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봄, 종로
군대에 입대하기 얼마전이었을 것이다. 친구와 영화를 한 편 보고 나서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한 권 샀다. 해보고 싶은 것이 없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입대하면 짬밥(군대밥)만 먹어야 하니 사제 음식이나 실컷 먹고 가고 싶다고 했다.
친구는 먹고 싶은 것을 모두 얘기 하라며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종각에서 집이 있는 동대문까지 걸으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먹기 시작했다.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핫도그도 먹었다.
실망스럽게도 먹기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배가 불러서 터질 것 같았다. 우리가 먹었던 음식중 가장 맛있던 것은 길거리 리어카에서 먹었던 떡볶이와 튀김이었다. 그때는 길거리에서 음식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다. "길보드 차트"라는 말의 어원도 그 시절에 나왔다.
떡볶이를 먹고 나서 뭘 할까 고민을 하다가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다. 둘 다 차가 없었으므로 어떻게 갈까 고민을 하다가 택시를 타기로 결정을 했다. 친구와 몇 달 아르바이트를 한 돈이 지갑에 있던 것이 화근이었다.
"아저씨 강릉이요"
그렇게 우리는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에서 강원도 묵호항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여행 첫날은 바퀴벌레가 나오는 허름한 여인숙에서 보냈고 다음날 우리는 울릉도 가는 배를 탔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배를 탈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섬이라고 생각했던 울릉도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바다 건너 외딴섬에 나이트클럽이 두 개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울릉도에서 두 번째 날엔 성인봉에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한 여인을 알게 됐다. 말없이 한 참을 멍하게 앉아있는 그 녀에게 친구가 말을 건넸고 우리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녀는 울릉도에 자살을 하러 왔다고 했다. 젊은 나이, 짧은 인생에 여러 가지 시련을 겪은 것은 안타깝기도 했으나 굳이 죽을 이유까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당시 내가 무엇보다 의아했던 것은 왜 울릉도까지 와서 죽으려고 하지? 하는 생각도 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 여인의 이야기를 들었고 어설프지만 위로도 해주었다. 같은 울릉도 여행이지만 우리처럼 인생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생을 마감하러 오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서울로 돌아와 우리는 종로에서 다시 그 녀를 만났다. 다행히 생각이 바꾸었는지 어두운 표정이 조금은 밝아진 것 같았다. 지금은 같은 하늘 다른 곳에서 잘 살고 있겠지.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울릉도에서 갈매기만 바라보며 지냈던 일주일이 내 생에 가장 행복했던 날들 같다. 지나고 보니 그렇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아내와의 결혼을 한 날도 아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6년 만에 대학교 졸업장을 받은 그날도 아니었다. 어떤 책임과 의무도 주어지지 않고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날의 즐거움이 내게는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돌아보면 살아오면서 쉬운 날들은 한 번도 없었다. 10대도 힘들었고 20대도 힘들었고, 30,40대도 마찬가지였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세월호 침몰, 팬데믹 코로나19,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갑자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불안한 세상에서 살아남아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얼마전 오랜만에 혼자 드라이브를 했다. 가족 나들이도 아니고, 친구 모임도 아니고, 회사 워크숍도 아닌 혼자만의 일탈이 정말 오랜만이다. 남편으로, 아빠로, 아들로, 이대리로, 이부장으로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만큼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한 참을 더 가야 하는데 가끔은 힘에 부친다.
드라이브를 하며 라디오의 볼륨을 높혔다. 오늘은 유난히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 많이 나온다. 열심히 차 안에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소리도 질러보고 음이탈도 하면서.
노래를 부르다 보니 갑자기 울컥해진다. 소리 질러가며 자유롭게 노래를 불러본 기억이 언제던가? 회사에서 회식할 때, 거래처 손님들과 회식할 때 분위기 망치지 않으려고 오디션을 보듯 소심하게 노래를 불렀었다.
점심 메뉴를 정할때는 직원들의 의견에 맞춰주고, 저녁을 먹을 때는 아이들과 집사람의 입맛에 맞춘다.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나 될까? 스트레스 쌓이면 소리 질러 노래를 부를 수 있은 공간조차 없다는 현실이 씁쓸하다.
아직도 길거리에서 파는 붕어빵이나 호떡도 먹고 싶고 분식집에서 떡볶이도 먹고 싶은데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서 망설이다 그냥 오는 내 나이가 싫기도 하다.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그렇게 못하는 게 많을까? 직원으로 남편으로 아빠로 사는 삶이 가끔은 외롭다.
아까운 가을이 가고 있다. 가을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좋아하는 반찬이 조금 전까지 만해도 접시에 가득히 있었는데 어느새 비워진 느낌이다. 가을아, 인생아 천천히 가자.
길거리에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날은 다시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