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들을 안고 잠을 자기에는 너무 커버렸는데 나는 아직도 아들 옆에서 잠을 자는 것이 좋다. 요즘도 아들이 자고 있으면 조용히 아들 곁에 가서 등에 심장을 대고 누워 있곤 한다. 아들의 체온이 느껴져서 너무 좋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술을 한 잔 드시는 날에는 손을 꼭 잡고 내 얼굴을 바라보시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그 촉감을 잊을 수가 없다.
스킨십이 심한 날에는 까칠한 수염으로 내 얼굴을 비비곤 하셨다.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싫었는지 짜증을 냈고 아버지는 그런 모습이 재미있으셨는지 짓궂게도 한 번 더 비비곤 하셨다. 가끔 회사 일로 지치고 힘들 때, 그리고 여러 가지 일들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생각이 복잡할 때, 그날은 아들 옆에 조용히 누워서 잠을 청한다.
그러면 한결 잠이 잘 온다. 지금은 아들이 잠들었을 때 몰래 스킨십을 하고 있지만 이런 즐거움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다. 아이들이 너무 빨리 크고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스킨십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딸의 손목을 잡고 다녔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숙녀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제 너무 커버려서 말을 건네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나이가 되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딸과의 스킨십은 어색해졌고 지금은 스킨십은커녕 딸의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딸의 손목을 잡고 공원을 다니고 나들이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인생에 있어서 고작 2-3년쯤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아들은 기간이 길어서 10년 정도 되는 것 같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아마 아들의 손을 잡는 것도 어색해지겠지.
2022년 10월 16일 설악산. 아이들과 처음 설악산 단풍여행을 다녀왔다. 생각보다 즐거웠다.
그래서 지난번 요양원에 면회를 갔을 때 어머니 손을 그렇게 오랫동안 잡고 있었나 보다. 손주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글썽이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얼마나 그립고 외로우셨을까. 요양원을 다녀온 날에는 한 참 동안 마음이 좋지 않다.
아내는 갱년기 탓을 하며 스킨십을 불편해한다. 아내와의 스킨십과 아이들과의 스킨십은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중년의 부부쯤 되면 불편해하는 스킨십이 일견 자연스러운 풍경일 수도 있다.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겠지만 만년 신혼 일수는 없으니.
어찌 젊었을 때와 똑같이 열정적이고 적극적일 수 있겠는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소수의 잉꼬부부가 아닌 이상 대면 대면한 일상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 연애는 어떻게 했나 모르겠다. 스킨십에 대한 기억이 아련하다. 연인이나 부부간에 사랑이 식고 감정이 무뎌지면 스킨십에 소홀하거나 사라질 수 있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스킨십은 항상 비슷한 느낌이다. 그리고 변하거나 식지 않는 것 같다.
스킨십은 몸의 언어.
말로는 다 없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한 번의 손짓이나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의 도구이다. 스킨십이 불편한 사람은 자연스럽도록, 익숙해지도록 노력을 해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특히 부부끼리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스킨십은 습관이기도 하다. 한때 열정적으로 표현했다가 사라지는 이벤트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한 아이가 성장을 해서도 건강한 연인끼리의 스킨십이 이루어지지 않나 싶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스킨십의 의미를 알게 됐다. 부모는 아이들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