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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May 20. 2024

미야자키 하야오 (2)

26. 모노노케 히메

< 모노노케 히메 (원령공주) >가  일본 열도와 세계에 뿌려댄 충격파는 그야말로 메가톤급이었다.

이제까지 모든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을 뛰어넘는 미장센, 작화, 주제, 그리고 어마어마한 환상적인 자연 배경을 가지고 있던 작품이었고, 그 무거운 주제와 잔인한 액션에 세상 모든 이가 감탄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의 헐리웃에는 CG (Computer Graphic)의 거대한 물결이 흐르던 시기였다. < 터미네이터 2 >에서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역사적인 컴퓨터 그래픽을 보이면서 스티븐 스필버그는 < 쥬라기 공원 > 에서 CG의 기가 막힌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디즈니도 이에 질세라 < 미녀와 야수 (1991) >, < 알라딘 (1992) >, < 라이온 킹 (1994) >에 적극적으로 CG를 도입해 완성도와 흥행면에서 모든 시장을 평정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도움에도 헐떡이던 픽사 (PIXAR) 라는 회사가 당시 디즈니 회장이었던 제프리 카젠버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1995년에 Full 3D CG 애니메이션인 < 토이 스토리 >를 내놓으면서 애니메이션계는 영화계에서 가장 먼저 디지털이라는 신기원을 이뤄낸다. 이 작품 이후로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의 경계가 무너질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으니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신기술들은 아직은 일본 애니매이션계가 헐리웃 애니메이션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식으로 비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일본 애니매이션계가 넋만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95년에 포스트 지브리라 불렸던 안노 히데아키의 < 신세기 에반겔리온 >과 오시이 마모루의 < 공각 기동대 (극장판) >는 적극적으로 CG를 도입해 일본 애니매이션의 방향성을 보여주며, 그 실력을 과시한다.

그리고, 2년 뒤에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 모노노케 히메 >라는 작품을 내놓게 된다. 지브리 스튜디오 역사상 처음으로 CG를 도입한 이 애니매이션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담대한 영웅 이야기와 웅장한 대자연으로 애니매이션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만든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기법은 기본적으로 셀 애니메이션이라 불리는 방법이다. 배경을 밑에 그려놓고 투명한 셀 위에 인물의 동작을 1초에 어떻게 움직일 지 감안해 24장을 그려 촬영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2시간짜리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은 제작비에 있어서 꿈을 꾸기 힘든 분량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의 런닝타임은 90분에서 100분 사이로 만든다. 셀 애니메이션에서 그림은 사람 손으로 다 그리고, 장수가 많아질수록 당연히 제작비는 가파르게 상승하기 때문이다. < 모노노케 히메 >는 분명 CG를 사용한 작품이지만 대부분은 이 셀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리고 그 동화수만 해도 무려 14만 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로 런닝타임도 133분에 달했다. 아마도 관객들은 어디서 CG를 사용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만큼 CG와 셀 애니메이션이 가장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그리고, 작품은 일본에서 1997년 7월에 개봉되어 1998년 7월까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극장에서 상영되며 1,420만 명이라는 기록적인 관객을 동원한다. 기록은 일본 역대 박스오피스 8위의 기록으로 20세기 애니메이션으로 유일하게 10위권 안에 있는 무시무시한 기록이다.


< 모노노케 히메 >가 메가톤급 충격을 준 이유는 디즈니가 석권하고 있던 극장용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디즈니의 해피엔딩과는 다른 열린 결말을 가지고 굵직한 철학적 화두를 던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존이란 무엇인지, 자연의 파괴는 인간에게 어떤 식으로 돌아오는지, 그리고, 왜 자연과 인간은 함께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한 영웅의 여행을 통해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디즈니와 다른지 그리고 어떻게 발전해 갈 것인지를 뚜렷이 보여준 작품이었다.


< 붉은 돼지 >까지만 해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는 낭만이 있고, 유쾌함이 있고, 아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 모노노케 히메 >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웃음기와 아이들을 쏙 빼놓는다. < 모노노케 히메 >에는 따뜻한 빌런도 없고, 지브리 특유의 유쾌한 액션도 없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과 자연을 지키려는 산신들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는 영화의 퀄리티나 느낌을 이제까지 지브리 작품들과는 완전히 달라지게 만든다. 캐릭터들의 작화만 비슷할 뿐이지 전작들이 어떤 동화적 느낌을 따르고 있었다면 < 모노노케 히메 >에서는 영웅의 대서사시를 따르며 굵짐함을 더한다.


그 표현의 수위도 전 작품들과는 전혀 달랐다. 재앙신으로 인해 팔, 다리가 잘리는 병사들은 기본이고, 주인공이 총상을 당할 때 터지는 피분수나 생명의 근원인 붉은 사슴의 목이 잘리는 장면, 목만 남았음에도 에보시의 팔을 물어뜯어 버리는 들개 모로의 씬 등은 이제까지 보여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액션이 아니었다.

일단 잔인함에 있어서는 지브리 작품들 중 최고 수위를 달렸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액션은 땅에서 하늘로 박차 오르는 경쾌하고도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벅참이었는데, < 모노노케 히메 >에서의 모든 액션은 땅에서만 이루어진다. 아주 철저하게. 그가 지향하는 비행이나 유럽의 풍광은 더 이상 이 영화에서는 남아 있지 않고 검은 액체인 재앙신으로 시작한 영화는 목이 잘린 사슴신의 불쾌한 죽음의 액체가 산과 마을을 뒤덮는 장면으로 끝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으로 거론된 작품이기도 했다. 장장 기획만 16년, 제작기간만 3년이 소요된 어마어마한 작품이었는데,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도 이 작품이 너무 힘들어 실제로 은퇴를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후에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라는 또 다른 걸작을 내놓지만 말이다. 당시 일본 돈으로 21억 엔이라는 제작비가 들었으니 같은 시기의 한국 영화 블럭버스터 제작비가 100억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제작비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 모노노케 히메 >에는 지브리가 투자할 수 있는 모든 물질적, 시간적 노력을 다 동원했다고 이야기되며 미야자키 하야오가 추구해 온 모든 철학이 다 담겨있다고 거론되었다.

무엇보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큰 화두를 던졌다고 평해지곤 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에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주제로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졌었다. 다카하타 이사오의 < 너구리 폼포코 대작전 >이나 지브리 작품은 아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가 대표적인 작품일 것이다. 하지만 이 < 모노노케 히메 >처럼 잔인하면서도 생존이라는 절박함으로 다루어진 작품은 없었다. 게다가 이제까지 모든 지브리의 기술이 다 들어가 있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배경의 이끼 하나하나까지 그려내는 디테일이나 히사이시 죠의 음악, 철저한 사운드 효과, 인물이나 재앙신들의 화면 내 배치, 방대한 세계관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주인공들의 표정 하나까지 그야말로 기술적으로든 예술적으로든 상업적으로든 애니메이션을 뛰어넘어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고 불릴 정도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작품에서도 끊임 없이 정체성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여주인공 산은 자연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인간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남주인공 아시타카는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부족으로부터 저주로 인해 추방되어 다른 마을에서 이방인으로 취급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정체성들이 마음에 와닿은 것은 이 영화가 개봉되던 해가 세기말에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21세기가 온다는 것은 어쩌면 20세기의 사람들이 21세기에서는 이방인이나,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한국 타이틀은 '원령공주'인데 사실 이게 약간의 오류가 있어 보인다. 히메라는 단어 때문에 그렇게 해석한 것 같은데, 히메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공주를 비롯한 무가나 귀족가의 영애를 일컫는 광범위한 단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초창기 기획이 '모노노케 (원령, 사령, 생령 혹은 변신귀, 요괴)'가 데리고 가는 '히메 (무가의 영애)'에서 비롯된 '미녀와 야수'의 스토리였다. 그래서 원령공주 보다는 좀 다른 말로 의역을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 영화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은 당대의 여러 작품들과 더불어 문화예술 영역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 영화 시장에서 이 영화가 크게 흥행한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1400만 명 정도를 끌어들였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나라별로 몇 십만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제임스 카메룬이 < 아바타 >를 제작하면서 < 모노노케 히메 >를 참고했다고 할 정도로 이 작품의 영향력은 놀라웠다.


< 모노노케 히메 >는 꼭 봐야 할 영화 중 한편으로 항상 선정되는 영화 중 하나이다. 문화예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연출이라는 측면으로나 이만한 걸작을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블루레이나 고화질로 시청하기를 바라며 장인의 손기술과 CG라는 첨단기술의 완벽한 조화를 확인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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