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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들만 없어도 벤츠 타고 다닌다.

by JJ

오래전,

20년 전.


내가 대리였던 시절에 J부장님과 가끔 파전에 동동주를 마시곤 했다. 외벌이 대리월급으로 4인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부장님은 나를 잘 챙겨주고 위로해 주셨다. 챙겨줘 봤자 박봉의 샐러리맨끼리 얼마나 챙겨주었겠는가?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고마웠다. 혼자 벌어 5명의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그 역시 누구를 위로할 처지는 아니었다.


어느 날 퇴근 후 함께 동동주를 마시는데 그가 넋두리를 시작한다.


"야.. 이대리... 어제는 내가 하도 화가 나서 애새끼들 한데 한 번 퍼부었다. 야이~~ 이 쉐이들아. 내가 너희들만 없어도 벤츠 타고 다닌다. 인마. 똑바로 안 해~!"


아마 집에서 자식들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그 후로도 그는 한 참을 두서없는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1시간쯤 흘렀을까?


"이대리 미안해~ 오늘 너무 내 얘기만 한 거 같다. 내일 아들놈 졸업식인데 뭐라도 하나 사줘야 하는데 뭐 사주는 게 좋을까?"


잠시 후 그는 비틀거리며 술 값을 계산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그의 아들, 딸 들은 장성 해서 결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가 다시 태어난다면 혼자 살면서 벤츠를 타고 다니는 삶을 선택했을까? 아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어떤, 무엇보다 가족과 자식을 사랑했고,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이다. 다시 태어나도 그는 그 삶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지금 그때의 J부장님처럼 이 부장으로 살고 있다. 그 당시 J부장님의 마음을 50% 공감했다면 지금은 100% 공감한다. 비슷하게 애들 학원비만 없어도 한 달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도 이 삶을 선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의 말처럼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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