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와 백자의 개발 목적

실크로드 진짜 교역품은 차였다

by 역맥파인더

7. 실크 로드의 진짜 교역품은 실크가 아니었다


실크 로드로 불리는 무역로에서 실크가 중요한 상품이 되지 못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중국 비단 장수들에게 언제나 엄청난 수익을 보장해 주던 로마제국이 비단을 자체 생산해 중국의 비단 독점을 파괴한 건 554년부터였다. 그 이후 더 이상 큰돈이 안 되는 비단 대신 실크 로드 대상(隊商)들의 이익을 유지시켜준 건 역시 차(茶)였다. 1005년에 체결된 송나라와 요나라와의 조약 그리고 1044년에 체결된 송나라와 서하(西夏)와의 조약을 비교해 볼 때 가장 크게 차이 나는 것은 공물에 차(茶)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茶)의 유무(有無)였다. 요나라가 불가침 대가(代價)로 차(茶)를 요구하지 않은 반면 서하는 매년 2만 근의 차(茶)를 공물로써 제공받는 것을 중요한 화약(和約) 조건으로 내걸었다. 서하가 차(茶) 2만 근을 받는 대신 포기한 것은 어마어마한 물량이었다. 40년이나 먼저 조약을 맺은 요나라가 차(茶)는 요구하지 않고 비단을 매년 20 만필, 은(銀)은 매년 10만 냥을 챙겼었다. 그런데 40년 후에 조약을 체결한 서하는 요나라가 챙겼던 비단보다 무려 7 만필이나 적은 13 만필만 받고 또 은(銀)은 절반이나 적은 5만 냥만 받는 대가(代價)로 중국 상인들의 실크 로드 사용을 허가한 것이었다. 매년 받을 차(茶) 2만 근의 가치가 비단 7 만필과 은(銀) 5만 냥을 합산한 것의 40년 동안의 물가상승분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엄청난 이윤을 보장하는 것이었음을 미루어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 값비싸고 귀한 차(茶)를 강과 바다를 통해 실어 나르려면 어지간한 파랑(波浪)에는 견딜 수 있는 배가 필요했고 어떤 물기로부터도 그 어떤 습기로부터도 차(茶)를 지켜낼 수 있는, 안과 밖 모두에서 완벽한 방수, 방습이 가능한 항아리가 필요했다. 그러면서 웬만한 충격에는 깨지지 않는 내구성을 함께 가진 운반용기(運搬容器)가 절실했다. 그 그릇이 청자(靑瓷)였고 그 배가 선원들이 일정기간 배안에서 생활할 수 있는 선박(船舶)이었다.


명나라 정화 함대의 보선과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 <출처: The Wiki>



8. 청자와 백자가 개발된 이유


청자(靑瓷)를 만들기 위해 먼저 만들어진 것이 청기와였다. 청기와를 제대로 구워 낸다는 건 청자를 완벽히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청자 자(瓷) 자가 기와 와(瓦) 자와 다음 차(次) 자로 이루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청기와 장수에서 언급된 청기와 만드는 기술은 곧 청자를 제작하는 기술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청자 만드는 기술을 자기 자식에게조차 비밀로 할 만큼 고수익을 가져다준 건 청자(靑瓷) 없이는 차(茶)를 해상운송으로 운반(運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비싼 차(茶)를 구입한 개인들이 차(茶)를 저장하고 보관하기 위해서는 청자호(靑瓷壺)가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품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IMG_6328.JPG 청자호(靑瓷壺) <출처: 호림 박물관>


초원로와 실크 로드라는 두 개의 주요 육상 무역로 지배권을 빼앗긴 송나라로서는 해상 무역로를 지키고 확충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나라의 미래였다. 사천에서 생산되는 차(茶)는 물량 확보가 어려울 정도로 실크 로드를 장악한 육상 운송파들에게 과점(寡占)되어 있었다. 일본에서 생산되는 차(茶)를 청자 항아리에 담아 이라크 사라마르(sarramar)까지 선박으로 운반(運搬)하는 해양 무역이 송나라 상인들에 의해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청자항아리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지지대(遲遲臺)도 발명되고 선박들도 원양 항해에 걸맞게 대규모화하고 돛(sail)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범선(帆船)으로 발전해갔다. 원양 항해가 잦아지면서 그러나 예상치 못한 청자의 한계가 곧 드러났다. 강이나 연안에서의 운항(運航)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던 청자의 경도(硬度)가 원양 항해 시에는 너무 약해 자주 깨지는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청자가 깨진다는 건 그 안에 들어있는 차(茶)들이 상품가치를 잃어버린다는 것이었고 그건 파산을 의미했다. 파산을 면하기 위해선 차(茶)를 운반하는 용기로서 모든 것이 완벽한 것 같았던 청자(靑瓷)의 단점인 경도((硬度))를 개선해야만 했다. 거친 풍랑에 배가 흔들리거나 침몰하는 경우에도 쉽게 깨지지 않는 새로운 자기(瓷器 porcelain)가 개발되어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개발된 것이 백자(白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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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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