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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Jun 03. 2024

뤽 베송 (1)

28. Le Grand Bleu

화에는 인상파, 입체파 등 다양한 사조들이 등장하고 사라졌다.

그럼 영화는 어떨까? 영화에도 사조가 있었다. 빅토리아 데시카 감독을 필두로 하는 이탤리의 네오 리얼리즘이나 장 뤽 고다르로 유명한 프랑스의 누벨 바그, 그리고 미국의 뉴헐리웃 정도일 것이다.

이 세 개의 사조는 순서대로 영향을 받아 성장했다. 네오 리얼리즘이 누벨 바그에 누벨 바그가 뉴헐리웃에 영향을 주며 새로운 영화를 시도했던 감독들이 출현한 것이다.

영화사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사조는 단연코 프랑스의 누벨 바그다. 이 영화 사조가 영향을 끼치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지금 한국 영화의 기수인 박찬욱, 봉준호 감독도 프랑스 문화원에서 이 영화들을 보며 영향을 깊게 받았다.


누벨바그는 영어로 뉴웨이브란 말로 새로운 물결이란 뜻이다. 물론 음악 장르인 뉴웨이브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 영화 운동은 획일화된 표현 기법과 내러티브 구조를 가지고 있던 기존 영화들에 대한 관습을 깨고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를 행했던 프랑스의 일련의 감독들을 말한다.

장 뤽 고다르의 < 네 멋대로 해라 >나 프랑소와 튀르포의 < 400번의 구타 > 등으로 대변되는 일련의 작품들은 핸드헬드, 점프컷, 현장의 즉흥성 (애드리브) 등을 시도하며 철저한 스토리보드와 기획으로 만들어 내던 영화들을 무시하고 작가주의 경향을 강력하게 내세운다.

그리고 이 누벨 바그는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화운동으로 자리매김하며 프랑스 영화의 자존심이 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 말에 이런 누벨바그의 예술도 거대한 플랫폼의 변화인 TV의 대중적 보급에 따라 사그라들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시기에 198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세 명의 감독인  < 베티 블루 >의 장 자크 베네스, < 나쁜 피 >의 레오 까락스 그리고 < 그랑 블루 (Le Grande Bleu) >의 뤽 베송 감독은 새로운 영화들을 선보이며 누벨이마주 (영어로 New Image) 라고 칭해지게 된다.

이 세 사람의 영화들은 공통점이 있었는데 캐릭터를 설명하는 색깔이나 자아도취적 아름다운 화면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이 당시만 해도 세 감독의 나이는 20대였고, 이들이 선보인 영화들의 색감은 그 어떤 영화보다 화려했고, 아름다웠다. 한마디로 당시에 TV에서는 도저히 구현해 낼 수 없는 색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는 90년대부터 DI (Digital Intermediate) 라는 일종의 디지털 색보정 기술공정이 새롭게 생겨나면서 지금은 영상에 대한 색감이나 색보정뿐만 아니라 거의 CG 수준의 보정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누벨이마주가 나온 시대만 해도 그런 공정이 없던 시대였다.

오로지 네가티브 필름에 필터를 통한 색보정 정도만 가능하던 시대라 인화를 하고 나면 색보정이 거의 불가능한 시대였다. 그렇기에 감독들은 촬영 때부터 원하는 색감을 얻기 위해 소품, 로케이션, 조명부터 필름 종류 선택까지 여러 작업들을 모색하고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부분만 본다면 누벨이마주 감독들이 행했던 일련의 작업들은 아나로그 시대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장 자크 베네스는 캐릭터의 심경 변화에 따라 색감을 달리했고, 레오 까락스는 캐릭터보다 화면 위의 색감을 추구했다. 그리고, 뤽 베송은 철저히 스토리에 따른 한 가지 색감을 가지고 영화를 완성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누벨바그만큼 영향력을 끼치지는 못하고 바로 사그라드는데,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누벨바그처럼 공통의 기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벨바그 감독들이 기존의 획일화된 영화 제작에 맞서며 다양한 창작적 시도를 한 것과는 달리 화면 위의 색감만을 추구한 것이다. 그래서 누벨이마주는 하나의 사조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많았고, 80년대부터 나온 하나의 경향쯤으로 취급되었다.


이 누벨 이마주 감독 중에서 가장 예술적인 사람은 장 자크 베네스였다. 하지만 < 베티 블루 >이후 그는 평단과 관객에게서 외면을 받는다. 레오 까락스는 < 퐁네프의 연인들 >이라는 희대의 망작, 혹은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극과 극의 작품을 만든 후 영화계를 떠나다시피 했다. 연인들의 사랑에 아름다운 색감을 얻기 위해 블럭버스터급의 예산을 낭비한 탓이었다.

그나마 뤽 베송 감독은 그중에 가장 성공한 감독이자 제작자였다.  

이 감독의 초창기 작품인 < 마지막 전투 > 와 < 그랑 블루 >는 분명 의미 있는 작품이었지만, < 그랑 블루 >부터 그는 분명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이 흥행 영화임을 분명히 했다. 무엇보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불어가 아닌 영어로 이 영화를 만들어 미국에 개봉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보다 헐리웃에 진출하길 원하는 감독이었고, 그리고 후일에 < 트랜스포터 > 시리즈 < 테이큰 > 시리즈 등으로 화려한 제작자의 삶을 이루기도 한다.


< 그랑 블루 >는 어쩌면 박찬욱 감독이 평론가 시절에 말했던 것처럼 '물 속에서 숨 오래 참기'나 하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름다운 화면이라면 이 영화처럼 시퍼런 색만 들이대는 영화보다 < 베티 블루 >가 훨씬 뛰어나다.

하지만 뤽 베송의 생각은 많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 영화의 예술적인 측면보다는 흥행적인 측면을 더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1988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그 당시 프랑스에서만 15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대박 흥행을 기록한다.

지금처럼 멀티플렉스 시스템으로 인해 스크린 개수가 수 백, 수 천 개였던 시절이 아니었다. 극장 하나에 스크린 하나라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고, 그런 시절에 1500만 명이라면 어마어마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영화는 누벨바그에서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헐리웃 영화와는 확실하게 차별화된 영화를 많이 만들어 왔다. 첫째로 그들의 언어인 프랑스어를 고수했고, 둘째로 전형적인 캐릭터들을 피해왔으며, 셋째로 획일화된 클리세나 스토리 차용을 멀리했다. 그야말로 감독의 연출만이 제대로 된 예술을 행할 수 있다고 믿어왔으며 그들의 권한을 굳건히 지켜주었다.

하지만 뤽 베송은 이런 감독들과 달랐다.

그는 오히려 헐리웃의 클리세들을 많이 차용하고, 그가 쓴 각본들은 전형적인 헐리웃 스토리들이 많았으며, 불어보다 영어를 사용하는 영화를 더 많이 제작하고 연출했다.


< 그랑 블루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실제 이야기에 기반한 것이었다. 하지만 뤽 베송 감독은 시나리오에 이야기를 첨가하면서 여러 헐리웃 클리세들을 집어넣는다. 대표적인 것이 주인공과 친구의 관계이다. 그 둘의 관계는 경쟁자로서 계속 그려지는데, 실제 세계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더군다나 장 르노가 맡은 친구 역할은 바닷속에서 죽지도 않는다. 주인공의 친구였던 다른 다이버는 후일에 이탤리 의원으로 선출되어 자신을 너무 희화화했다는 이유로 이탤리 내에서 영화 개봉을 반대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영화 속 실제 스토리의 주인공이었고, 자신의 실제 친구였던 다이버 마욜이 2001년에 우울증으로 자살하자 영화 개봉을 허가했다.  

여기에 나오는 로맨스도 그렇고, 특히 일본인 다이버들이 나오는 장면도 당시에 헐리웃 영화에서 유행했던 클리세들이다.

뤽 베송은 이 다이버들의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에 헐리웃 클리세들을 차용함으로써 이야기 자체를 지나치게 픽션 화하고 드라마화하였다(heavily fictionalized and dramatized ). 후일에 이는 뤽 베송이 제작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하는 힘이 되지만 그가 직접 감독한 연출작들은 스토리와 캐릭터면에서 너무 허황되거나 희화화 된다는 평을 많이 받곤 했다.


< 그랑 블루 >는 한국에서 영화보다는 그 제목과 포스터로 더 유명한 영화였다. 80년대의 검열시대를 거쳐 90년대 중반쯤에 불어닥친 수많은 이미지들의 홍수는 영화 포스터를 유행시키기도 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포스터가 < 흐르는 강물처럼 >, < 쇼생크 탈출 >,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세 가지 색 연작', 그리고 바로 이 < 그랑 블루 >의 포스터였다.


영화를 볼 때 주의할 점은 유럽 버전과 미국 버전의 엔딩이 다르다는 것이다.

유럽 버전은 주인공이 물에 들어간 후 나오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결말이 프랑스적이라고 불린다. 주인공이 죽음을 택했는지, 아니면 물속에서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버전에서는 확실하게 주인공이 물 밖으로 나오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해서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개인적으로는 유럽 버전의 엔딩이 좋다. 그 알 수 없는 물의 푸르름과 주인공의 친구에 대한 그리움, 바다에 대한 동경이 더욱 가슴에 와닿기 때문이다.


날씨가 더워지는 6월에 어쩌면 가장 보기 좋은 색상을 가지고 있는 영화가 바로 이 < 그랑 블루 >가 아닌가 싶다. 스토리나 캐릭터에 너무 치중해서 보실 필요는 없지만 그 바다가 가지는 깊은 색들은 이 영화가 가장 자랑하는 것이 다. 그나마 뤽 베송이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살린 마지막 작품이라고 보면 되고, 이후에 그는 철저히 헐리웃 제작자의 길을 가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의미가 깊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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