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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Mar 08. 2024

세르지오 레오네 (1)

1.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1928년에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989년에 작고했다.

이 감독이 크게 활약한 년도는 1960년대인데, 그의 최고의 작품을 말하라고 한다면 난 당연히 1984년에 만들어진 < Once upon a Time in America >를 든다.

레오네 감독은 이 영화를 자신의 꿈의 프로젝트라고 말할 정도로 이 영화의 제작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무려 17년 동안이나 이 영화에 목을 매 단 것이다.

이 영화는 레오네 감독의 세 서사시인 '옛날 옛적에 (Once Upon a Time) '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할 영화였으니 어쩌면 감독의 이런 병적인 집착도 이해가 될 정도이다.  - 옛날 옛적에 3부작 < Once Upon a Time in Western >, < Once Upon a Time...the Revolution >, < Once Upon a Time in America > -

하지만 엄청난 제작비에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때 나타난 것이 한 유태인 거부 제작자였고, 이 제작자와 워너 브라더스의 배급을 등에 업고 드디어 프로덕션 작업에 들어간다.

여기에 너무 열정을 쏟아부었는지 레오네 감독은 촬영 전에 이미 건강이 좋지 않았다.

물론 그런 악화된 건강에도 레오네 감독의 열정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는 목숨을 걸다시피 하며 이 영화의 완성을 위해 누구 말마따나 몸을 불살랐다.  

하지만 이런 감독의 열정과 헌신에도 이 영화는 그 시대의 대표적인 폭망 영화가 된다. 알려진 바로는 제작비의 20%도 채 건지지 못했다.


이유야 간단했다. 워너 브라더스의 개봉을 위한 편집권 행사 때문이었다.

워너브라더스는 이 영화를 개봉하기 위해 2시간 정도로 축소하고자 했다. 그러나 레오네 감독이 완성한 미녹음 상태의 편집본은 6시간이 훌쩍 넘었다.

레오네 감독은 거기서 최대한의 편집을 통해 1부와 2부로 나누어 개봉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워너브라더스는 이미 많은 돈이 투자된 상태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제작비를 회수해야만 했기에 극장에서 원하는 2시간짜리 편집본을 요구했다.

결국 레오네 감독이 포기한 상태에서 워너브라더스의 편집으로 미국에서는 139분짜리의 러닝타임본이 개봉된다. 감독이 원하는 시간의 3분의 1로 줄어든 영화가 말할 수 있는 서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영화는 그야말로 폭망 하게 된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아예 100분 러닝타임으로 개봉했다. 폭력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미국 개봉판보다 무려 40분이나 정부로부터 가위질을 당한다.

그러니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 이해를 할 수 있었던 사람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서사는 흐릿했고, 캐릭터가 이야기하는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한 40년 전만 해도 극장 상영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영사기사 (촬영기가 아닌 극장에서 상영기를 돌리는 사람)가 꼭 필요했던 곳이 극장 스크린이었다. 당시에 쓰던 영화의 필름은 35mm였고, 보통 2시간짜리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는 릴 방식에서는 두 대의 영사기가 필요했다.

방대한 필름의 무게와 두께로 인해 한 영사기가 틀 수 있는 시간은 1시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에 타이밍 맞춰서 두 대를 연결해 상영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6시간 상영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감독도 그런 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영화를 만들던 때이다. 그래서 1부, 2부로 나뉘어 상영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물론 미국은 다른 나라와는 달랐다. 릴 방식의 영사기가 아닌 플래터 방식의 영사기가 1970년 중반부터 꾸준히 보급되고 있었고, 그로 인해 한 영사기가 4시간까지 상영을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미국 시스템에서도 2시간 이상은 버거웠다. 왜냐하면 같은 돈을 받고 하루에 6회를 상영할 수 있는 것과 3회를 상영하는 것은 그 수익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이야 'part 1', 'part2' 식으로 나뉘는 영화가 많은 팬덤들로 인해 익숙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서부극 장르의 위대한 명장이라도 가진 팬덤은 많지도 않을뿐더러 배급, 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가 그런 개봉 방식에 동의할 리가 없었다.

마케팅 비용이 두 배로 드는 것은 물론이고, 플랫폼(스크린) 수는 한정이 되어 있었기에 다른 작품들의 개봉일자마저도 모두 고쳐야 되는 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최초로 상영된 칸영화제에서는 달랐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칸영화제에서 션세이서널을 일으켰는데 당시 이 영화의 상영시간은 229분이었다.

이 영화는 칸영화제에서 상영되자마자 1980년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지목될 정도로 평론가와 비평가들의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스파게티 웨스턴(혹은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장르를 통해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꿈을 비틀고, 헤집었던 장르의 창시자이자 거장 감독이 미국 갱스터 시대의 아메리칸드림을 다시 한번 비틀고 헤집었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관객들은 거의 4시간 동안 칸영화제 객석에 앉아 있어야 했지만 그들은 기꺼이 그 불편함을 감내해 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 이 영화만큼 아름다운 미장센과 음악, 서사구조를 가진 영화는 없었기 때문이다.


난 이 영화를 두 번 보았다.

한 번은 100분짜리 한국 상영본이었고, 다른 한 번은 칸영화제 복원판인 블루레이 246분짜리였다.

한국 상영본을 봤을 때 나는 중3이었고, 이 영화는 동시상영관에서 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이 100분이지, 동시상영관의 상영시간이 그렇듯 한 85분도 채 안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말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른 한 번은 블루레이판이었다. 그때 나는 사십을 넘은 나이였다.

블루레이의 화질과 HD의 느낌은 내가 처음 본 스크래치가 심한 필름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다소 하드한 느낌의 화면과 라인이 뭔가 갱스터 영화와는 잘 어울리면서도 내 80년대의 감성에는 약간 모자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조명과 인물의 화면 내 배치, 배경의 아름다움은 최고 중의 하나였다.  

물론 내가 중학생 때 이해했던  <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의 서사도 너무 달랐다.  

내가 중학교 때 본 영화는 장면은 훌륭했지만 내용은 알 수 없는 지루한 영화였는데, 이 블루레이 판의 긴 시간은 그 서사구조와 캐릭터들이 완벽히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종종 이 영화의 서사구조는 < God Father 2 >의 서사구조와 비교되곤 한다.

물론 과거와 현재의 교차 편집을 통한 서사구조에서는 같은 맥락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 God Father 2 >의 서사구조가 다른 인물, 즉 콜레오네 가문의 과거인 비토와 현재인 마이클의 이야기를 교차편집으로 다루고 있다면,  <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의 서사구조는 주인공인 누들스의 회상씬처럼 과거의 이야기가 교차편집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영화의 결말의 느낌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 God Father 2 >가 비정한 마피아 조직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면, < Once Upon a Time in America >는 양아치에 불과했던 갱스터들이 아메리카 드림을 좇는 것을 보여주며 광기와 죽음으로 얼룩지는 보다 개인적인 감정의 끝을 보여준다.

그래서 로버트 드 니로의 그 마지막 아편 흡입 장면이 더욱 애처롭게 다가온다.

게다가 이어지는 영화음악 거장인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가슴을 후벼 팔 정도다. 특히 한스 짐머가 가장 좋아한 '데보라의 테마' 음악은 여전히 감미로움을 넘어 슬픔으로 가득 메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는 80년대로 71년의 닉슨 쇼크(금과 달러의 교환을 금지)를 거친 레이건 시대로 저유가, 저달러, 저금리라는 3저 호황의 절정을 누리던 때였다. 레이건 행정부는 재정완화를 통해 달러를 무제한으로 풀다시피 했고 미국은 유래 없는 경제호황에 들떠 아메리카 드림의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다.

한국은 이때 3 저호황의 최대 수혜 국가 중 하나가 되었고, 일본은 엔고를 통해 버블경제의 극점을 달리며 해외 자산 매입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시기에 내놓은 이 영화는 아메리카 드림의 실상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미국 자본주의에서의 성공은 철저한 배신과 음모에 의해 이루어지고 거기까지 발을 딛지 못한 인간은 도태될 수밖에 없음을 감독의 완벽한 미장센과 서사구조, 그리고 음악을 통해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이 영화로 인해 너무 무리를 했던 탓인지, 이 영화를 끝으로 1989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거장의 마지막 유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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