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크 May 13. 2024

리들리 스콧 (2)

23. Blade Runner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 중 최고작을 고른다면 < Blade Runner >< Thelma and Louise > 중 어떤 것일까?

전작은 SF 장르에 리들리 스콧을 영원히 각인시킨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버디 무비에 있어서 <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내일을 향해 쏴라) > 이후 최고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런 논쟁도 무의미한 것이 < Blade Runner >는 한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1982년에 만들어진 이 SF 걸작은 2007년에 CG 를 추가한 'Final Cut (최종판)'까지 무려 25년 동안 7개의 버전으로 나뉘며 출시를 반복했다. 첫 극장판이 나왔을 때 시나리오 작가조차도 뭔 내용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할 정도의 작품이었으니, 어쩌면 이 SF 걸작은 25년 동안 자신의 스토리를 재구축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SF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건 세계관이다.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관객에게 어떻게 이해시키느냐에 따라 대중의 호불호가 갈린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걸작 중 하나인 < 기동전사 건담 >은 콜로니니 뉴타입이니 시그마입자니 코디네이터니 주 시청층인 어린이들이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만들어내 첫 방영에서의 시청률에서는 참패했다. 복잡한 세계관을 인지할 수 있는 시청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지 루카스의 < 스타워즈 >는 몇 번이나 제작이 무산될 뻔했다. 포스니, 데쓰스타니 공화정이니 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는 제작자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 Blade Runner > 도 마찬가지였다. 리플리컨트 (Replicant)와 이를 발견하는 보이트 캄프 (Voight Kampff) 테스트, 그리고 넥서스 6 (Nexux 6) 등 다양한 단어로 구축된 세계관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을 대혼란에 빠트린다. 엄청난 제작비를 들였음에도 말이다. 결국 극장에서는 처참한 결과를 맞이해 폭망하고 만다. 당시에 제작비 대비 가장 큰 적자를 기록한 영화로 기록될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 < Blade Runner > 는 저주받은 걸작으로 평가되곤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라. 역대 SF 영화 중에 저주받지 않은 걸작은 없었다.

< Blade Runner >뿐만 아니라 모든 SF 영화들에 대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던 프리츠 랑의 전설적인 SF 무성영화 < 메트로 폴리스 >를 아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1927년에 엄청난 블럭버스터로 만들어진 영화였는데, 이 영화로 인해 제작사들이 줄도산을 일으킬 정도였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정말 지금도 이 영화의 표현력과 세트장 건설, 그리고 플롯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독일 표현주의의 정점이며,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SF 영화인데, 제작비의 70분의 1도 못 건지는 대표적인 폭망 영화였다. 분명 상업적인 목적을 두고 만들어진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플롯은 노동자들의 가축적인 삶 위에 거대한 권력과 부를 누리는 부르주아 귀족들의 모습을 담고 있고 여기에 기독교적 세계관을 투영시킨 영화라 당시의 관객들이 이해하기에는 난해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SF 영화들 중 걸작으로 불리는 것들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것들이 정말 많았다.  


< Blade Runner >의 가장 큰 백미는 사실 내용에 있지 않았다. 누가 진정한 인간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은 내가 보기엔 이 영화에서 부차적인 문제다. 이 영화의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보이는 것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보이는 것에 가장 충실했던 감독은 다름 아닌 리들리 스콧이었다.

이 영화가 개봉된 시점이 1982년이라는 것을 상기해 보자. 당시에는 어떤 CG 도 없었고, 특수효과 촬영을 위해서는 사전에 많은 작업들이 이루어져야 했다. 속된 말로 장인의 정신으로 한 땀 한 땀 직접 손으로 만들어가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리들리 스콧은 모든 아이디어를 동원해 거의 완벽한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화면에 구현해 냈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비와 바닥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들, 잿빛 어두운 하늘과 그 어둠을 이겨내기 위한 네온사인들, 부로 상징되는 높은 빌딩과 일본 여인이 나오는 엄청난 크기의 광고판, 그리고 그 부를 거머쥐지 못한 가난한 자들이 사는 미래의 뒷골목 등. 이 영화가 이루어낸 시각적 시금석은 지금까지도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회화 등 많은 곳에서 카피되고, 오마쥬 되고, 차용되며 변형된다.


이 디스토피아적 LA를 연출하기 위한 리들리 스콧의 노력은 엄청났었다.

영화를 연출할 때 감독들이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레이어다. 포토샵을 허시는 분들은 이해할 것이다. 어떤 게 앞에 오고 뒤에 갈지를 평면상에 구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 중 하나이다.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들은 이런 레이어를 최소한 세장은 생각해야 한다. 전경, 중경, 후경이라는 단어들로. 3D 영화로 가면 이 레이어는 더욱 복잡해지고, 이를 가장 잘 연출하는 감독은 다름 아닌 < 아바타 >의 제임스 카메룬이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도 당시에 광고판에서 시각적 스타일로 이름을 날리던 감독이었고, 그의 시각적 인지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러면서 < Blade Runner >에서는 많은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전경, 중경, 후경의 배치를 완벽하게 재현해 낸다.


미래의 LA를 어둡게 그린 이유는 많은 디테일을 화면에 그려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훗날 최종판 (Final Cut)에는 CG로 업그레이드를 하지만 1982년 당시에는 그런 CG를 활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리들리 스콧은 어둡고, 계속 비가 내리고, 바닥에서 수증기가 뿜어 나오는 그런 도시를 일부러 연출한 것이다. 그래서 < Blade Runner > 에서는 많은 수증기나 비 내리는 장면들이 전경이나 후경을 차지하며 중경에 있는 인물을 감싼다.
그리고, 느와르라는 장르를 교묘하게 SF 장르와 결합시킨다.


느와르 장르에 대해 여러 번 소개했지만 이 장르는 화면의 표현과 내용의 어두움에 기반하는 장르이다. 그리고 그 클리세로서는 퇴역 형사와 팜므 파탈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여인, 그리고 악당이 등장한다. 이런 요소들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 < Blade Runner > 이다. 리플리칸트일지도 모르는 여인과 그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 퇴역 형사, 그리고 우주선에서 23명이나 죽이고 탈출한 악당까지. 하지만 이 영화가 느와르의 클리세를 그대로 따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악당은 형사보다 인간적이며, 여인은 치명적이기보다는 사랑스럽고 섹시하다. 그리고, 퇴역 형사는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을 가진다. 그래서 이 SF 느와르 영화가 위대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느와르 장르를 표현하기 위한 어두움과 비 내리는 배경은 인간보다 인간적인 리플리컨트 룻거 하우어의 죽음을 날아오르는 비둘기와 함께 창연하게 표현해 내며 무한한 감동을 안겨준다. 그리고, 거기에 부차적으로 철학적인 관점을 들이민다.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느와르 장르에서 중요한 것은 빛에 대한 표현이다. 리들리 스콧은 이를 다각도에서 찍는 여러 대의 카메라와 많은 네온사인을 통제하면서 화면에서 보여준다. 항상 비에 젖어 있는 캐릭터들과 그 캐릭터들 주위에 있는 물에 비치는 네온사인의 강렬함,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어두운 조명 등의 세팅은 리들리 스콧의 철저한 연출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런 연출은 시각적 강렬함과 미래의 디스토피아 LA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하다못해 주요 교통수단으로 나오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인 스피노의 디자인조차 현재의 자동차 디자인처럼 많은 LED가 달린 것처럼 당시에는 그 화려함을 자랑했다. 그래서 경찰차가 화면에 등장할 때면 항상 차에 달린 모든 네온사인이 켜져 있고, 그 스피노는 전경이나 후경을 차지하며 조명의 역할과 더불어 화면이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설계된다.


난 영화를 세 버전으로 보았다. 한 버전은 공식적인 버전이 아니라 한국식 버전이었는데, 이 한국식 버전이 정말 개판이었다. VHS로 옮겨 놓은 화질은 엉망이었고, 번역해 놓은 한국말은 이게 한국말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 말인지조차 헷갈릴 정도였으며, 게다가 더 최악은 117분짜리인 극장판을 85분으로 잘라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 첫 기억은 영화에 대한 이해보다 장면은 멋있는데 뿌연 화면으로 보니 짜증이 난다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본 최종본은 정말 감탄이 터져 나왔다. 1980년대의 상상물들이 다시 한번 CG로 업그레이드가 된 화면들은 온전히 내 머릿속에 완벽한 디스토피아를 각인시켜 놓는다. 게다가 위에도 이야기했듯 리들리 스콧은 여러 버전을 통해 계속해서 스토리와 세계관에 대한 업그레이드를 해왔고 25년 동안 나는 그 스토리를 이해하며 자라온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최종판에서 비로소 해리슨 포드와 숀 영, 그리고 룻거 하우어의 캐릭터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영화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이 여기에 있다. 시각적으로 홀린 한 편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25년을 기다려도 아깝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컬트 영화가 돼버렸어도 이 작품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감독판과 최종판을 수행한 리들리 스콧에게 경의를 표할 정도이다. 어느 감독이 이렇게 한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이야기를 계속 진행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 영화의 OST (Original Sound Track) 는 신디사이저 영화 음악의 거장 반젤리스의 최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가 망하다 보니 이 사운드 트랙도 1997년에 출시되게 된다. 이 엄청난 음악들이 15년 뒤에나 제대로 된 감상 버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영화 음악의 거장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몇 명 없다. 엔니오 모리꼬네, 반젤리스, 한스 짐머 등 손가락에 꼽는 사람들만이 영화 음악의 거장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그중 반젤리스가 만든 < Blade Runner > 의 사운드트랙은 지금 들어도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명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음악을 들으신다면 '아 바로 이 음악!' 이라고 알게 되실 것이다.


 20세기의 위대한 SF 영화인 < Blade Runner > 는 그야말로 리들리 스콧이 왜 거장인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영화의 표현과 상상력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상상력들이 어떻게 후대의 영화들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를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이고, 이 영화는 놓치면 반드시 후회하는 영화이다.








이전 22화 리들리 스콧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