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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May 15. 2024

리들리 스콧 (3)

24. Thelma and Louise

버디 영화 중 <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내일을 향해 쏴라) >와 < Bonnie and Clyde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에 나란히 어깨를 하는 작품이 바로 리들리 스콧의 < Thelma and Louise (델마와 루이스)>이다.

SF 장르에서 호러와 느와르를 변주해 엄청난 금자탑을 쌓은 리들리 스콧은 1991년에 이번엔 버디 영화라는 장르에서 모든 이들의 상상을 깨고 두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버디 명작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영화가 나오던 1991년을 생각해 보자. 조지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앞장서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막아야 한다며 UN 안전보장이사회를 설득해 '사막의 폭풍 작전'을 감행한다. 그리고 이라크를 말 그대로 처참하게 뭉갠다. 이때 발생한 이라크의 사상자만 공식적으로는 2만여 명이지만 실제로는 1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 것이 그때의 미국 분위기였다. 세상에서 가장 남성적이고도 마초적인 국가가 미국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헐리웃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지금 한국 영화계도 마찬가지지만, 여성 두 명을 톱으로 내세우고 찍을 수 있는 영화는 전무하다고 보면 된다. 남성이 주인공을 하지 않으면 영화가 어색하다는 등 많은 말들이 있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남성 캐릭터들을 깡그리 개차반으로 만들고, 여주인공들의 자유를 향한 탐닉을 그린 이 버디 무비는 세상에 멋진 한 방을 먹인다.


이 영화에 나오는 남성 캐릭터들을 생각하면 정말 현실 세계에 있는 전형적인 인물들이 대다수다.  

델마의 남편은 말 그대로 부인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이다. 그저 집에서 음식이나 해주고 살림이나 해주는 여자가 필요하다는 식이다. 우연히 만난 카우보이 건달은 남성의 폭력성을 그대로 들어내며 델마를 강간하려 든다. 그러다 루이스의 총에 맞아 죽지만.

델마가 사랑에 빠진 젊은 양아치인 제이디(브래드 피트)는 델마를 꼬신 후 델마와 루이스가 가진 전재산을 들고 튄다. 그리고 경찰에 잡혀서도 델마의 남편에게 그녀와 가졌던 잠자리를 가지고 놀려대기 바쁘다.

남자 교통 경찰관은 여자 둘이 가는 모습에 고압적인 모습을 보이고, 유조차 운전자는 거리낌 없이 옆으로 달리며 성희롱을 날린다.

이미 15%의 가정만이 남자가 먹여 살리던 미국에서 여전히 가정 권력을 놓지 않는 가부장적인 남편, 미국의 치부인 강간 문화 (rape culture)를 보여주는 카우보이 건달, 여자들을 성적인 대상과 착취의 대상으로만 보는 제이디, 여전히 여자들을 무시하는 경찰을 비롯한 공무원들, 그리고 이런 여자들을 대하는 성희롱 문화들. 이 영화에서 경찰인 하비 키이틀만이 이들을 보호하고 옹호하지만 그 역시 여자들을 힘없는 존재로만 바라보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마지막에 여자들의 뒤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점들로 인해 당시만 해도 이 영화는 남성들에게 불편한 영화 중 하나였고, 평단에 가장 회자되었던 것은 페미니즘의 대두와 남성주의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비평이었다.


하지만 주인공 캐릭터들을 생각할 때 난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의 대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서부영화인 <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의 훌륭한 현대식 변주라고만 보인다. 무엇보다 감독 자신이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에 대한 해석은 개인마다 다르고, 보는 관점마다 다르다. 하지만 하나로 규정되기는 곤란한 작품들도 있는데 < 델마와 루이스 >가 그런 작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단순히 페미니즘 영화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두 여성의 캐릭터가 1990년대의 평범한 가정주부와 독신 여성이고, 이 두 여성이 여행을 떠나면서 살인으로 인한 급격한 상황변화를 통해 여성의 주체성을 범죄와 폭력으로 획득하고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루이스가 멕시코로 탈출하기 위해 고민할 때 제이디의 말이 생각나 주저 없이 편의점 털이를 하자는 델마의 제안이 델마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고 거기에서 델마가 점점 주체적으로 변한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가 델마에게 서로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사격을 가르치며 웃는 모습이나 유조차를 향해 총을 발사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장면, 둘이서 편의점을 터는 장면, 무엇보다 1966년 산 썬더버드를 몰며 당차게 절벽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은 내게 영원한 버디인 부치와 선댄스를 생각나게 했지, 페미니즘을 떠올리기에는 왠지 부족한 느낌이었다.


부치와 선댄스도 볼리비아에서 은행을 털던 초짜들이었고, 군대의 추격을 피해 절벽에서도 뛰어내렸으며, 다이너마이트를 잘못 설치해 돈이 보관되어 있는 기찻칸 하나를 통째로 날리기도 한다. 게다가 둘이 함께 총을 쏘는 모습은 당연히 나오고.

물론 이런 연상의 효과는 리들리 스콧이 < 델마와 루이스 >에서 많은 버디 영화들의 클리세를 유효 적절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버디가 서로 사격 연습을 한다거나 다른 삼자에 대해 함께 위해를 가하거나 아니면 거대한 폭발을 담보로 하는 액션씬이라든가.

더더군다나 < 델마와 루이스 > 던 < 내일을 향해 쏴라 > 던 둘 다 똑같이 마지막 스틸 한 장면으로 결말을 냈으니 더욱 그 감성이 올 수밖에 없다. 볼리비아 군을 향해 쌍권총을 쏘며 달리는 부치와 선댄스의 프로즌 프레임이나 경찰들의 추격을 피해 절벽을 향해 차를 몰며 얼어버리는 델마와 루이스의 프로즌 프레임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둘은 기적 같은 희망을 관객들에게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이런 버디 영화의 클리세를 거둬 낸다면 당연히 페미니즘에 대한 담론밖에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버디 영화에서 클리세를 빼고 이야기를 한다면 영화가 주는 시각적, 내러티브적 의미가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잘 모르겠다.

영화의 장르란 그 표현 기법이 비슷하다거나 플롯의 구성과 캐릭터의 인접성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 델마와 루이스 >는 우선 버디 영화 장르라는 것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이 버디 영화의 주인공들이 여성들이기에 그 상징성과 사회성은 대두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버디 장르를 무시하고 그 이야기만 중점적으로 논의될 수 없다고 본다.

이 영화가 나왔을 당시 사회에서는 페미니즘이 대두되는 시기이기도 했고, 이 영화는 그런 논의에 많은 부채질을 하는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단지 버디 영화로만 본다면 난 이 이상의 버디 영화는 20세기에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고 확신한다.

영화 자체는 막다른 상황에 몰려 절벽으로 차를 모는 두 여인의 스토리라는 비극일지 몰라도, 감독은 이 영화를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모든 분위기는 밝고 명쾌하며 한 번의 막힘도 없는 두 여인의 로드 여행을 보여 준다.


버디 장르의 많은 영화들이 이 로드 무비의 형식을 굉장히 많이 차용하는데 이 로드 무비 형식만큼 버디의 관계를 쌓아 나갈 수 있는 형식이 별로 없다. 고난을 받을수록 이 두 친구는 더욱 가까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며 전통적으로 모든 여행은 고난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로드 무비와 버디 무비를 가장 효율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엮어서 보여준 영화는 단연코 이 < 델마와 루이스 >가 최고봉이다.


후일담이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맨 처음 내정되었던 것은 미셀 파이퍼와 조디 포스터였다. 하지만 둘 다 다른 영화로 너무 바빴다. 특히 조디 포스터는 조너선 드미의 < 양들의 침묵 >에 출연해 그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당시에 경쟁자는 < 델마와 루이스 >의 수잔 서랜던과 지나 데이비스였다.

난 만약 이 영화를 미셀 파이퍼와 조디 포스터가 했다면 약간은 서운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러기에는 지나 데이비스의 연기가 너무나도 친숙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잔 새런든의 연기는 전체의 발란스를 빈틈없이 잡아주는 완벽한 것이었다.

이런 배우들의 발견까지 할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이 < 델마와 루이스 >이다.


난 이 영화를 리들리 스콧의 최고작으로 생각한다.

21세기에 들어 리들리 스콧의 연출은 많이 바뀌었다. 많은 CG의 활용과 더불어 배우들의 연기보다는 화면의 구성과 스타일에 더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욱 소중하다. 주연부터 조연까지 이르는 배우들의 연기 디렉팅과 전체 화면의 구성, 그리고 그 밝은 분위기까지 내가 리들리 스콧에게서 볼 수 있는 모든 디렉팅을 보여준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 반드시 보시기 바란다. 그 마지막 장면 한 장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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