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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진 Jan 03. 2024

물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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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은 반대되는 극끼리 끌어당기는 자석처럼, 상극 중의 상극인 물과 불이 서로에게 이끌리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제목인 '엘리멘탈'의 의미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특성을 통해 알 수 있듯, 이 영화의 세계관은 고대의 '원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엘리멘트 시티'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원소들이지만, 다른 종의 원소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마치 금기와도 같이 여겨진다. 특히나, 일반적으로는 서로 어우러질 수 없는 ‘물’과 ‘불’의 경우는 더욱 그렇고.


     그러나, 영화가 내세운 표어처럼, 짖궃게도 이 세상은 필연적으로 반대에 끌리도록 만들어졌다. 이 판타지 영화의 매력이 인격을 부여받은 네 종류의 원소들이 꾸려가는 세계에 있다면, 우리 삶의 매력은 반대와 모순을 안고도 실현되는 사랑의 아이러니에 있다. <엘리멘탈>은 그 두 가지 환상을 모두 차용한다는 점에서, 허구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까, 판타지적인 설정을 기본 토대로 삼으면서도, 서사에서 다루는 내용은 결국 현존하는 개인 간의 관계와 감정에 무게를 싣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생긴 대로 사는 두 사람, 타오르는 불 같이 주체할 수 없는 엠버와 흐르는 물 같이 부드러운 웨이드의 만남과 사랑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그러나, 그건 현실의 우리들이 하는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와는 너무도 다른 상대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고, 물과 불과 공기와 흙이 살아가는 영화 속 세상은 그런 의미에서 실재하는 세계를 충실히 모사해 낸다.


     상극 중의 상극에 해당하는 '불' 엠버와 '물' 웨이드가 그려내는, 사랑이라는 '이상한 가역반응'은 어디 하나 닮은 점 없이 존재하는, 너무나도 다른 우리 현실의 사람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것만 같다. 각자의 개성은 타인과의 소통이나 연결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벽'이 아니라, 되려 그들을 나의 세상으로 끌어당기고, 또 내가 그의 세상으로 속절 없이 끌려가게 만드는 강한 '인력'이라고. 내 삶을 고유한 것으로 만들면서도, 나의 개성과 너의 개성이 서로 만나 하나의 안정된 관계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마치 정반응과 역반응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하나의 화학적 평형 상태를 이루는 가역반응처럼. 혹은 정과 반이 맞서다 결국은 서로를 받아들이고 합해지는 변증법처럼.


     우리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지만, 우리의 그 차이가 서로를 적극적으로 배제하려 하는 척력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게 되고 몸이 아프면 약을 찾게 되듯, 우리는 우리에게 결핍된 것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내가 갖지 못한 무언가를 가진 타인을 강하게 원하고, 뜨겁게 사랑하는 것도 물론 가능할 것이다. 불과 물이 만나 생기는 일에 ‘소화消火’나 ‘진화鎭火’, 혹은 가뭄이나 증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봄이 오고, 꽃이 피고, 계절이 가고, 눈이 내릴 것이다. 당신을 받아 안고, 서로의 파인 홈을 찾아 메워줄 것이다. 이 만남의 다른 이름은 사랑, 그리고 화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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