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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S를 만났다. 참 이해 할 수 없는 녀석이다. 지난번엔 노래방 도우미와 사랑에 빠지더니 이번에는 유흥주점 직원과 열애 중이다. 직업에 편견을 갖는 것은 좋지 않지만 전혀 없을 수도 없나 보다. 내가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닌데 신경이 쓰인다. 더 문제는 녀석은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스타일이라 더 걱정이 된다.
멀쩡하게 직장도 다니고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하고 노래도 잘하고 기타도 잘 치고 뭐 하나 모자랄 것이 없는 그가 유독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지난번 연애도 해프닝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녀와 헤어진 후로 꽤나 가슴앓이를 했었다. 20년 넘게 곁에서 그를 지켜봤지만 그는 내가 봤던 사람들 중에 가장 순수한 사람이다.
편견 없이 순수한 감정으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 같지만 드문 일이다. 나의 사랑은 어떤가? 사랑해서 필요한 것일까? 필요하니 사랑하는 것일까? 사랑해서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우리는 필요해서 사랑하기도 한다. 필요를 나쁘게 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부부는 서로 굉장히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필요가 절실해서 더 사랑이 깊어지는 것 일 수도 있다.
경제적 필요, 정신적 필요, 육체적 필요, 그래서 그 필요가 없어지면 사랑이 식기도 하나보다. 적어도 그는 필요가 먼저인 사랑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랑만 하다가 죽는다면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의 형태보다는 훨씬 더 많은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이 나올 것 같다.
사랑의 절정
2013년 2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남, 녀간의 사랑 에로스의 절정은 언제일까? 남, 녀가 만나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연애를 하고 스킨십을 한다. 보통은 스킨십의 절정이 섹스라고 생각하고 연애의 완성은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로 아이가 태어나고 가족이 탄생한다.
사람마다 에로스의 절정은 다르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순간이 에로스의 절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설레는 감정으로 처음 손을 잡은 날이 에로스의 절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 애가 타는 그 감정이 에로스의 절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순수한 설렘으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감정이다. 플라토닉 러브라는 말처럼 육체가 동반되지 않은 사랑도 에로스로서의 충분히 아름다운 가치가 있다. 육체적 쾌락은 영원할 수 없다. 쾌락은 짧다. 항상 쾌락적이고 영원히 쾌락적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
스킨십은 중요한 사랑의 행위다. 특히 연인과 부부의 스킨십은 더 그렇다. 스킨십=섹스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스킨십을 빙자하며 악용하거나 남용해서도 안된다. 스킨십은 묵혔다가 한 번에 하는 빨래가 아니고 매일 조금씩 자주 해야 한다. 섹스는 쾌락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조절을 해야 한다. 모든 쾌락적인 것은 중독의 위험이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설렘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힘든 것 같다. 설렌다는 것은 귀한 감정이다. 흥분된다는 것과는 다르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정이 설렘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