다. 남작에 준하는 기사급들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스포츠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경이 유명하고, 배우로는 돌아가신 숀 코너리 경이 유명하다. 그리고 감독 중에서는 오늘 말하려는 리들리 스콧이 이 칭호를 수여받았다.
그만큼 그가 영화사에 끼친 영향은 대단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영화들 대부분이 예술적으로 엄청났다거나 아니면 상업적으로 굉장했던 적은 손에 꼽는다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상업적이든 예술적이든 그렇게 큰 실패를 겪지도 않았다. 그러면 어중간한 감독이냐 하면 절대 아니다. 그가 이루어낸 영화사적 작품들은 하나같이 대단했고 많은 감독들이 그의 작품을 오마주 하고 모방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이나저나 그는 분명 엄청난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어쩔 땐 그저 그런 작품을 연출하는 감독이다.
하지만 그가 엄청난 작품을 만들어 낼 때마다 영화계 사람들은 그에게 존경심을 품었다.
그래서 그가 'Sir Scott' 인 것이다.
그의 이름을 대중과 영화계에 알린 작품은 단연코 < Alien (에이리언) > 이다. 이 작품은 개봉하자마자 평단과 흥행 양쪽에서 대성공을 거둔다.
잠깐 SF (Science Fiction) 장르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이 장르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리들리 스콧 감독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부분이 바로 이 장르이기 때문이다.
SF 란 장르는 문학에서 출발한 것이다. Fiction 이라는 말 자체가 소설을 뜻한다. 즉 과학과 소설이 결합한 장르가 바로 SF 다. 이를 '공상과학'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단어자체의 뜻과는 맞지 않다.
이 소설에 대한 기원을 에드가 알랜 포우나 H. G. 웰즈로 보기도 하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프랑스의 쥘 베른이 가장 SF 를 정립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과학사조에 모험물이라는 플롯을 결합해서 최초의 소설을 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SF 란 장르는 어느 행성이나 다른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험물로 자주 나왔고, 대표적인 소설이 요새 화제가 되고 있는 < Dune > 시리즈이다.
영화에서 이런 SF 장르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 스타워즈 >의 힘이 컸다. 조지 루카스의 < 스타워즈 > 시리즈의 엄청난 성공이 없었다면 지금도 영화계는 SF 장르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SF 에서 만약 모험물을 빼고 다른 장르를 결합한다면 어떨까? SF 느와르나 SF 코메디, SF 드라마는 안 되는 걸까? 하면서 여러 장르의 결합이 시도되었고, 많은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호러 (horro) 장르를 결합시켜 성공한 영화가 바로 < Alien > 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SF 호러라는 장르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가 된다.
< Alien >에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은 단연코 그 그로데스크 한 에이리언의 디자인이다. 이 디자인은 한스 루돌프 기거라는 스위스 사람이 한 것이다. 그 유명한 헤비메탈 레코드 쟈켓 디자인을 한 사람이다. 이 사람의 그림은 하나같이 문명 비판적이면서도 기괴해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의심까지 받았다. 게다가 인생도 그렇게 평탄하지 않아 사랑하던 여자는 자살하고, 첫 결혼은 반년 만에 파경 그리고 자신은 집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다 넘어진 후 병원에 옮겨져 사망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여자의 누드는 항상 해골이나 여러 기괴한 형상과 결합되어 나타나곤 했다.
그리고 < Alien >의 디자인을 맡으면서 이후로 게임, 레코드 쟈켓, 영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디자인을 창조해 낸다. 그런 그의 디자인이 없었다면 에이리언의 공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리들리 스콧의 생애도 만만치 않았다. 형은 일찍 사망하고, 동생인 토니 스콧 감독도 먼저 보냈으니 말이다.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2억 달러 이상의 흥행을 기록한다. 동생인 토니 스콧의 < 탑건 >에 비하면 절반 조금 넘는 흥행이지만, 리들리 스콧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기에는 충분한 기록이었다.
이 영화에 대한 당시의 호평은 엄청났다. SF 장르에 대한 새로운 시작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저예산 영화를 뛰어난 연출로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 Alien > 이 뛰어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포인트를 지적한다면, 첫째로 주인공인 에이리언은 마지막이 될 때까지 그 성체가 절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리들리 스콧은 관객들이 어떤 때 공포와 서스펜스를 가지는지 잘 알고 있는 영국 감독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거의 마지막 씬까지 에이리언을 보여주지 않고, 그림자나 살짝살짝 드러나는 몸만 보여준다. 이 연출이 기가 막혀서 포스터에서 알(Egg) 사진만 보고 들어간 관객들은 대체 뭐가 나올지 몰라 마지막까지 심장이 쫄깃해져야 했다.
둘째로 7명의 배우들만 가지고 엄청난 리얼리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설정에서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촬영에서 그 7명만 가지고 연출을 하는 것은 컷 부족에 시달릴 수도 있었다. 게다가 SF 영화에서? 하지만 리들리 스콧은 이 7명만 가지고 훌륭한 리액션 샷과 더불어 배우들의 연기를 이끌어 낸다.
재미있는 것은 기존의 SF 영화와는 달리 배우들이 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다. 여주인공인 시고니 위버만 20대이고 나머지 배우들은 40, 50대였다. 그리고 이런 나이대는 정말 훌륭하게 영화의 리얼리티를 담보하게 된다.
배우들에 대한 에피소드로 가장 유명한 것은 에이리언 유아가 사람 몸속에서 자라 튀어나오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영어로 'chestburster shot'이란 이름으로 유명한데, 이 장면에서 리들리 스콧은 배우들에게 피가 함께 터질 것이라고 이야기를 안 해줬다. 배우들의 실제 놀라는 장면을 찍고 싶어서. 그런데, 이게 정말 리얼하게 빨간 피가 사방으로 터지면서 다른 여배우는 실제 비명을 질러대며 뒤로 넘어졌고, 남자 배우들도 놀라서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의 하나가 된다.
마지막으로 리들리 스콧이 남긴 SF 장르 영화의 신기원이다. 이 영화는 상영될 때 평단으로부터 SF 장르의 새로운 신기원으로 불릴 정도로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과연 리얼리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이다. 이는 철저하게 감독의 연출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SF 장르는 이런 리얼리티를 얻는 연출이 힘들다. 어떤 식으로 장면, 씬, 시퀀스를 구축해야 사람들이 실제처럼 믿을까? 하는 문제는 1970, 80년대만 해도 가장 큰 부분이었다. 리들리 스콧은 이 부분에 있어서 교묘하게 호러 장르를 도입해 최대한의 조명 효과를 이용함과 동시에 현실에 살아 있을 것 같은 배우들을 통해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우주선에서 벌어지는 실제 일처럼 촬영을 진행한 것이다. 게다가 영화의 재미있는 설정 중 하나가 지구의 대기업이 탐사선을 보냈다는 설정이다. 이념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움직인다는 설정이 마치 미래를 내다보는 듯해 놀라울 정도이다. 그리고 이런 설정이 더욱 리얼리티를 풍부하게 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연출의 의도는 이후에 다른 영화들, 혹은 게임을 비롯한 숱한 장르에 영향을 주는 SF 호러라는 장르를 세상에 불러오게 된다.
리들리 스콧과 그 동생인 토니 스콧은 사실 이렇게 두 개의 장르가 혼합되는 장르에서 엄청난 역량을 발휘한 감독들이었다. 그들이 아는 영상 제작 과정의 풍부한 경험들은 이런 연출이 가능하게끔 해주었으며, 이들이 만든 영화들은 스타일리시하며 장르적인 관점이 풍부한 영화가 된다.
특히 리들리 스콧은 < Alien > 과 < Blade Runner > 라는 단 두 작품만으로 SF 장르의 거장으로 불리게 된다. 사람들은 그가 만든 < Gladiator (글라디에이터) >를 더 기억할지 몰라도 그가 영화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것은 다름 아닌 SF 장르다.
이 두 작품은 SF 장르의 비쥬얼과 디자인, 그리고 철학 등 모든 부분에서 시대를 앞서 나가는 작품들이었으며, 이후에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두 작품을 인용하고 오마쥬 하고 사용한다.
그래서 리들리 스콧이 위대한 것이다.
그의 첫 SF 장르인 < Alien >은 호러에 보다 특화된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 Aliens (에이리언2) > 처럼 많은 액션은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지금 봐도 관객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1970년대에 만든 영화가 50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모든 장면이 실제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는 단순한 상업 SF 영화가 아니다. 분명 그 내러티브와 장르적 구조에 있어서 새로운 지향점을 보여준 영화였으며, SF 장르 영화를 좋아하고 조금 무서운 것이 상관없다면 꼭 봐야 되는 영화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