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페킨파 감독의 작품 중 가장 페킨파 다운 작품이라면, 내가 지금 말하려는 작품은 사실 빼야 한다.
가장 페킨파 다운 작품 세 개를 꼽으라면 물론 난 < The Wild Bunch >, < Pat Garrett and Billy the Kid (관계의 종말) >, < Bring Me the Head of Alfred Garcia > 를 꼽는다. 이 세 작품 중에 < Get Away >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 Get Away >가 페킨파 감독이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내 주위에는 적었다.
오히려 나중에 알렉 볼드윈과 킴 베이싱어가 부부시절에 나온 리메이크 영화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리메이크 영화가 원작보다 그렇게 큰 히트를 안 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해서는 한 번쯤 꼭 이야기하고 싶었다. 왜 이 작품이 페킨파 작품일 수밖에 없는지 말이다.
19세기말에 르미에르 형제가 기차가 들어오는 모습을 찍은 50초짜리 동영상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동영상위에 스토리를 입히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캐릭터를 설명하고 아름다운 구도와 장면을 얻을 수 있는 지를 연구했고, 이는 고스란히 감독의 몫이 되어 감독은 스토리텔러라는 지위도 얻게 된다.
존 포드 감독은 그런 스토리텔러라는 임무를 가장 훌륭하고 가장 명확하게, 그리고 심플하게 발전시킨 인물이었다. 그가 영화사에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지위를 획득한 것은 모든 영화의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그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 감독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많은 서부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들 중 하나가 술집에 문을 열고 들어간 주인공 컷, 그리고 바닥에 쓰러지는 악당 컷, 문을 열고 나오는 주인공 컷 세 개만으로 스토리를 완성할 때가 있다.
관객들은 이런 장면에서 주인공이 들어가서 악당을 쓰러트리고 나왔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는데, 여기에는 주인공과 악당이 싸우는 시간이 생략되어 있다.
그래도 관객들은 시간의 연속성을 인지하는데 어떤 불편함도 없으며 오히려 내면에서 싸우는 장면을 상상하며 즐거워하게 된다.
난 페킨파 감독이 이런 액션 시간을 기가 막히게 다루는 최고의 스토리텔러들 중에서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단순하게 액션의 시간을 줄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슬로우 모션을 통해 오히려 액션의 시간을 늘려가기도 했다.
< Get Away > 는 그런 감독의 연출이 인트로와 엔딩에 잘 드러나 있다.
페킨파는 10분이나 되는 인트로에 있어서 맥코이 (스티브 맥퀸)의 감옥 생활을 보여준다.
여기서 그는 그의 장점인 교묘한 편집을 통해 시간의 순서를 관객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기계 앞에서 노역을 하는 맥코이를 보여주고, 여기서 발생하는 소음을 기본으로 페킨파는 여러 번의 교차편집, 그리고 스틸컷 혹은 프리즈프레임 (Freeze Frame)을 이용해 그가 마치 무한루프의 삶을 감옥에서 보내는 것처럼 보여준다. 그가 감옥에서 생활하는 시점이 어디서부터 시작해 어떻게 끝나는지가 아니라 그 기계음처럼 계속 무한루프로 흘러감을 보여주는데, 이런 시간의 순서를 무시한 그의 장면들은 맥코이가 얼마나 감옥에서 나오고 싶어 하는지를 아주 효율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그래서 이 시퀀스의 마지막에 가석방이 좌절되면서 찾아온 아내에게 '내가 나갈 수 있게 무슨 짓이라도 하란 말이야'라고 소리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극대화된다. 물론 이 말은 결국 아내로 하여금 가석방을 책임지고 있는 악당과 잠자리를 하도록 유도한다.
이후 맥코이가 감옥을 나와 아내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장면도 시간을 알 수 없는 이런 교차편집을 이용해 이 둘의 관계가 묘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알려준다.
페킨파 감독은 단순히 멋을 부리기 위해 폭력적인 죽음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거나 시간을 마구 뒤섞는 것이 아니다.
그는 분명 스토리나 캐릭터에 대한 이해점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스토리와 캐릭터의 지향점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결말이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이런 그의 연출 의도와 목표는 여러 교차편집과 프리즌프레임, 슬로우모션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갔고, 그런 감독의 의도가 있었기에 관객들은 그 장면들에 매료된 것이다.
이 영화는 존 톰프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소설 자체는 많은 액션이 없었음에도 페킨파 감독은 시나리오를 쓴 월터 힐과 의논해 많은 액션 장면을 넣었다. 월터 힐도 이후에 < 48시간 > 이나 < The Street of Fire >를 연출하게 되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마초 감독 중의 한 명이다.
시나리오 작업 당시부터 쿵짝이 맞은 이 둘은 많은 액션씬을 넣게 된다. 게다가 스티브 맥퀸도 마초였다. 이후에 멕시코 국경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자동차 추격씬이나 중간에 경찰차가 폭파되는 장면은 모두 맥퀸의 제안 같은 명령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마초들 세 명이 모여서 영화를 진행했으니 영화 현장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나마 월터 힐은 현장에서 비중이 작아 가만히 있었지만, 페킨파 감독과 맥퀸은 사사건건 부딪힌 것으로 유명했다.
스티브 맥퀸은 개런티를 한 푼도 안 받는 대신 영화 흥행의 10%를 받기로 하고 제작자 중 한 명으로 나섰다. 이런 제작자의 지위를 가지고 한시도 페킨파 감독을 놔두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페킨파 감독은 현장에 매일 같이 술병을 들고 와 연출을 하며 취하도록 마셨다.
여기에 맥퀸이 가세해 둘이 취했다 하면 술병이 날아가는 모습까지 보였다고 하니, 촬영 현장의 분위기는 누가 봐도 최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약 330만 불을 들여 3,600만 불을 벌어 들이는 대박을 쳤다. 맥퀸은 이 영화로 많은 돈을 벌 수가 있었다.
평단에서는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린 영화였지만, 그 해 가장 돈을 많이 번 영화 8위에 있게 된다.
그리고 페킨파 감독의 영화 중 이 영화만큼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고 히트시킨 영화는 없었다.
결과는 대중적으로 좋았지만, 그 제작 과정은 그러지 못한 영화였다.
감독을 선임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은 험난했고, 제작자로서의 맥퀸의 영향력이 너무나도 컸다. 이 영화의 자동차 폭파씬도 맥퀸이 아이디어를 내면 추가해야 될 정도니 말이다.
프로듀서는 이 영화를 찍는 내내 속을 끓일 수밖에 없었다.
촬영 현장의 감독과 주인공의 충돌을 막니라 진땀을 흘리는 것은 둘째 치고, 맥퀸이 여기 나오는 여주인공인 알리 맥그로우( < 러브 스토리 > 의 여주인공)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스캔달이 새나갈까 봐 노심초사했음이 분명했다.
알리 맥그로우는 당시에 가장 잘 나가는 모델이자 배우였다. 하지만 솔직히 이 영화에서 그녀의 연기는 바닥을 헤맨다. 스스로도 자기가 너무나 연기를 못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너무 청순한 역으로 유명해진 것도 있겠지만, 아마도 남주인공과의 스캔들에 더 신경이 쓰였던 것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이 영화의 편집권이 스티브 맥퀸에게 있다는 비밀까지 있었다. 헐리웃 영화에 있어서 마지막 편집권은 항상 제작사에 귀속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영화가 만들어진 뒤 '디렉터스 컷'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봉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 Get Away >의 편집권은 안타깝게도 배우에게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 사실을 촬영이 끝나기 전에 페킨파가 듣게 되었다면 현장은 파탄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연히 촬영이 끝나고 이 소식을 들은 페킨파 감독의 분노는 엄청났으며, 그는 완성본을 보고는 잘 생긴 바람둥이 자식만 돋보이는 편집을 했다며 욕을 해댔다.
사실이 그랬고, 이 영화는 페킨파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성공한 작품이지만, 반대로 페킨파의 정서가 가장 덜 묻었난 작품이 돼버린다.
하지만 장인의 폭력미학을 아무리 가위질을 배우가 한다고 해도 막을 수는 없었다.
난 이 영화의 가장 페킨파다운 장면은 호텔에서의 산탄총 총격씬이라고 생각한다.
라디오를 하나 사 오면서 산탄총을 함께 들고 나오는 스티브 맥퀸의 모습부터 두 부부가 호텔을 습격해 온 킬러들과의 전투씬까지. 그 어느 것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컷들로 구성되어 있다.
맥퀸의 산탄총에 악당들이 슬로우모션으로 죽어가면 관객들은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쾌감을 느낄 정도였다. 분명 맥퀸 부부는 절대 영웅도 아니고, 선한 사람들도 아닌 보니와 클라이드 같은 갱단 커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보다 더 나쁜 놈들로 묘사되는 캐릭터들을 산탄총으로 산산조각 내는 씬들은 환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페킨파 영화 중 거의 유일한 해피엔딩 영화가 될 수 있었다. 관객들이 이 호텔씬을 통해 부부들에게 확실히 지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감독은 스토리가 제대로 못해낸 부부에게의 감정이입을 이 호텔씬 하나로 다 채워버린 것이다.
이 호텔 총격씬은 너무나 유명해서 후일에 많은 감독들에게 영감을 준다. 특히 오우삼은 < 영웅본색 2 > 중간에 아예 이 장면을 오마주 한다. 가장 멋있는 주윤발의 계단 타기 쌍권총과 더불어 말이다.
페킨파는 보건대 자동차 추격씬을 잘 연출하는 감독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한 적이 별로 없는 감독이었다.
주로 수정주의 서부극을 찍었던 그에게 자동차보다는 말이 더욱 어울렸을 거로 보인다.
그리고 이 영화를 홍보하는 것은 호텔의 총격씬이 아니라 항상 자동차 추격씬이었다. 그중에서도 차가 날아가 집 정문에 있는 캐노피 기둥을 모두 부수는 장면 말이다. 맥퀸이 제안했던 씬들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자동차 추격씬으로 더 유명해진 영화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트로의 감옥씬과 엔딩의 호텔 총격씬이야말로 페킨파의 냄새가 그득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배우만 돋보이는 편집을 하고, 아무리 자동차 추격씬이 더 유명한 영화일지라도 페킨파의 영화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 Get Away > 를 볼 때는 이런 감상포인트를 두고 봐도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