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아내와 딸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티키타카 하며 크고 작은 언쟁을 벌인다. 주제도 다양하다. 의, 식, 주를 비롯해서 학습, 경제, 문화 모든 것이 대상이고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다. 아내는 딸의 모든 것에 관심이 많고, 딸은 모든 것에 관심을 끊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언쟁의 끝판왕은 학원 출결사항과 등원 시간이다.
가끔 학원을 빠지기도 하고 지각을 하는 딸이 엄마는 못마땅하다. 엄마의 기준으로는 이해가 안 되고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결석은 당연히 안되고 5분만 일찍 출발하면 늦지 않은데 왜 그렇게 자주 지각을 하느냐는 것이다. 딸의 마음도 이해한다. 학원을 안 가는 것도 아니고 5분 정도 지각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큰 죄냐는 말이다. 사실 나로서는 딸이 학원 잘 가고 제 때 집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할렐루야 아멘이다.
아내의 말도 맞다. 5분만 일찍 서두르면 허둥되지 않고 여유롭게 학원에 도착하고 공부를 하는데도 집중을 잘할 수 있는데 왜 항상 5분을 늦느냐며 닦달한다. 내가 괴로운 것은 모녀간의 배틀이 매일 반복된다는 것이다. 매일 이 광경을 지켜보는 나는 점점 예민해지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어느 때는 모녀지간에 살벌할 정도로 서로 디스를 하며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 보다 못해 내가 중재를 하지만 소용없다.
희한한 건 다음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시추에이션이다. 저 정도 배틀이면 며칠은 말도 안 하고 분노가 있을 법도 한데 평온한 일상은 계속된다. 서로 이해를 한 것인지 갈등이 잠시 수면아래로 가라앉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싸우면 며칠 동안 말도 하기 싫어서 묵언수행(默言修行)하는데 모녀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성별의 차이인지 성향의 차이인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의 딸과 아들,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새처럼 엄마를 쳐다보고 있다. 아들 옷은 왜 이렇게 큰 건지...... 물려 입은 옷이 아니고 돈 주고 산 옷이다.
엄마는 고무대야를 끌며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다. 지금도 늦은 밤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매일 마중 나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참고로 엄마는 면허증이 없다
예전에는 모녀간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애썼지만 지금은 포기했다. 잘못하면 결국 한쪽에게 역적이 되기 때문에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들어도 못 들은 척 슬그머니 빠진다. 적당한 타이밍에 위급해 보이는 쪽에게 격려의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힘의 균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쏜살같이 동네 앞산으로 도망쳐야 한다. 더 이상 휘말리면 안 된다. 주의할 점은 소리 없이 슬그머니 빠져나가야 한다. 계획에 있었던 산책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가야 한다. 상대에게 도망가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
성적이 잘 나오는 학생들은 대체로 정해져 있지 않나 싶다. 공부가 정말 재미있는 아이거나, 재미는 없지만 열심히 해서 성적이 잘 나오는 아이들이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열심히 하다 보니 성적도 오르고 성취감도 생겨서 재미를 붙이는 경우가 더 많다. 최상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최선은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상보다 최선이 더 값진 것일 수도 있다. 최상은 재능이고 최선은 노력이다.
공부와 결혼의 닮은 점이 무엇일까? 둘 다 억지로는 안된다. 억지로 하는 것은 한 계가 있다. 주위에서 권유하고 제공하고 지원하고 지지해 줄 수는 있지만 본인이 하지 않겠다고 하면 될 수 없다. 문제지를 아무리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학원으로 가혹하게 뺑뺑이를 돌려도 본인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연애나 결혼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주위에서 좋은 사람을 소개해줘도 억지로 될 수 없다. 마음이 동(動) 해야 하는 것이다. 공부도 결혼도 알아서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뚜렷하고 확고한 자기의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공부가 어떤 사람에게는 쉬운 것이 될 수도 있듯이 연애도 결혼도 수월한 사람들이 있다. 동기부여를 하거나 자극을 주는 것도 방법이긴 하나 모두에게 통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한편으로 그런 생각도 해본다.
최상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것이고, 최선은 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렇게 천진스러웠던 아이들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지금 방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이 정녕 그때의 우리 아이들이 맞단 말인가?
얼마 전 늦은 밤 학원에서 돌아오던 길에 우연히 같은 같은 버스를 타게 된 남매. 서로 모른척하고 집으로 왔다고 한다. 요즘 딸이 동생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 " 야, 꺼져"
소통전문강사 김창옥 님은 강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아내(엄마)는 옳은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가 있다"
농담처럼 한 말 같지만 메시지가 있다. (몰론 아빠, 남편들도 해당되는 말이다.) 말에도 솜씨가 있어야 한다. 잘 표현하는 것은 말의 기술이고 기술은 연마 하면 습득된다. 그래서 항상 옮은 말을 하지만 표현의 기술이 부족해서 엄마의 말은 듣기 싫은 것일 수도 있다. 엄마가 서비스 직종은 아니지만 삭막한 언어보다는 달달한 언어가 듣기 좋을 것이다. 물론 현장에 뛰는 엄마들은 매일매일이 전투인데 달달한 말이 나올 수가 없다는 말도 충분히 공감은 한다.
그래도 최대한 노력은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노력하지 않는 부모가 어찌 자식에게만 노력을 하라고 강요할 수 있겠는가? 남편이나 아빠도 노력해야 한다. 부모도 부모 교육을 받고 훈련해야 한다. 의사가 배만 잘 가른다고 명의가 아니듯이 아빠가 돈만 많이 벌어 준다고 장땡이 아니다. 아이들도 바르고 따뜻하게 키워야 한다. 공부는 못해도 인성은 제대로 되게 키워야 할 것이다.
나는 몇 점짜리 아빠일까? 나는 좋은 아빠도 아니고 나쁜 아빠도 아니고 "그냥 아빠"다. 내가 추종하는 아빠의 상(像)이다. 아빠의 책임도 역할도 사랑도 "중간만 하자"는 중간주의자....... 좌우지간 모녀지간의 배틀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 인가? 귀추가 주목된다. 아내는 나와 싸우랴, 딸이랑 싸우랴 바쁘다, 바빠.
멘탈 갑(甲)이다. 갑(甲) 중의 갑(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