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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May 06. 2024

토니 스콧 (2)

20. True Romance

B급 영화라는 단어가 있다. 소설에서는 펄프 픽션이라는 말도 있고, 그 옛날에는 만화방에서 읽던 무협소설과 하이틴 로맨스라는 문화가 있었다.

다 같은 말이다. 메인 스튜디오의 작품은 아니지만 아이디어 혹은 막장으로 승부하는 영화들이 있었고 이를 B급 영화로 불렀다. 유명한 소설가의 아름다운 필체는 없어도 자극적인 단어들과 상황으로 대중들에게 인기 있던 3류 소설들은 펄프 픽션이라 불렸다. 그 종이질이 다르기에. 그리고 내 세대의 80, 90년대는 그런 누런 펄프지로 대변되는 무협지와 하이틴 로맨스를 읽던 시대였다. 그래서,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둘 중의 하나여야 한다. 고급문화만 수용할 수 있는 돈이 많던가, 아니면 대중적인 것을 너무 싫어해 멀리 했던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토니 스콧 감독의 가장 명작 중의  명작인 < True Romance >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 < 펄프 픽션 > 을 만든 쿠엔티 타란티노는 한 권의 시나리오를 토니 스콧에게 건넨다. 토니 스콧은 그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바로 연출을 수락하고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던 크리스찬 슐레이터와 패트리샤 아퀘이트를 캐스팅해 제작에 들어간다.

왜냐하면 이 시나리오가 끝내주는 펄프 픽션이자 B급 문화의 정수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당시의 미국 사회에서도 거의 막장 수준이었다. 비디오가게 점원으로 찌질하게 살던 한 청춘이 비디오가게 사장의 근속 생일선물로 불러준 창녀와 하룻밤을 보낸 뒤 사랑에 빠져 그녀를 그 바닥에서 빼기 위해 포주를 살해한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마약가방을 보고는 그걸 들고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메인 줄거리이다.

사실 이 영화는 명장인 올리버 스톤 감독의 < 킬러 >라는 영화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 킬러 >도 쿠엔티 타란티노가 시나리오를 썼다.


우선 이 영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브래드 피트'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는 20세기말에 < 흐르는 강물처럼 >을 통해 로버트 레드포드를 잇는 미국의 대표적인 미남 배우로 인기를 얻게 된다. 게다가 연기도 다른 잘 생긴 배우들에 비해 잘했다. 그런 대배우가 젊었을 적 친했던 감독들이 있었는데 바로 스콧 형제였다.

그래서, 그는 그 치솟는 인기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리들리 스콧 감독의 < 델마와 루이스 > 에 델마 (지나 데이비스)를 후리는 양아치역으로 출연했고, < 트루 로맨스 > 에서는 크리스챤 슐레이터가 마약을 팔기 위해 들렀던 친구 집에서 대마초를 피우는 양아치로 특별출연을 한다.

어찌나 그 연기가 대단하던지 그 짧은 출연에도 평론가와 대중들의 호평을 받을 정도였다.

게다가 포주는 게리 올드만, 남녀 주인공을 쫓는 마피아 히트맨은 제임스 간돌피니(TV 시리즈, 소프라노의 주인공), 마피아 두목에 크리스토퍼 월큰, 엘비스에 발 킬머, 형사역에 톰 시즈무어, 아버지 역의 데니스 호퍼 등 쟁쟁한 배우들이 총출동한 작품이기도 했다.


미국 문화는 다른 나라와 달리 대중문화가 엄청 발달한 나라였다. 뭐, 지금은 대한민국이 가장 발달한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대중문화는 모든 세계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노래, 드라마,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곳곳에 그 뿌리를 내렸다. 그래서 일본이나 홍콩 같은 곳에서는 미국 유명 배우나 가수들을 내세운 TV 광고를 만들 정도였다. 그 엄청난 개런티를 주고 말이다.

하지만 미국 내부에는 또 다른 문화 카테고리가 존재했는데, 그게 소위 말하는 주류에 편승하지 못한 B급 문화였다.

영화로 예를 들면 스필버그가 < 죠스 >를 만들자 B급 영화의 대부였던 로저 코만은 그걸 잘게 쪼개서 < 파라냐 >를 만든다. < 쥬라기 공원 >을 만들면 그걸 패러디한 < 카르노사우르스 >를 만들었다. 단순히 유사 작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만 있다면 작은 제작비를 투입해 주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색깔들을 가지면서도 싸구려틱한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B급 영화라고 불렀다. 이런 B급 영화들 중 가장 유명한 장르는 주로 호러나 슬래셔 무비가 많았다.

소설에서는 펄프픽션이라 불리는 하위 장르들이었으며, 지금은 메인이지만 70년대만 해도 힙합과 랩은 미국 거리에서 유행하는 하위 문화였다. 하지만 이런 B급 문화들이 시장이 넓은 미국에서 유행하게 되면 달라진다. 많은 돈은 둘째치고 순식간에 상위 문화를 뒤덮는 힘까지 가지게 된다.

솔직히 이런 문화는 미국만이 가졌던 문화와 시장의 유연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B급 문화의 선두주자 중에 있던 사람이 바로 쿠엔티 타란티노다. 비디오 점원 출신으로 숱하게 많은 B급 영화들과 일본 사무라이 영화, 그리고 어마어마한 양의 펄프 픽션을 읽어댔던 감독 말이다. 그에게 칸영화제 상을 안겨준 영화인 < 펄프 픽션 >도 이런 그의 배경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쓴 < 트루 로맨스 >는 말 그대로 B급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상황이 망라되어 나온다.

밑바닥 성격을 보여주는 포주, 마약을 일삼는 영화 제작자, 매일 하는 일 없이 대마나 일삼는 양아치들, 범죄자보다 더 범죄자 같은 형사들, 주인공을 뒤쫓는 잔인한 마피아와 변태적인 마피아 부하까지.

여기서 나오는 캐릭터와 상황은 한국으로 따지면 막장 중의 막장이다.


하지만 이런 플롯을 바라보는 토니 스콧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그가 이 막장 플롯에 손을 대자 이 영화는 열혈 청춘물로 바뀌며, 찌질이였던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 성장해 무사히 남미 해변가에서 행복을 거머쥘 수 있는 지를 빠른 속도의 화면과 전개로 보여주는 엄청난 영화가 된다. 그러면서 거의 모든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는다.

이 영화는 분명 찌질이가 살인과 마약 판매에 연관되는 이야기인데, 이런 이야기가 토니 스콧에게 넘어가자 어마어마한 청춘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문제는 이 영화가 초반에 R 등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러 부분이 있지만 페트리샤 아퀘이트와 제임스 간돌피니의 폭력씬, 마지막 잔인한 총격씬 (한국 개봉작에서는 거의 안 나옴) 등 때문이었다. 결국 흥행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이 영화는 올리버 스톤의 < 킬러 >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올리버 스톤은 비슷한 남녀 주인공을 내세운 < 킬러 > 에서 완전히 초현실적 영화를 만들어 버리고 만다. 캐릭터들은 자신들의 내면보다는 환상과 환청에 집착하는 캐릭터들로 그려지고, 영화 자체도 그런 초현실적 기법들을 자주 사용한다. 반면에 토니 스콧은 철저히 현실에 발 붙인 캐릭터들을 생동감 있게 그리며 당시 미국 젊은이들을 고스란히 화면에 옮겨 놓는다.


냉전이 종식되며 더 이상 주적이 없는 미국은 90년대 들어서 방황하는 젊은이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미국은 세계 경찰론에 불을 지피며 1991년에 '사막의 폭풍 작전'이라는 걸프전을 감행한다.

하지만 걸프전을 끝내고 그 어떤 탈출구도 보이지 않았고, 미국은 끊임없이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중동 문제에 개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 트루 로맨스 >의 방황하는 젊은이는 그런 미국과는 달랐다. 그 두 주인공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들의 행복을 찾기 위해 과감해진다. 필요하다면 살인도 하고, 악당도 된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혼돈을 탈출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그들에겐 젊음이 있고, 생존 본능이 있다. 그래서 그 마지막 혼돈의 총격전에서 살아남아 무사히 남미의 해변에 안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의 결말은 스튜디오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었다.

토니 스콧은 플롯을 검토해 본 결과 타란티노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이 두 캐릭터가 너무 마음에 들어 죽이고 싶지 않다고. 전체 플롯을 봤을 때 살려야 된다고. 그래서 타란티노도 받아들였는데,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그 마지막 해패엔딩 덕분에 전체 내용이 더 살아났다며 타란티노는 기뻐했다고 한다.


토니 스콧이 바라본 세상은 그의 작품들을 바라보면 정의를 부르짖거나 희망을 찾는 캐릭터들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그건 < 탑건 >이나 < 폭풍의 질주 > 같은 초기작에서만 가끔 나왔을 뿐이다. 오히려 이후에는 오늘 말하는 < 트루 로맨스 > 처럼 생존의 문제에 부딪히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부딪혀 삶의 위협을 받는 캐릭터들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그 이유는 그가 연출한 영화들의 대부분이 액션 스릴러라는 장르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 트루 로맨스 > 는 액션 스릴러 장르가 절대 아니다. 이 장르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청춘모험물이다. 그리고, 그 상황이 피가 튀기거나 눈 하나를 희생해야 되는 것뿐이다. 그래서 난 이 영화를 토니 스콧의 최고 영화로 꼽는다. 쿠엔티 타란티노 같이 강력한 B급 문화의 선두주자가 주는 플롯이래도 언제든지 자신의 힘으로 변주할 수 있는 연출가임을 보여준 것이 바로 이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의 손에 닿으면 영화는 빠른 전개와 더불어 지속적인 긴장감을 일으키는 영화로 탈바꿈한다. 그러면서 슬로우 모션이든 편집이든, 조명이든, 소품이든 어떤 것이든 이용해 최고의 장면을 연출하는 그런 감독이다.

작품이 R 등급을 받아야 하는 잔인함이 있어야 된다면 그는 자신의 해석을 따라 연출을 하는 그런 감독이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화면에 반영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 트루 로맨스 > 이며 그래서 이 영화 꼭 추천한다. 진정한 토니 스콧의 연출의 힘을 보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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