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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May 22. 2024

미야자키 하야오 (3)

27. On Your Mark

미야자키 하야오는 천재라기보다는 괴물에 가까웠다. 혼자서 연출, 시나리오, 디자인, 작화, 기획까지 하는 감독이니 후세대 감독들인 안노 히데야끼 (에반겔리온), 오시이 마모루 (공각기동대), 신카이 마코토 (너의 이름은) 등은 주저 없이 그를 그렇게 부르며 존경을 표하면서도, 그의 천재성에 질려 신랄한 비평을 날려댈 때도 있었다.

그럼 그런 괴물이 만든 최고의 작품은 과연 무엇일까?

그가 모든 힘을 쏟아부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결정판이라 불리는 < 모노노케 히메 > 일수도 있고, 애니메이션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3대 영화제 중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일수도 있다.

하지만 난 런닝 타임이 7분도 되지 않는 단편 뮤직비디오인 < On Your Mark >야 말로 그가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단 6분 48초가 만들어 놓는 벅찬 액션과 감동, 그리고 묵직한 주제가 있기 때문이다.


< 모노노케 히메 >를 내놓기 전까지만 해도 지브리는 괜찮은 만화영화를 내놓는 스튜디오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그 출중한 작품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은 아직 애들의 전유물로만 기억되던 시기이기도 했고,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디즈니가 석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 모노노케 히메 >를 제작하고 있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길어지는 제작기간과 더불어 지친 심신으로 인해 헤어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지브리 스튜디오보다 엄청난 팬덤을 거느린 유명한 가수팀의 한 명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이었고, 자신들이 발표할 곡의 홍보영상으로 애니메이션을 선택해 이를 지브리 스튜디오에 의뢰한다.

지쳐있었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제안을 단숨에 받아들이고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만들게 되는데, 이게 그 유명한 Chage and Aska (차게아스 듀엣)의 < On Your Mark >였다.


내가 이 작품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고 작품으로 이야기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것은 단 7분 안에 자신의 강한 주제 의식과 더불어 자신이 추구했던 액션 장면, 그리고 내러티브를 통한 열린 결말까지 감독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방사능으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해 경고하며 자연을 상징하는 날개 달린 소녀와 그 자연을 구하려는 두 경찰의 모습을 미야자키만이 표현할 수 있는 특유의 액션으로 강렬하게 보여준다.

이 괴물 감독은 6분 48초에 불과한 단편 영화에 기승전결을 갖추어 완벽한 열린 결말까지 만들어 놓는 그야말로 신의 연출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 단편 애니메이션에는 물론 Chage and Aska 의 노래만 나오지 단 한 줄의 대사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대사가 없어도 그 모든 스토리와 캐릭터,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내내 추구했던 그 주제마저도 선명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단 몇 분을 만들어도 한 편의 장편 같은 완벽한 애니메이션을 연출해 내니 그가 괴물 감독이 아니라면 누가 그렇게 불릴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이 뮤직비디오는 이제까지 보여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과는 많이 다르다.

첫째로 이 뮤직비디오의 배경이나 모티브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에서 비롯되었다. 세상이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자연과 완전히 단절된 것이다. 이제까지 멸망한 미래를 몇 번 다루긴 하지만 항상 최종병기급이 등장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던 것과는 달리 현실의 방사능 피폭에 대해 정확히 지적하고 나온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방사능이 가하는 인류에 대한 위협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그린 것은 이후에도 이전에도 없었다. 이 작품이 공개된 후 그의 인터뷰를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근 미래에 방사능에 오염되는 사태가 올 것이라는 예언 아닌 예언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고 덧붙이며 말이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은 미래에 정말 후쿠오카 원전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둘째로 그의 작품 중 스토리에서 이렇게 의뭉스러운 음모론 (conspiracy theory)을 펼쳐 보이는 작품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정치적인 작품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이 이 < On Your Mark >이다. 분명 인간들은 방사능 오염을 피해 지하에서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오는데, 뜻 밖에도 바깥에는 들판이 있고, 파란 하늘이 있다. 이런 내용으로 인해 지하에 살고 있는 기득권층이 사람들을 가둬놓고 있는 거 아니냐는 음모론에 휩싸인다. 단 6분 48초짜리 단편 만화 영화에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두 개로 나뉜 결말이다. 이 단편은 뮤직 비디오다. 그렇기에 대사가 하나도 없는데, 이런 점이 이 단편의 결말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소녀를 구출한 두 경찰이 중장비와 함께 고가도로를 달리는 액션 장면에서 다리가 무너지며 경찰들은 소녀 보고 날아서 도망가라고 하지만 소녀는 체념한 듯 두 경찰의 손을 붙잡고 그냥 낭떠러지로 함께 떨어진다. 그런데 갑자기 이 애니메이션은 처음으로 돌아가 경찰이 사이비 종교 시설을 다시 수색하고, 두 경찰이 소녀를 구출하는데 소녀의 날개가 빛이 나며 하늘로 떠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더니 고가도로 장면에서 두 경찰이 탄 차가 하얀빛을 내더니 다른 외벽에 박히는 장면으로 대치된다. 그리고 소녀를 데리고 지상으로 간 경찰들은 그녀와 작별 인사를 하고, 소녀는 하늘 높이 날아가 버린다.

이 장면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

소녀가 초능력을 발휘해 시간을 돌린 것인지, 아니면 두 경찰이 희망하는 장면을 넣은 것인지, 그도 아니면 소녀가 진짜 구원의 천사인지 확신하는 관객은 없었다.


이에 대해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 영화에서 만약 당신이 뭔가를 봤다면 그렇게 해석하라'

그게 감독의 연출이었다. 단편 애니메이션이 이중 결말로 오픈성을 지향하든, 아니면 해피 엔딩을 지향하든 순수하게 관객에게 맡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단편 영화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고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우리가 원하는 결말은 과연 무엇일까?

누군가는 해피엔딩을 바라고, 누군가는 합리적인 엔딩을 바란다. 그리고, 어떤 누군가는 비극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자 한다.

이렇게 다양한 결말을 바라는 것이 관객들인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대사 없는 단편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결말을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제시하며 보여준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여기에 나오는 소녀가 천사일 수도 있지만, 천사가 아닌 그냥 날개를 단 사람일 뿐일 수도 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다. 그리고, 두 경찰이 왜 그 소녀를 구하려 하는지 정확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 몇 장면만으로 그 두 경찰이 목숨을 걸고 소녀를 구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건 미야자키 하야오만이 가진 힘이었다.

소녀와 그녀를 구하기 위한 다른 캐릭터들의 희생은 미야자키가 < 미래소년 코난 >이나 < 천공의 섬 라퓨타 >에서 이미  보여준 구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감독이 쌓아온 이야기들이 이 단편으로 축약되었을 때 그 감동은 어마어마했고, 마지막의 결말을 다시 곱씹게 만든다.

이 영화는 지브리 스튜디오 단편모음집을 통해서 보는 게 좋다. 난 사실 가수들은 좋아하지 않지만 이 노래와 함께 이 단편을 보고 있자면 그런 사실마저 망각할 정도로 영화에 빠져드게 든다. 6분 48초의 희망을 보고 싶다면 이 영화 꼭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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