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지오 레오네 (3)
3. A Fistful of Dollars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불리는 장르는 레오네에게 있어서 싫은 단어 중 하나였을 것이다.
미국에서 만든 서부 영화들도 많은 감독들이 유럽 출신들인데, 이탈리아 사람인 자신이 만들었다고 해서 이렇게 스파게티를 붙여 따로 취급하는 것을 차별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물론 < 셰인 >, < 수색자 >, < 하이눈 > 같은 전통 서부극을 본 사람도 있었지만 실제로 서부 영화로 알려진 영화들은 이 < 황야의 무법자 (A Fistful of Dollars) > 가 크게 흥행을 하면서부터다.
즉, 한국에서는 보통 서부 영화라고 하면 이 스파게티 웨스턴을 말하는 것이었다.
레오네 감독은 싫어했지만 웨스턴 장르에 스파게티가 붙은 이유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유럽에서도 나름대로 서부 영화 몇 편을 만들려고 시도를 하긴 했지만, 그렇게 크게 알려진 작품은 없었다.
그러다가 이탈리아 감독들의 저예산으로 만든 B급 서부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 작품들이 흥행하면서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말들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 단어도 이탈리아에서 만든 것은 아니다.
이 저예산 영화들의 많은 로케이션을 차지하는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가장 큰 특징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철저한 저예산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서부 영화로서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당시로서는 상당히 폭력적인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건은 없고 살인만 있다는 비아냥을 당하기도 했다.
둘째는 서부극에서 나오는 그 유명한 모뉴멘트 벨리의 촬영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의 배경은 주로 멕시코 국경 근처였고, 실제 로케이션은 스페인 황무지 지대였다.
마지막으로 캐릭터들의 독기이다. 이 장르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주로 행동을 한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얼굴 클로즈업이 자주 쓰이기도 했고, 여성 캐릭터들조차도 남성에게 보호를 받는 기존의 서부극 캐릭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캐릭터들로 많이 나온다.
그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를 대표하는 영화가 바로 이 < A Fistful of Dollars > 이다.
이 영화가 당시 제작비 20만 불로 그 백배인 2천만 불을 벌어들였으니, 이 영화의 흥행은 지금으로 따지면 20억짜리 저예산 영화가 2000억 원을 벌어들인 셈인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일화는 아마 당대 최고 감독 중 하나였던 '쿠로자와 아키라'와의 일화일 것이다.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쿠로자와 감독의 < 요짐보 > 를 거의 그냥 베꼈다. 일본의 사무라이 스토리를 저작권 협의도 없이 그냥 가져다 쓴 것이다.
물론 영화가 히트하고 나서 < 요짐보 > 제작사 측의 항의로 일본 판권을 주고 흥행에서 막대한 수익을 보장해 주는 걸로 타협했지만, 당시의 레오네 감독의 마인드도 B급 감성에 젖어서일까?
레오네 감독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죄를 안 하고 오히려 돈을 많이 벌게 해 주었다고 당당해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세계적으로는 히트했지만 미국에서는 그렇게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가 저예산인 관계로 충분한 고증 없이 서부 시대를 재현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10년 밖에 안 지난 시점에서 많은 유럽이 황폐해졌다.
그런 로케이션을 이용하기 위해서 내세운 설정이 항상 미국의 남북 전쟁이 끝난 직후였다.
서툰 설정이 불러들이는 로케이션의 이질감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의 엉성한 영어 발음이 거슬렸기에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서부극 장르의 만족을 채우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미국을 제외한 세계적인 성공은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장르를 서부극 장르에 포함시키며, (당시 헐리웃 서부극 배우나 감독들은 이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장르를 서부극으로 보지 않을 정도였다) 헐리웃의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관심을 불어 일으키게 된다.
향후 이런 관심은 세르지오 레오네라는 영화사의 거장을 탄생시키는 발판이 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의 음악과 배우다.
이 영화의 유명한 음악은 당연히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 개봉을 위해 모든 이름을 이태리어에서 영어로 바꾸면서 음악 작곡가는 댄 새비오 로 나온다. 그래서 이때만 해도 엔니오 모리꼬네는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키지 못한다. 영화사에 남는 엄청난 OST 를 작곡했음에도 말이다.
레오네가 사랑했던 배우들은 사실 <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 에 다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 A Fistful of Dollars > 에서 원했던 배우들이 바로 헨리 폰다, 찰슨 브론슨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과 이태리의 합작 영화였던 이 영화의 제작사가 그들을 캐스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헨리 폰다는 접촉도 못 했고, 찰슨 브론슨은 시나리오를 안 좋게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때 이미 사무라이 영화에 꽂혀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여기서 레오네가 들고 온 < A Fistful of Dollars > 의 시나리오는 < 요짐보 >의 서부영화 각색 편에 불과할 정도의 내용이니 그가 바로 하겠다고 한건 당연한 것이었다.
배우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 외에 'Dollars' 3부작을 레오네 감독과 함께 하며 TV 배우에서 세계적인 영화배우로 거듭난다. 하지만 이후의 영화에서 레오네와 작업을 하지 않고 < 더티 해리 > 시리즈로 갈아타며 미국의 최고 액션 배우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지금은 영화 연출에서 더 유명한 사람이 되었지만.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그전 서부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총격씬이나 폭력씬 전의 얼굴 클로즈업 컷들이다.
이때만 해도 레오네 감독이 캐릭터의 감정선을 보고 클로즈업 컷들을 넣었다고는 개인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영화나 사운드의 리듬을 따라 마치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르는 주연을 조명할 때처럼 느낌적으로 쓰지 않았나 싶다.
< 반지의 제왕 > 의 피터 잭슨이 이야기했듯 '왜 액션 장면에 클로즈업을 넣었느냐?'는 대화에서 '그냥 느낌적으로 넣었다'라고 대답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옛날 옛적에' 3부작에서 보여주는 클로즈업들은 명확히 캐릭터들의 내면과 분위기의 고조를 위해 사용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클로즈업들이 가지는 힘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지금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시가를 문 젊은 얼굴이 내 뇌리에 박혀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장르를 전 세계적으로 알린 이 영화는 미래의 거장이 보여주는 진정한 의미의 '호스 오페라 (Horse Opera)' 였으며, 그의 시작을 알리는 이 영화를 <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 를 보기 전이나 본 후에 본다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건 없이 살인만 보이는 것 같지만 그 표현에 있어서의 강렬함은 '쿠로자와 아키라'의 영화에 맞먹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