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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Mar 22. 2024

샘 페킨파 (3)

6. Pat Garrett and the Billy the Kid

샘 페킨파 감독 최고의 작품을 뽑으라고 한다면 이 두 작품 중에 하나일 것이다.

<< Bring Me the Head of Alfred Garcia >>

< Pat Garrett and Billy the Kid (관계의 종말) >, < Bring me the Head of Alfred Garcia (가르시아) >

이들 작품에는 페킨파의 정수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연출권과 편집권에서 큰 차이가 있다.

< Pat Garrett & Billy the Kid > 는 스튜디오 제작사의 편집권으로 인해 엉망이 되면서 개봉 당시에 엄청난 혹평을 받아 버렸다. 하지만 이후에 다시 복원판이 나오면서 재조명된 작품이다.

반면에 < Bring Me the Head of Alfred Garcia > 는 온전히 페킨파가 자신만의 의지대로 연출을 하고 편집을 했던 유일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수위 높은 폭력씬으로 인해 애초부터 R 등급을 받았었고, 여러 나라에서 개봉 금지까지 당하기도 한다.


이 두 작품을 비교하자면 전자는 페킨파의 연출에 있어서 가장 세련미가 돋아난 작품이다. 물론 밥 딜런의 음악에 큰 빚을 지고 있지만, 작곡은 뮤지션이 해도 음악이 들어가는 부분을 결정하는 것은 감독이다.

무엇보다 페킨파 감독 특유의 교차편집과 슬로우모션이 밥 딜런의 음악과 맞물려 들어가면서 내가 본 그의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그에 반해 후자는 시체 머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온갖 알 수 없는 폭력들이 최고의 수위를 달리는 영화이다.

게다가 당시에 논란이 될 수 있는 시체 훼손, 동성애 킬러 커플 중 한 명이 자기를 유혹한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여자에게 행하는 주먹질, 불멸의 히피 영화인 < 이지 라이더 >를 빗댄 바이시클러 두 명의 이유 없는 공격 등 그야말로 뜬금없는 폭력의 향연이다.

마치 당시에 조금씩 쇠퇴하고 있던 자동차 극장용 영화 (Drive-In Theater Movies)를 버무려 놓은 듯한 이미지들은 고어 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연출되었다. 물론 이 영화는 분명 서부극의 변주이다.


< The Wild Bunch > 에서 갱단 중 한 명인 엔젤을 구하기 위해 벌이는 마지막 총격씬은 거대하고 비장미가 넘쳤지만 선과 악이 불분명한 캐랙터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란 쉽지 않다.

< Get Away > 에서는 주인공 부부에 공감하기보다는 스티브 맥퀸의 잘난 맛에 영화를 감상하게 된다.

< Bring Me the Head of Garcia > 에서 주인공인 베논을 이해할 수 있는 관객들은 얼마나 될까? 이 영화에서 정말 그 정치적인 함의를 읽지 않고 순수히 캐랙터에 동화되어 영화를 보는 것은 어렵다. 마초적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주인공과 죽고 죽이기 위해 태어난 캐릭터들의 모습이 인간의 본성이나 현실에 가장 가깝게 느껴져 더욱 보기 힘들다.


이런 영화들과는 달리 페킨파 감독은 < Pat Garrett & Billy the Kid > 에서 한국 제목처럼 캐릭터들의 상호관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Pat (제임스 코번)과 Billy (크리스 크리스토퍼슨)가 초반에 만나는 장면은 첫 시나리오에는 없었다. 물론 Pat과 Billy는 서부시대에 실존했던 인물들로서 실제 역사에서도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감독은 둘의 관계를 극대화하기 위해 초반 장면을 주장해 넣었다.

그러다 보니 둘은 이미 친구로서 많은 우정을 쌓아 온 것처럼 느껴진다. 무법자에게 언제 잡으러 갈 거라고 알려주는 보안관이 서부시대의 실제 전설 중의 하나이니 말이다.

이렇듯 영화는 초반의 관계를 기틀 삼아 그 관계가 양측의 폭력으로 인해 어떻게 조각조각나고 사라지는지 밥 딜런의 유명한 음악과 함께 아름답게 보여준다.

이런 관계의 시작과 더불어 종말을 향해 치닫는 영화는 오우삼 감독이 헐리웃에서 처음으로 히트를 시켰던 < 브로큰 애로우 > 에서도 잘 나타난다. 사각의 링 위에서 권투를 하며 우정을 다지는 크리스찬 슬레이터와 존 트래블터, 하지만 그 우정의 관계는 핵폭탄을 향한 추격전으로 돌변한다. 오우삼 감독이 페킨파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 중 하나인데, 이 두 영화의 내용이 비슷한 것은 어찌 보면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 밥 딜런은 정말 많은 역할을 한다. 연기를 잘하지는 못 했지만, 잘 어울리는 조연급으로 직접 출연도 했으며, 그가 작곡하고 부른 노래들은 영화의 질을 몇 단계나 높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벨상 수상자가 쏟아내는 감미로운 가사들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의 화면 위로 펼쳐질 때의 느낌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Knocking on Heaven's Door 가 나오는 씬은 수려한 풍경 속에서 죽어가는 Pat의 동료와 아내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데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

폭력과 어울리지 않는 듯한 그의 노래들은 마치 이 영화를 위해 존재하듯 플레이되고, 그 음악들은 하나같이 관객의 정서를 자극한다.

밥 딜런을 영화에 소개해 준 사람은 주인공 Billy로 나온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유명하지만 흔하지 않은 가수이자 배우이다.


제작사인 MGM 회장인 오브레이 (Aubrey)는 초반부터 페킨파 감독을 매우 싫어했다. 그의 연출 능력은 알고 있지만 마초에 약물중독에 술주정뱅이 노숙자라는 인식이 그에게 박혀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제작 중간에도 페킨파는 음주를 멈추지 않았고, 자신의 영상을 얻기 위해 제작비를 물 쓰듯 썼다.

당연히 제작비는 오버가 되었고, 회장인 오브레이가 이를 좋게 볼 리가 만무했다.

회장은 제작을 중단시키기까지 했는데, 페킨파는 상관없다는 듯 제작사 몰래 스태프들을 몰아세워서 임금도 안 주고 야간 촬영을 진행하기까지 한다. 정말 현장 장악력 하나만큼은 혀를 내두를 정도의 마초 감독임이 분명했다.

물론 이번 영화에서도 주인공인 크리스 크리스토프슨하고 끝장을 볼 정도로 싸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는 완성되었고, preview는 124분이 나왔다. 하지만 MGM 회장은 제작사의 편집권을 내세워 가위질을 했고, 극장에서는 106분짜리로 상영하게 된다. 이 가위질로 인해 흥행이나 비평 모든 면에서 대참패를 겪게 된다. 한국에서는 극장 상영 뒤 대우비디오에서 작품을 90분짜리로 내놓는데, 정말 스토리조차 이해 정도의 허접한 버전이었다.

거장인 마틴 스코세지가 1973년에 < 비열한 거리 >를 발표하면서 페킨파의 < The Wild Bunch > 에서 영감을 따왔다고 했을 정도로 폭력미학에 있어서 장인이었던 페킨파지만 가위질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감독이 사망하고 4년 뒤인 1988년에 영화에 대한 시각124분짜리 상영본을 보게 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18분의 차이가 만들어 영화의 강렬함이란 누구도 영화가 수준 낮은 서부영화라고 부를 수가 없게 되었다. 아니 이 영화는 폭력으로 관철된 서부 시대를 그 폭력의 아름다움을 통해 표현한 지상만가였다. 위대한 노래하는 시인 밥 딜런의 노래와 함께 말이다.

재상영 이후 이 영화는 모든 비평가들이 뽑는 최고의 영화 중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내가 본 영화는 2005년에 워너에서 내놓은 스페셜 에디션판으로 preview 버전보다는 조금 짧은 버전이다.


영화는 인트로부터 페킨파 감독의 모든 장점을 보여주는 강렬함을 가지고 있다.

< Get Away > 인트로는 이 영화의 연습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브라운 칼러의 화면 위에 나이 든 Pat 이 나오고 그는 Billy를 추종하던 사람들에 의해 총을 맞아 죽기 시작한다. 당연히 수십 발의 총탄과 강렬한 슬로우 모션으로 말이다.

거기서 페킨파 감독은 과거의 모습을 컬러 화면으로 교차편집하기 시작한다. 닭머리를 총알로 박살 내는 Billy 일당과 그를 찾아오는 젊은 날의 Pat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이게 묘하다. 절묘한 시간의 연속성과 뒤틈이라고 할까.

이 장면에서 총구가 겨누고 있는 것은 분명 닭의 머리들이다. 하지만 총이 발사된 후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늙은 Pat 이 총에 맞아 슬로우 모션으로 죽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과거의 사람이 현재의 자신을 죽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컬러가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 혼동이 왔을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타임슬립 영화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장면 속에서 페킨파는 폭력이 이어지는 무한루프를 손에 넣은 듯 보였다.


게다가 엔딩장면에서 Pat 은 친구인 Billy를 죽이고 난 후 자신의 모습을 비춘 거울에 대고 정확하게 심장에 한방을 쏜다. 이 장면도 묘하게 첫 장면을 연상시키면서 아무리 슬로우모션으로 아름답게 비친 폭력일지라도 그것을 행하는 자신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고 있어 캐랙터에 대한 애잔함마저 든다.

더구나 자신이 죽였음에도 Billy의 시체가 손상당하지 않도록 새벽을 기다리다 떠나는 Pat의 모습은 바로 정통 서부 영화인 < 셰인 >에서 따왔음을 알 수 있다.

< 셰인 > 에서는 한 아이가 영웅을 떠나보내며 그의 이름을 그리움으로 부른다면, 이 영화에서 Pat 은 영웅을 죽인 보안관으로 한 아이에게 돌팔매질을 당하며 천천히 떠난다.

수정주의 서부 영화의 완벽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내가 감독이었다면 이런 장면을 잘 생각해 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름 영화를 잘 만든다는 것은 앞과 뒤의 화면이 일치했을 때이다. < 글라디에이터 >의 보리밭을 흔드는 손이 그렇고, < 옛날 옛적 미국에서 > 의 아편 흡입 장면이 그렇다.

그리고 앞에서 늙은 Pat 이 죽은 만큼 이에 대한 설명이라도 하기 위해 첫 장면을 다시 넣을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첫 장면을 설명하기보다 돌파매질을 당하며 떠나는 전설의 보안관인 Pat의 모습이 감정적으로, 영화적으로 모든 것이 완벽했다.

첫 장면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악당을 처치했음에도 이미 아이에게 조차 미움을 받는 재로 전락했으니까. 수정주의 서부극이 왜 수정주의라 불리는지 그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다.


난 페킨파 감독의 영화 중 이 영화가 가장 좋다. 만약 이 영화만 본다면 그는 거장이라고 불릴 수 있다.

연출, 인트로, 결말, 미장센 특히 이 모든 폭력미에 절대적인 감성을 밀어 넣는 엄청난 밥 딜런의 음악은 ( Knocking on Haeven's Door) 페킨파 영화 중에서 가장 세련되고 가장 아름다운 영화임을 증명하고 있다.


preview 버전이든 special edition 이든 이 영화는 꼭 보길 바란다. 가장 좋은 환경은 좋은 스피커를 가진 환경일 것이다. 그 음악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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