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락천사 >는 < 중경삼림 >을 완성시키기 위한 후속작이었지만 전작보다는 못하다는 평을 받으며 이젠 왕가위 감독은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을 거라고 비평을 받기도 했다.
같은 주제에 같은 멜로에 같은 스타일을 또 보여주는 것은 감독으로서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 해피투게더 >가 나왔을 때 그런 비평가들의 예상을 깨고 세상은 왕가위 감독에게 멜로의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준다.
분명 헤어짐이라는 같은 주제이고, 멜로라는 같은 장르였으며, 스텝 프린팅으로 대변되는 그의 스타일이었지만 이처럼 보다 더 강렬하고, 빛나는 영화로 빚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동성애나 트랜스젠더 등을 다루는 퀴어 장르는 장르 자체가 그렇게 환영받는 영화는 아니다. 분명 성소수자들의 이야기이기에 많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영화에서 다루기엔 소재가 너무나 강렬할 수밖에 없고, 비대중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흥행에 성공한 퀴어 영화 자체는 많지가 않다.
반면에 동성애 자체를 소재로만 녹이고, 다른 장르로 덮는 영화들이 흥행을 크게 한다. < 패왕별희 >, < 왕의 남자 > 그리고 < 버드 케이지 >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로 각각 경극이나 역사적 사실, 혹은 코메디 장르에 동성애 코드를 녹여 흥행을 이룬 작품들이다. 물론 < 캐롤 > 이나 < 아이다호 > 같은 작품들도 있지만 이 작품들은 사실 한국에서 그렇게 큰 흥행을 한 작품들은 아니다.
특히 동성애의 사랑과 이별을 직접적인 주제로 삼는다면 대중들에게 각광받는 작품이 되기가 힘들다.
왕가위 감독은 이런 퀴어 장르에서 그가 만들면 어떻게 다른지 확실하게 보여주는데 그게 < 해피 투게더 >이다.
< 해피 투게더 >라는 작품은 누가 봐도 그 울림이 대단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난 이 영화가 동성애를 다루는 퀴어 영화라는 사실조차 잊어먹게 된다. 이 영화는 그냥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만나고 다시 헤어지고, 그리고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일 뿐이다. 그래서 동성애자들도 이성애자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하고 죽도록 잊고 싶어 하고 죽도록 그리워한다는 것을 더욱 가슴 깊게 파고드는 영화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장국영의 연기이니...
잠시 장국영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알다시피 40대에 장국영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여기에 대해 많은 이들이 그가 동성애자라 차별을 받아 죽었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그 어디에도 장국영이 동성애자라는 증거는 없다가 맞다. 오히려 그가 낸 동성 스캔들은 죽은 후에 그의 동성 애인이라는 사람의 입을 통해서 이루어졌을 뿐이었다. 장국영은 커밍아웃을 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쿨하게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게 남자든 여자든 무슨 상관이냐고, 오히려 둘 다 사랑하게 되면 옵션이 더 많아지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를 했을 정도다.
그가 살아생전 일으킨 스캔들은 모두 여성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스캔들뿐이었다.
정확히는 몰라도 최소한 사람을 그리워할 줄 아는 배우였고, 누구보다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배우였다고 본다.
예전에 한 언론에서 왕가위 감독이 양조위와 장국영을 무조건 브에노스 아이레스로 부른 뒤에 어떤 영화인지 안 알려줬다고 하는 기사를 봤다. 여기까지는 분명 왕가위의 스타일을 봤을 때 팩트라고 생각하는데, 다음에 양조위가 자신이 장국영과 게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호텔에서 안 나왔다는 부분이 있었다. 그때 장국영이 양조위를 찾아가 '이건 영화일 뿐이고 넌 내 스타일도 아냐. 당장 촬영을 시작하자'라고 이야기했다는데, 사실 믿기 어렵다. 훗날에 양조위가 부정하기도 했다. 또한 장국영이 커밍 아웃도 안 한 상태에서 상대 배우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리도 없고, 양조위가 게이역을 한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가장 멋진 장면은 크게 세 가지다. 장국영이 손을 다친 후 양조위에게 다시 찾아왔을 때이다. 그때 양조위의 어깨에 기댄 채 다친 손들을 힘없이 내려놓은 장국영의 모습은 그의 우수 어린 표정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연기였고, 그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양조위의 모습은 사랑과 동시에 미움을 동반하는 표정이 압권이다. 그리고 스텝프린팅으로 표현된 배경은 이 둘의 불안함을 대변해 주는 절묘한 장면이 된다.
둘이 엄청난 싸움을 하다가 서로 허리와 손을 잡고 탱고를 추는 장면은 < 아비정전 > 의 맘보춤을 능가하는 장면이다. 노랗고 녹색인 조명 및에서 탱고 음악과 함께 보이는 그 춤씬은 역대 춤장면이 나온 영화들 중 단연코 최고일 것이다. 완벽한 음악과 완벽한 춤, 그리고 거기에 깃든 애증의 관계는 그 둘이 아니었으면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양조위가 홍콩으로 떠난 뒤 다시 찾아온 장국영이 양조위가 떠난 것을 알고 이별의 사무침에 침대 이불을 잡고 흐느끼는 장면이다. < 패왕별희 >에서 이미 보여준 여성 연기가 있기에 별로 깊게 보지 않았는데, 이 영화를 장국영이 사망한 후에 보자 그 이별의 절절함이 너무나 가슴 깊이 다가왔다. 장국영이 정말 현실에서도 양조위를 사랑한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의 감정 연기는 마음을 크게 울렸다.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대사는 장국영이 양조위를 찾아올 때마다 외치는 '우리 다시 시작해' 다.
이 대사는 왠지 모르게 가슴에 계속 남는다. 연인끼리 이별 후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감정이 그 대사에 들어있고, 그 대사를 장국영이 하기 때문이다.
양조위는 훗날 자신의 콘서트에서 장국영의 기일에 이 대사를 장국영의 메세지함에 남겨 놓았다고 고백했다.
그 대사는 그냥 사랑하는 사이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정말 사람이 보고 싶고 죽도록 그립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 대사 하나만으로 퀴어를 넘어선 진정한 멜로 영화가 될 수 있었다.
감독들은 영화에서 항상 리얼리티를 추구하고자 한다. 물론 어떤 예술 영화는 이마저도 높다란 경지로 흘려보내지만 대부분의 감독들은 자신의 영화에서 설득력이 있는 내러티브와 살아 있는 캐릭터를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 영화 기획 과정에서 시나리오를 몇 번이나 다듬고 또 다듬는다. 하지만 왕가위 감독은 이런 부분을 현장에서 채워나가는 감독이었다. 그런 감독이 1997년 홍콩 반환을 앞두고 일관되게 멜로라는 장르를 통해 홍콩 반환에 대한 홍콩인들의 심리를 화려한 영상 속에서 구현하니 천재라고 표현을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에서는 가장 피해야 되는 기법 중 하나가 나레이션이다. 영상으로 보여 줄 수 있는데 소리를 따로 넣는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말이다. 그리고, 독백은 배우들이 가장 어려운 연기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 독백의 감정을 긴 대사동안 유지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관객들이 지루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왕가위한테 가면 예술이 된다. 나레이션은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고 독백은 넋을 놓고 보게 된다.
이 영화가 개봉한 시기는 홍콩이 바로 중국에 반환된 1997년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묘한 분위기를 많이 풍기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97년까지 왕가위의 영화는 모두 홍콩 반환에 대한 생각이 그 밑에 깔려 있다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홍콩을 떠나 브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살고 있는 두 홍콩 청년의 이야기는 결국 어쩔 수 없이 홍콩으로 돌아가는 청년과 지독한 이별을 겪으며 남아야 하는 청년으로 나뉘게 된다. 그래서인지 '우리 다시 시작해'라는 대사는 마치 홍콩에 대한 감독의 마음을 대변하는 대사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홍콩에 대해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말이다. 그래서 극 중에 양조위도 홍콩이 반환되는 시점임에도 장국영이나 장첸과 헤어짐을 택하고 홍콩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하게 된다. 이건 홍콩에 대한 감독의 애증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홍콩에서 자라나 홍콩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이 홍콩에 대한 시선을 격렬하게 아픈 이별을 보여주며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단순한 퀴어 영화가 아니기에.
장국영이 다시 보고 싶다면 난 단연 이 작품을 그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로 친다. 그러니 이 작품을 보시길 바란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진정한 장국영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또한 난 이 작품이 왕가위의 최고작으로도 생각한다. 최고의 연기, 최고의 미장센, 최고의 연출이 어우러진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왕가위는 칸영화제 감독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홍콩 영화나 퀴어 영화를 싫어하시는 분이라도 이 영화는 꼭 보시기를 바란다. 난 이 영화에서 멜로 영화의 위대함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