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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Mar 15. 2024

샘 페킨파 (1)

4. The Wild Bunch

헐리웃의 황금기, 아니 정확히는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황금기는 60년대를 지나면서 쇠퇴하고 있었다.

반독점금지법에 의한 제작사의 극장소유 불허 (플랫폼의 축소), TV 보급의 확대(경쟁 플랫폼의 등장)는 메이저 스튜디오들을 궁지에 몰았다.

게다가 베트남 전쟁은 미국 전체에 끊임없는 불안과 가치관의 대립을 일으켰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일어나는 히피 문화는 반전사상과 결합해 기존 질서에 대한 부정, 인간성 회복과 자유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런 전반적인 미국 문화의 변화는 당연히 망해가고 있던 영화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런 영화계에 뉴헐리웃 세대 혹은 뉴 아메리카 시네마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튜디오의 황금기에는 물론 위대한 영화의 아버지 '존 포드'같은 감독이 나오기도 했지만, 공장형 찍어내기 영화들이 일반화되면서 감독의 권한과 창의성은 무시되고 있었다.

그런 스튜디오 시스템이 약화되면서 60년대 말부터 헐리웃에는 감독의 연출권이 강화되게 된다.

이런 강화된 연출권을 가진 새로운 감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기존 미국 영화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캐릭터들과 새로운 장면들로 영화계를 흥분시킨다.

이 당시 뉴 헐리웃 감독들은 캐릭터들의 범죄를 옹호하고 미화시킨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거친 감성의 화면 위에 선과 악의 경계가 없는 염세주의적 캐릭터들이 극단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영화들을 자주 만들었다.

뉴 헐리웃을 시작을 알린 작품인 1967년 '아서 펜' 감독의 < Bonnie and Clyde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 부터 시작된 폭력미학은 몇몇 뉴 헐리웃 감독들의 마치 시그니처와도 같은 형태로 나타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런 폭력의 시그니처를 바탕으로 당대 최고 화가였던 '피카소'에 빗대어 폭력미학의 피카소라 불리게 되는 감독이 바로 '샘 페킨파' 감독이다.

그리고, 이 감독이 남긴 최고의 걸작 중 하나가 < The Wild Bunch > 이다.


서부 영화 장르들은 스튜디오 체계하에서 공장 영화로 바뀌지만 일련의 뉴헐리웃 감독들은 이 장르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스파게티 웨스턴에서 따온 듯한 폭력의 묘사와 선악이 불분명한 인물들의 등장은 전통적인 서부극과는 너무나도 달랐고, 이런 영화들을 수정주의 서부극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 장르는 스파게티 웨스턴과는 엄연히 달랐다.

최소한 이 영화들은 미국 내에서 촬영을 했고, 시대상도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실제 서부시대를 재현하려 애썼다. 그리고 폭력으로 점철된 서부시대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등 뒤에 대고 총을 쏘거나 정당한 결투를 제안해 놓고는 열을 채 세기도 전에 먼저 뒤돌아 서서 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총기에 있어서도 콜트 자동 권총, 산탄총 등 기존 서부극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최신식 무기들이 많이 등장해 주변을 초토화시키기도 한다.

서부시대의 낭만이 아니라 서부시대 폭력의 리얼리티를 살려 주로 허무한 세계관이나 알 수 없는 결말을 보여주려던 것이 이 수정주의 서부극이었다.


게다가 선악이 불분명하다고 하지만 이런 수정주의 서부극에 나왔던 인물들은 실존 인물들이 많았다.

<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내일을 향해 쏴라) > 처럼 실존했던 무법자들과 < Bonnie and Clyde >의 주인공들처럼 실존했던 갱단들을 스크린 위에 올린 것이다.  

 < The Wild Bunch > 도 마찬가지이다. 이 영화도 부치와 선댄스 키드를 소재로 영화화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실제로 존재했던 갱단들이었고, 이들이 역사적으로 저지른 살인만 해도 엄청났었다.

하지만 뉴헐리웃 감독들은 이런 실제 인물들을 화면에 리얼리티로 감싼 허구로 구축해 당시에 유행했던 여러 사상들을 반영한다. 절대 보안관은 영웅이 될 수 없고, 악당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는 이런 방식은 당시 미국 사회를 바로 반영한 것이었다.


< The Wild Bunch >가 가지는 폭력적인 장면은 당시에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 Bonnie and Clyde > 에서의 마지막 45초간의 총격과 죽음 장면이 너무 잔인하게 여겨져 악당 주인공에 대한 연민까지 품게 만든다면, < The Wild Bunch > 에 나오는 총격과 죽음의 장면은 슬로우 모션과 교차 편집을 통해 폭력을 통한 죽음이 죽음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답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망 중 하나인 'Guilty Pleasure' 가 이 폭력적인 슬로우 모션 앞에서 여과 없이 솟아 나옴을 느낄 정도니 말이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인간이 총에 맞아 죽을 때마다 슬로우 모션으로 쓰러진다. 게다가 그다음 컷에는 어린아이들이 이를 바라보는 교차컷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그 죽는 순간의 아름다움은 내 머릿속에 깊게 박혀 사라지지 않고 이 폭력에 대한 갈망이 내 속에서 끊임없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디지털카메라가 아닌 35mm 필름 카메라를 메인 카메라로 사용했다.  

그리고 슬로우 모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후반 작업이 아닌 촬영 당시에 고속 (초당 120 프레임 이상)으로 카메라를 돌린 후 극장에서 이를 다시 정상 속도 (초당 24프레임)로 돌려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이 말은 감독이 이런 폭력적인 죽음을 느린 속도로 관찰하기 위해 고의로 카메라를 고속으로 돌렸다는 뜻이며, 극장에서의 상영 또한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폭력미학의 피카소라는 말은 절대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감독의 창작열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다른 사람의 죽는 장면을 느린 속도로 관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페킨파 감독은 그 마초적인 성격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장에서의 불도저식 밀어붙임과 나오는 고성들은 당연한 모습으로 보였다. 게다가 영화들의 주인공들도 대부분 마초적인 남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 The Wild Bunch > 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마초적인 남자들 뿐이다.

여자들은 그런 순수한 마초를 배신해 총을 맞아 죽는 걸로 나온다.

그런 마초 감독의 일상생활도 약물과 술로 찌든 인생이었고, 그는 매사에 강렬함을 추구했다. 그 덕분에 1984년에 약물과다와 알코올 중독에 의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난 사실 그런 그를 이해할 수가 없다.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고 특히 서부영화 같은 장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는 너무나 많은데 감독은 그런 현장에서 연출을 하면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난 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인 그가 폭력의 현장에서 정확히 무엇을 보았는지, 아니면 무엇을 느꼈는지는 알고 싶었다.

인류 마지막 세계대전에서 그가 봐왔던 장면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 The Wild Bunch > 가 그런 물음에 조금은 답을 줄 수 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그는 많은 폭력적인 죽음을 전쟁에서 봐왔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가 느낀 폭력적인 죽음은 아름답기보다는 잔인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의 인트로에서 은행을 털던 주인공 더치 일행과 그 일행을 뒤쫓던 손튼의 현상금 사냥꾼들의 총격씬이 나온다. 그리고 거기서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날 수밖에 없는 총을 맞아 뒤로 넘어지며 죽는 스터트맨의 슬로우 모션이 나온다.

관객은 슬로우 모션을 통해 죽는 순간이 멋있거나 아름답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다음 컷인 죽음을 관조하는 듯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 죽음의 잔인함을 목도하게 된다.

난 이 장면이 바로 감독의 느낌과 의중이라 생각한다.

전쟁 중에 죽어 나가는 동료들을 힘없이 관조할 수밖에 없었던 페킨파의 눈에는 그 모든 죽음의 순간이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지며 이를 바라보는 자신을 그 아이들의 모습에 투영한 것처럼 보였다.


영화의 엔딩은 어떠한가?

주인공들이 자신의 갱단 일원 중 하나인 앤젤을 구하러 가는 장면에서 이들은 이미 충분한 돈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다 버리고 자신들의 마초적 성격에 따라 움직인다. 이제 할 것 다 해봤으니 죽기밖에 더 하겠어. 하는 분위기로 말이다.

사실 여기에는 캐릭터들이 앤젤을 구하러 가야 하는 어떤 당위성도 없다. 어차피 갱단들이었고, 잘못은 앤젤이 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그가 고문을 받더라도 구해줄 의리 따위는 없었다가 맞다.

극 중에도 이들의 관계가 깊게 느껴질 정도로 나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감독은 폭력이란 어떤 당위성을 가지고 발생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즉흥적인 본능에 기반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관객들은 4 명의 무법자들이 수 백 명의 군인들을 상대로 처절하게 싸워나가는 모습을 이 영화에서 가장 긴 씬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싸우는 4 명의 무법자들은 이제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는 전사로 보이며 그 강한 죽음에 매료되게 된다.

이들을 쫓던 쏜튼이 도착해 본 장면은 모든 세상이 멸망한 듯한 염세주의적 세계였으며, 이를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난다.  


< The Wild Bunch > 가 현대 액션 영화의 감독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음은 당연하고 홍콩 느와르로 홍콩 영화 (절대 중국 영화가 아니다)의 르네상스를 일으켰던 오우삼 (John Woo) 감독은 이 영화를 대놓고 오마주 했다고 밝힐 정도였다.

그리고 많은 감독들이 이 영화에서 나온 액션의 슬로우 모션이라든가, 마지막 결말 장면에서 이루어지는 1대 다수의 긴 시간의 총격과 액션씬을 모티브 삼아 영화들을 만들어 내게 된다.

미국이 낳은 거장 감독인 마틴 스코세지도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 비열한 거리 > 를 발표했을 때 직접 < The Wild Bunch > 를 언급하며 거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할 정도로 이 영화가 후대의 감독들에게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나는 마틴 스코세지 감독을 거장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샘 페킨파를 거장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 그는 폭력 미학의 피카소라 불릴 만한 엄청난 시도와 창조성을 스크린 위에 다각적으로 펼쳤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끝내 세르지오 레오네의 작품들처럼 시대를 관통하지는 못했다.

그는 시대를 관통하기보다는 시대에 저항하기 위해 산 듯한 감독이었다. 그 강렬한 마초적 성격과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그의 성정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고, 인간의 내재된 폭력에 대한 본성에 누구보다 충실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폭력의 화면들은 지금 봐도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 < The Wild Bunch > 는 반드시 봐야 되는 영화 중 하나이다.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다면 그 폭력조차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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