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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Mar 08. 2024

세르지오 레오네 (2)

2.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

'옛날 옛적에 (Once Upon a Time...)' 3부작 중 처음 등장한 이 작품으로 인해 세르지오 레오네는 정말 거장의 반열에 들어서게 된다.

한국에서는 <옛날 옛적에 서부에서>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는데, 서울에서만 28만 명이라는 엄청난 숫자를 끌어들였다.

이 영화는 항상 레오네 감독의 <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 와 함께 어느 작품이 더 좋냐로 회자되곤 하는데, 난 물론 당연히 이 <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 에 한 표를 주고 있다.

무엇보다 난 이 영화가 영화사에서 가장 완벽한 인트로와 엔딩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 중의 한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인트로와 엔딩만으로도 오늘의 글이 다 찰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영화의 인트로를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영화의 인트로는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를 한 번에 보여준다.

황량한 들판의 기차역과 느린 템포로 움직이는 모든 사물들. 그리고 거기서 목표물을 기다리며 느긋하게 움직이는 세 명의 총잡이들. 앉아 있는 총잡이의 얼굴에 달라붙는 파리들을 느리게 천천히 보여주는 카메라.

중간중간에 일어나는 것은 정말 간략하게 생략된 갑작스러운 액션들 뿐이다. 역무원을 쫓아내거나 파리를 잡거나 하는.

여기에 쓰이는 사운드 또한 일품이다. 삐걱이며 돌아가는 풍차나 의자의 흔들거리는 소리, 파리가 날아가는 소리 등. 많은 사운드들이 하나의 목표점을 향해 차분히 진행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타나는 주인공인 하모니카맨과 그 앞에 서는 세 명의 총잡이. 한 마디 대사도 없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이미 한쪽이 죽어야만 끝난다는 것을 관객들은 알 수 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총격씬과 거기서 살아남은 하모니카맨이 주인공이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알린다.

이 인트로씬의 길이만 해도 15분이나 한다. 극장판 러닝타임이 145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10분의 1을 인트로에 쏟아부은 것이다. 거의 아무 대사도 없이 말이다.  

하지만 이 느릿하면서도 긴장감이 팽배해지는 인트로의 강렬함은 영화 내내 관객들을 관통한다.


엔딩이 주는 감정은 인트로와는 또 다르다.

인트로가 전체 영화를 꿰뚫고 지나가는 진정한 서막이라면 이 영화의 엔딩은 단순한 스토리의 종언만을 부르짖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엔딩에 악당인 프랭크 (헨리 폰다)를 처치하고 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샤이엔과 하모니카맨 (찰슨 브론슨) 은 떠난다. 질을 사랑하고 있던 샤이엔이 자신의 죽음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티를 내지 않았지만 이미 총에 맞아 목숨이 다할 처지였다. 결국 철로 옆에서 샤이엔은 죽음을 맞이하고, 하모니카맨은 그를 말에 태우고 길을 떠난다.

마을을 떠나는 서부의 총잡이와는 달리 질의 집 앞에는 철도 공사가 완료되고 기차가 기념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있다. 그리고 샤이엔의 조언대로 질은 노동자들에게 물을 주고 있는데, 그들은 앞으로 질의 집에서 음식과 물을 구할 것이 뻔하다.

이 엔딩은 < Magnificient 7 > 의 마지막 촌장의 말이 생각나게 만드는 엔딩이다.

'결국 승자는 농부들이다.'라는 촌장의 말처럼 이 영화의 승자는 하모니카맨도 질도 아닌 노동자들일지도 모른다. 철도를 완성해 복수와 탐욕이 난무하는 서부 시대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시대를 질의 시원한 물과 함께 기뻐하는 노동자들 말이다.


영화의 엔딩은 인트로보다 짧지만 무엇보다 강렬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혹자는 이 엔딩을 서부영화 전성시대의 종언이라고 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틀리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레오네 감독은 서부영화를 더 이상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가 만들고 싶어 했던 영화는 오로지 <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였다. 이 상황에서 제작사로부터 오퍼가 들어온다. 당시의 대배우인 헨리 폰다를 캐스팅할 테니 서부영화 하나를 연출해 달라는 오퍼였다.

당시에 헨리 폰다는 미국을 대변하는 대배우였다. 그의 선하고 평범한 이미지는 가장 대중이 사랑하는 이미지였고, 영화에서도 그는 그런 이미지를 십분 활용해 악역을 선보인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대배우와의 협업에 그는 감독직을 수락하고 바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헨리 폰다는 악역이라는 말에 이를 거절한다.

그러자 레오네 감독은 그를 직접 찾아가 설득하는 열의를 보였고, 헨리 폰다는 악역을 받아들인다.

레오네 감독은 자신의 마지막 서부 영화를 대배우와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듯 이 영화의 엔딩은 서부영화 전성시대의 종언이라기보다는 감독이 창조하고 그려왔던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고별인사라고 보는 게 내 개인적 생각이다.

감독은 자신이 창조해 왔던 장르와 이별을 고한 것이다. 자신의 서부영화 시대는 철도의 완공과 더불어 끝났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이젠 그곳에는 도시가 세워지고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관객들에게 남기고 싶었으리라 본다.


이 영화는 미국 흥행에는 실패했지만(아마 당시 미국에서는 철저하게 악역으로 나오는 헨리 폰다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거대한 흥행몰이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후에 영화사적으로도 족적을 남기며 조지 루카스, 쿠엔티 타란티노, 마틴 스코세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 많은 유명 감독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물론 이 이후에 감독은 한 편의 서부영화를 더 만들기도 하는데 '옛날 옛적에' 3부작 중 두 번째인 < Once Upon a Time... the Revolution >이다. 

하지만 멕시코 혁명기를 다룬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서부영화를 가장한 전쟁영화로 보았다. 서부시대와 누아르시대를 가기 위한 일종의 발판처럼 여겨지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이 영화부터 레오네 감독이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그의 연출 시그널이 드디어 'Phase 2'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부분은 절대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일 하모니카를 물고 다니기에 하모니카맨이라고 부를 뿐이다.

무엇보다 프랭크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선악이 분명하지 않다. 물론 그의 전작들에서도 캐릭터들이 그랬지만 이번 영화부터 레오네 감독은 본격적으로 캐릭터들에 대한 성격을 그들의 개인적인 욕망으로 환원하기 시작한다.

복수, 생존, 탐욕 등 다양한 인간의 내면을 이 영화에서 보여주며 이런 모습들을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적은 대화와 분위기를 팽창시키는 느린 연출, 그리고 갑작스러운 액션을 활용하는 그의 독특한 연출력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루어지는 거대한 서부 영화의 서사시는 후대에 명작으로 남게 된 것이다.


물론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레오네 감독과 항상 함께 해 온 엔니오 모리꼬네니까.

이후에 뉴헐리웃 세대가 도래했을 때 많은 수정주의 서부극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수정주의 서부극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스파게티 웨스턴의 마지막 대서사시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진정한 호스 오페라 (horse opera)가 여기 있으니 꼭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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