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를 읽은 것은 중학생 때였습니다.
국어 시간에 읽은 시는 복잡했습니다. 소설보다 짧은 형식이 좋았지만, 그 안에서 작가의 의중을 해석하는 것은 제법 어려웠습니다. 낭독하는 와중에도 '이게 무슨 소리야?'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글자를 읽어버렸습니다. 모르는 한자와 과거의 시대배경이 나올수록 시는 그렇게 점점 멀어졌습니다.
고등학생. 첫 연애를 시작했을 무렵. 멀어진 시와 조금씩 가까워졌습니다.
연애편지가 한몫했습니다. 처음 연애를 시작해서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마음이 사랑으로 커져갔을 때쯤, 제 마음을 무언가에 비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읽으면 불 위에 있는 오징어보다 손발이 오그라들겠지만 청소년의 감성 가득한 순수한 연애편지.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편지를 잘 쓰고 싶어서 기피하던 시집을 찾게 되었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시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긴 글로 온 마음을 펼쳐놓지 않더라도 꾹꾹 눌러 담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를 읽다가, 먹다가, 훔치다가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말이 스무 살이지, 저는 아직 10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넘쳐흐르는 새로운 것들과 경험들이 낯선 었던 저는 움츠러들기도 했지만 대게 그 흐름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새내기가 마셨던 1년 간의 술이 지금까지 마신 술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니 그때는 참 호기로웠네요. 얼큰하게 취한 채 자취방에 들어온 저는 전두엽이 무너진 상태로 메모장을 켰습니다. 터치 패드가 두 개로 보여 아른할 때에도 무엇이 그렇게 쓰고 싶었는지 단어들을 조합해 시를 만들었습니다. 대부분 알 수 없는 글들이었지만, 대게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은 보통 친구와 사랑, 신세한탄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난 후부터 시는 심폐소생술(CPR)이었습니다.
대학원과 일을 병행한다는 미친 선택을 한 후 점점 사람과 세상에 비관적이게 되는 와중 시는 그럼에도 세상에는 순수하고 맑은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문학감성 CPR 이랄까요. 때로는 너무 비관적이어서 시에 전혀 공감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시집을 덮고 멍하니 창을 보면 은근한 환기가 되었습니다.
또, 이제는 삶의 다양한 부분을 맛보아서 그럴까요? 10대에 읽은 시들이 조금 더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장면과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그게 작가의 의중이 아닐지라도 괜찮았습니다.
시간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같은 시더라도 다른 의미로 느껴지는 걸 보면 어쩌면 시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저 친구처럼,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가끔은 화가 나서 보기 싫다가도 괜스레 연락하게 되는 그런 친구처럼 지내지 않을까 싶네요. 적다 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나 보네요. 더 피로해지기 전에 이만 줄이겠습니다. 다음에는 시를 한 번 써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