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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May 03. 2024

토니 스콧 (1)

19. Top Gun

한국의 손흥민은 EPL 에서 실력에 비해 가장 저평가받는 축구선수로 여겨진다. 실력은 출중하지만 우승컵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고, 아시안이라는 차별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토니 스콧 감독은 내가 생각하기에 영화사에서 가장 저평가받고 있는 감독 중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그 출중한 연출 실력에 비해 말이다.


토니 스콧 감독은 < 에어리언 >, < 글래디에이터 >, < 델마와 루이스 > 등으로 거장 소리를 듣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친동생이다. 둘 다 광고 연출로 시작해서 영화 연출로 명성을 쌓았지만 리들리 스콧과는 다르게 토니 스콧의 작품들은 상업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항상 저평가되었다. 쿠엔티 타란티노 감독은 항상 이런 지점에 대해 불만을 내뱉기도 했다.


토니 스콧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모두 '아 이 작품!'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는 < Top Gun (탑건) >으로 세계적인 흥행 감독이 된 이후 < Beverly Hills Cop 2 (비버리힐즈 캅 2) >, < The Last Boy Scout (마지막 보이스카웃) >, < True Romance (트루 로맨스) >, < Crimson Tide (크림슨 타이드)>, < The Fan (더 팬) >, < Enemy of the State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 < Spy Game (스파이 게임) >, < Man on Fire (맨 온 파이어) >, < Deja vu (데자뷰) >, < The Taking of Pelham 123 (펠햄 123) > , < Unstoppable (언스토퍼블) >등을 연출했다.

토니 스콧의 필모를 보면 당연히 느낄 것이다. 예술 영화라고 불릴 영화는 한 편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대부분 어느 정도 흥행을 담보한 상업 영화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여러 의문이 생긴다. 예술 영화와 상업 영화의 경계는 과연 무엇일까? 정치적, 철학적 혹은 사회적 함의를 담아야만 좋은 영화일까? 좋은 감독이란 예술적, 상업적 목적을 동시에 담보하는 감독을 말하는 것일까? 상업 영화를 잘 만들면 좋은 감독이 아닐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니라고 본다.

난 좋은 감독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영화 안에 드러낼 수 있는 감독이라 생각한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자신의 이탈리아인이란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 미국의 대표적인 서부영화 장르를 주로 연출했음에도 말이다. 샘 페킨파는 자신이 폭력을 추구하고 있음을 애써서 숨기지 않았고, 장철은 언제나 남자들의 의리와 배신에 대해 생각했던 사람이다. 오우삼은 남자들의 결투에 진심이었고, 왕가위는 항상 이별을 생각하는 감독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영화에 드러낸다.


토니 스콧도 그런 감독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형인 리들리 스콧과 더불어 광고 연출부터 시작한 감독이었다. 형과 함께 같은 학교를 나와 형과 함께 같은 바닥에서 영상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광고 연출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연출 경험은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훌륭한 밑바탕이 된다.


이런 스콧 형제에게 가장 중요한 나라는 영상을 시작한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영화도 영국 문화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영국문화는 미국 문화와는 많이 틀리다. 영어 악센트부터 시작해 좋아하는 문화적 코드까지 말이다. 특히 영국부터 시작한 추리와 서스펜스 문화는 영국 사람들에게는 뿌리 깊게 뻗어 있다. 셜록이 베이커 거리 221B번지에 살기에. 그리고 이런 영국 문화는 이 두 형제를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 형제들의 가장 큰 특징은 어떤 장르든 스릴러를 바탕으로 삼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때때로 메이저 스튜디오에 의해 그런 부분이 꺾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만드는 대부분의 영화에는 <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 같은 촘촘한 스릴러 느낌과 더불어 그 미로에 갇힌 인간들의 심리를 그려낸다.

특히나 토니 스콧은 <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 < 더 팬 >에서 이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토니 스콧 감독을 액션 영화감독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의견은 다르다. 난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액션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말하는데 액션 영화와 액션 스릴러는 다른 장르에 가깝다. 그가 만드는 영화들은 사실 스릴러에 가깝다. 그리고 스릴러는 알프레드 히치콕 이후 가장 감독들이 만들기 어려운 장르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히치콕 이상으로 잘 만들 수 없기에.

그런데 토니 스콧은 그 장르에 액션을 첨부해 멋지게 피해 가는 감독이었다. 정말 토니 스콧의 영화를 보면 어떻게 해야 감독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절절히 다가온다. 감독이 끌어내야 하는 배우들의 연기와 필요한 장면들을 위한 밑작업, 그리고 편집이 왜 감독과 함께 해야 되는지를 보여주는 거장이 바로 그다.

그가 표현하는 인간들의 심리는 오밀조밀하게 배우들의 표정과 액션을 통해 나타나고, 토니 스콧은 언제나 그런 스릴러 플롯 위에 액션을 장착시킨 감독이었다.
상업 영화만 했다고 해서 절대 폄하될 감독이 아니지만, 아마도 이 감독의 흥행작이 < 탑건 > 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눈으로 본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토니 스콧 감독의 작품 중 두 번째 작품인 < 악마의 키스 >는 뱀파이어 이야기에 스릴러와 차가운 도시적 감각을 결합시킨 수작이었다. 하지만 개봉당시 평단이나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면서 차기작이 톰 크루즈의 전설적인 작품인 < 탑건 > 을 하게 되면서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떠오른다.  


< 탑건 >의 성공은 절대적으로 미군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이야 컴퓨터 그래픽으로 어떻게든 화면 위에 만들겠지만, 이 영화가 개봉한 해가 1986년이니 그런 컴퓨터 그래픽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었다. 그랬기에 화면 위에 실제 F-14 톰캣을 올려놔야만 했고 미군의 지원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당연히 미군의 눈치를 보며 시나리오를 써야만 했고, 그래서 스토리는 무엇보다 평이했다.


훌륭하게 교육을 받은 조종사들이 인도양에서 미국이 냉전의 주범으로 지목한 소련의 전투기와 도그파이터까지 감행해 승리한다는 내용이니 여기에 걸친 프로파간다(정치적 구호들)만 해도 엄청나다. 예를 들어 지금 트럼프가 외치는 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는 이 영화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대 닉슨의 철수 명령과 더불어 베트남 전쟁을 패배로 맞이한 미국은 깊은 상처를 안게 되었다. 그럴 때 나타난 대통령이 80년대의 레이건이다. 그는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회복을 주장했고, 엄청난 물량과 달러 공세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까지 이끌어 내는 세계사의 주역이 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런 레이건 행정부의 영향력은 헐리웃에도 끼치게 되었고, 이럴 때 엄청난 제작비와 미군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이루어진 영화가 바로 이 < 탑건 >인 것이다. 그러니 누가 봐도 그 정치적 구호들은 손발을 오그라뜨리고, 순간 '이건 뭐지?'라는 기분까지 들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감독이나 주연 배우조차 재미로만 보라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제작사가 미군에 돈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톰캣 전투기 한번 뜰 때마다 7800달러를 지급해야 했고, 항공모함 한번 방향을 틀 때마다 2만 5천 불을 지급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연출의 기술로만 이 영화를 본다면 이 영화의 연출은 너무나 세련되었다. 첫 장면을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톰캣이 이함을 준비하는 모습은 지금도 남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불타오르게 만든다. 영화에서 가장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타오르게 만드는 기법 중 하나가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컷들의 집합이다. 람보가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면서 여러 무기를 정비하고 총알을 채우는 장면을 여러 컷으로 차근차근 보여주는 것들이 그런 시퀀스이다. 이런 시퀀스들은 많은 액션 영화들에서 차용해서 쓰는데, 그중에 가장 멋있고 세련되며, 안정적인 컷들로 구성된 것이 바로 < 탑건 >의 첫 장면인 것이다. 그 장면만 보면 정말 누구나 조종사가 되고 싶어 할 것이다. 실제로 이 < 탑건 >의 상영 이후 미군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엄청 늘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들도록 영화를 연출한 것은 다름 아닌 토니 스콧 감독이다. 화면 내의 모든 배치와 인물들의 구도 이런 감각적인 연출은 토니 스콧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 탑건 >을 만들던 때만 해도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토니 스콧의 빠른 연출에 주목했다. 스피디한 화면의 전개와 빠르게 움직이는 전투기와 오토바이. 그리고 헐리웃 흥행 요소를 모조리 때려 박은 플롯들은 전 세계 3억 9천만 달러라는 말도 안 되는 흥행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토니 스콧은 액션을 잘 연출하는 감독으로 알려진 것이다.

하지만 < 악마의 키스 >를 본 평론가들은 < 탑건 >에 박한 점수를 주었는데, 이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런 영화에 토니 스콧이 자신의 정체성을 화면에 드러낼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거대한 제작비의 압박 속에서는 자신의 주장보다는 대중의 정서를 따라가는 것이 감독들의 속내이다. 물론 안 그런 감독도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여기서 < 악마의 키스 > 가 아니라 < 탑건 >을 토니 스콧의 첫 작품으로 고른 이유는 이 영화가 이후에 토니 스콧이 가는 연출의 길에 너무나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너무 큰 흥행에 이후로 영화 연출의 길은 쉬워졌지만 토니 스콧의 연출 스타일을 철저하게 막은 것은 바로 메이저 스튜디오들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 죠스 >이후 블럭버스터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제작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이런 제작비를 책임지기 위해 스튜디오들은 토니 스콧 같이 연출을 잘하면서도 안정적이면서도 스튜디오들의 요구를 잘 따라줄 수 있는 감독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이후 차기작은 당대의 최고 배우였던 케빈 코스트너와 아카데미 수상자인 앤서니 퀸이 나온 < 리벤지 >< 탑건 >의 지상판 < 폭풍의 질주 >를 연출하게 된다. 하지만 전해지는 바로는 토니 스콧은 정말 이 두 작품을 하면서 죽기보다 싫어했다고 한다. < 리벤지 >는 스튜디오의 간섭이 너무 심해 산으로 가는 영화가 되었고, < 폭풍의 질주 >도 스튜디오의 요구로 < 탑건 >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 마지막 보이스카웃 >에서도 제작자인 조엘 실버의 간섭에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 다음작인 < 트루로맨스 >에서 그를 영화 제작자이자 코카인 중독자로 만들어 캐릭터화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했다.

이렇듯 그의 작품들은 전부 < 탑건 >의 기록적인 흥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이 되고 만 것이다. 이로 인한 스튜디오들의 간섭은 토니 스콧이란 엄청난 감독을 미국 영화사에서 애매한 위치에 있게 만들어 버렸다.


토니 스콧은 누구보다 감각적인 연출을 하는 데 있어서 뛰어났다. 플롯이 존재하면 그 플롯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그 플롯에 필요한 화면의 장치들이 소품인지, 조명인지, 배우들의 위치인지, 편집이나 후반작업에서 해나가야 할 무엇인지 누구보다 빨리 캐치해 내는 연출가였다. 그래서 < 마지막 보이스카웃 >이후 그가 연출한 작품들을 보면 화면 내 공간의 사소한 부분까지 감독이 신경 쓰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 트루 로맨스 >의 마지막 총격전이 일어나는 호텔방, < 크림슨 타이드 >의 긴장감이 넘치는 잠수함 내부, <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의 감시 체계하의 개인 공간, < 스파이 게임 >의 팽팽한 눈치싸움의 CIA 사무 공간 등은 토니 스콧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만큼 그는 플롯을 바탕으로 한 공간 창조와 그 속에서의 긴장감 유지를 위한 촬영에 대해 누구보다 앞서 있는 사람이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런 뛰어난 실력의 감독이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가 갑자기 다리에서 뛰어내린 이유를 알 수는 없고 그냥 막연한 추측밖에 내놓을 수밖에 없지만, 마지막에 그는 형과 통화하며 자신의 차기작으로 인해 우울해했다고 한다.


그는 연출을 할 때마다 사진에서 보듯 빨간 모자를 항상 썼는데, 이 빨간 모자도 < 탑건 >부터 시작한 버릇이었다.

사실 < 탑건 >은 내 기억 속에 'Take my breath away'라는 노래만 빼고는 가물가물한 영화이기도 하다. 오래전에 본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프로파간다가 심해서 보기 힘든 영화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서 짤막하게 나오는 맥 라이언과 팀 로빈슨, 그리고 이 영화로 뜨게 되는 발 킬머의 젊은 모습까지 보는 것은 이 영화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난 이 영화가 후속작인 < 탑건 : 매버릭 >보다 잘 만든 작품이라 자신한다. 왜냐하면 연출가가 토니 스콧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어떤 다른 이유도 붙지 않는다. 그래서 프로파간다를 제외한 재미만으로 이 영화를 한번 즐겨보시길 적극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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