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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May 17. 2024

미야자키 하야오 (1)

25. 붉은 돼지

미야자키 하야오는 프로듀서이자 연출가인 다카하타 이사오,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 음악감독인 히사이시 조 등과 함께 지브리 스튜디오라는 이름의 회사로 여러 애니메이션을 만든 감독이다. 이 감독의 유명 작품들은 내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지금까지도 함께 하고 있을 정도이고 그의 그림들과 플롯은 여러 분야에 너무나 많은 영감과 만화영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선사했다.


내 어렸을 적 만화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 미래소년 코난 >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전무한 상황에서 정부는 일본 영화 수입은 안 되어도 일본 만화영화들을 한국화 시켜 오는 것은 막지 않았다. 그래서 < 우주전함 야마토 >< 우주전함 V호 >개명되어 수입이 되던 시기였다.

그런 일본 애니메이션 중 < 미래소년 코난 >은 그 타이틀 곡으로도 유명했고, 액션씬과 아이들 만화에 맞지 않는 그 독특한 주제 (반전사상과 환경)로 인해 많은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다. 당시에는 이 작품이 미야자카 하야오 작품인 줄 몰랐다.


그러다 이후에 미래 대서사시인 <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를 보면서 같은 풍의 작화와 비슷한 주제를 본 후 어렸을 적 그 감독이 같은 애니메이션을 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 천공의 섬 라퓨타 >, < 이웃집 토토로 >, < 마녀 배달부 키키 >, < 붉은 돼지 > 등을 연달아 보며 그에게 열광하게 되었다. 이후에 < 모노노케 히매 >는 가히 메가톤급 충격을 주었고, < On your Mark >는 그가 진정한 예술가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으로 드디어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이다.

그의 작품들을 이야기할 때 놓칠 수 없는 것은 세 가지이다. 비행, 유럽, 그리고 환경, 혹은 반전사상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 중 < 붉은 돼지 >부터 시작한 자기 정체성에 대한 주제도 그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시작한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 붉은 돼지 >부터 시작해,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 하울의 움직이는 성 >, < 벼랑 위의 포뇨 >, < 바람이 분다 >,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까지 이어진다.

인간인지 돼지인지, 센 인지 치히로인지, 죽어가는 새인지 마법사인지, 물고기인지 인간인지, 전쟁에서 자신이 가지는 사랑은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물어온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인 것이다.

그래서 그 정체성 첫 번째 작품인 < 붉은 돼지 >가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다.


< 붉은 돼지 >에 대해 안노 히데아끼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감독)는 '돼지라는 겸손을 떨며 멋진 빨간 비행기에 올라타 시가를 태우며 양 옆구리에 여자를 끼고 폼을 잡고 있는 미야자키 감독이 생각난다'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바로 이 말이 < 붉은 돼지 >를 바로 정의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바로 자신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가장 낭만적인 인물을 가장 강한 반파시스트라는 사상을 내세워 < 붉은 돼지 >에서 직조했고 이 인물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비행과 유럽에 대한 동경을 안은 인물로 그려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의 캐릭터들은 대체로 따뜻하다. 그리고, 막장으로 가는 악당 캐릭터는 없다. 오히려 친근하고 인간의 욕망에 근접한 캐릭터들이 악당으로 쓰인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상대 빌런으로 나와 '붉은 돼지'를 잡고자 하는 조종사는 허세만 가득하고 여자만 보면 사랑한다며 결혼하자고 외치는 인간이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배우가 된다.

오히려 작품상의 진정한 적은 시대였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이탤리를 배경으로 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탤리의 진정한 참군인으로 살았던 주인공이 2차 세계대전으로 직진을 하며 파시스트의 광기에 휩싸인 이탤리에서 어째서 아나키스트 (무정부주의자)로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 인간성을 다시 획득해 가는 지를 보여주며 진정한 적은 서로 주먹질을 해대고 싸우는 둘이 아니라 파시스트에 물든 정부임을 분명히 한다.


이 작품이 개봉할 당시 다른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과는 다르게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주제나 시대상이 애들을 데리고 같이 보기에는 무거웠을지도 모르고, 어딘지 모르게 흐르는 마초적인 분위기도 살짝 거부감이 흐른다. 게다가 하늘에서의 액션이 그동안 지브리 스튜디오가 보여준 액션씬과는 너무나도 다르기에 인기를 끌기는 힘들었으리라. 하지만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내놓은 작품 중 단연코 최고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그리고 싶었던 모든 것을 자신이 내세우고 싶었던 모든 주제로 그려낸다. 이탤리의 유명한 풍광들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묘사한 배경화면들은 지금도 예술로 불릴 정도다. 그리고 이때만 해도 CG가 조금씩 도입되고 있던 애니매이션계에서 여전히 전부 손으로 그려내고 있었던 지브리 스튜디오였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 손으로 그려낼 수 없는 장면이 없다고 불렸던 일본 애니매이션계의 작화 거장인 오오츠카 야스오의 제자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야스오보다는 못 그려도 그다음으로 가장 잘 그리는 작화가 이기도 했다.

애니매이션계에서 이렇게 작화감독, 연출감독, 스토리보드 작가, 배경 디자인 감수, 시나리오 작성 및 체크까지 할 수 있는 감독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오토모 가츠히로 조차도 이 정도로 하진 않는다. 그럴 정도로 그는 모든 것을 혼자 하는 스타일이라 그림체나 모든 플롯과 주제가 뚜렷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와 일한 애니매이터들은 그저 채색과 셀들을 만드는 물리적인 노동력으로만 존재한다고 푸념할 정도였다.

그가 그린 스토리보드는 그냥 책으로 출판할 정도의 퀄러티를 가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그려낸 이 작품의 배경은 그래서 가치가 있다.


또 하나는 이 작품의 대사들과 미야자키 하야오가 표현한 이 작품의 인터뷰에서 드러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작품의 타이틀인 < 붉은 돼지 >를 이야기할 때 그는 분명히 자신의 반전 의지를 드러낸다. 그는 극장용 팸플릿에서 인터뷰를 통해 '파시스트 무리들이 공산주의자들을 Porco Rosso (이태리어로 빨간 돼지)라 부르던 시대가 있었다고 생각하며, 그런 식으로 '빨간 돼지 새끼'라고 욕하던 시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이 < 붉은 돼지 (Porco Rosso) >인 것이다.

여기에 이 작품의 명대사들은 아직도 여전히 유효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파시스트가 되느니 차라리 돼지인 편이 나아'

'돼지에겐 국가도 법도 없어'

이 대사들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난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세상의 파편들이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진지한 작품은 절대 아니다.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유머와 경쾌함, 그리고 밝은 분위기가 모두 살아있다. 이 작품이 겉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는 아까 전에도 이야기했듯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이다. 그 누구보다 로맨티스트이고 싶었던 사람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제가 뭐 건간에 이야기 자체는 남자의 로망을 다루는 이야기다. 그 로망이 무엇보다 유쾌하고 애틋하다.


진정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취향과 얼굴, 그리고 민낯을 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나는 가장 추천한다.

그의 작품 중에서 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과감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에 가장 먼저 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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