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못한 거라도 있어? 표정이 왜 그래?”
어제부터 아내의 굳어 있는 표정과 딱딱한 말투에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아서 한마디 했다.
“너무너무 힘든데 쉴 수가 없잖아.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단 말이야”
아내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차라리 말을 하지 말 것을 그랬나 보다. 짧은 정적이 흘렀고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딱히 내가 해결해 줄 것도 없으면서 감정만 격하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3일 전부터 계속 열이 난다. 오늘도 열이 내리지 않고 있다. 아내도 기침이 심하다. 아내도 계속 약을 먹고 있다.
“힘들면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되잖아.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도와준다고 했잖아. 혼자서 끙끙 앓는다고 해결되? 이게 뭐야 당신은 당신대로 힘들고, 나는 나대로 기분만 상하고. 대화를 해서 방법을 찾아봐야지”
나는 지극히 원론적이고 교과서적인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직장생활 힘드시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열심히 하셔야죠. 다들 그렇게 사는데요. 뭐”
"다들 힘드니 스스로 알아서 이겨내며 살아라." 하는 식의 말은 당사자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퇴근 후에 친구와 소주 한잔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차원이 아닌 것 같다. 아내는 내게 위로의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솔직히 아내가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더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도 많은데, 왜 그렇게 힘겨워할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아내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더 강하고, 튼튼한 머신으로 살아주기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 사람이 지금 힘들어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상황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엄살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약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럼 애들 데리고 장모님한테 며칠 다녀와. 오랜만에 언니 얼굴도 좀 보고. 내가 내일 OO 이는 병원에 데리고 가고 OO 이는 밥 챙겨 먹여서 어린이집 보낼 테니까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 난 정말 괜찮으니까”
나는 아들을 안고 집을 나섰다. 가까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열감기 같으니 며칠 지켜보자고 한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처방을 내렸다. 나머지는 힘들어도 아내가 견디어 주어야 한다. 내가 아무리 아내를 위해 노력해도 아내를 돕는 것엔 한계가 있다. 아빠의 역할이 있고 엄마의 역할이 있다. 오늘도 야근을 하고 집에 왔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다. 회사보다 집이 편해야 할 것 아닌가? 많은 아버지들이 퇴근시간이 돼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여기저기 반기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집이 불편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집에 쉴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출산과 육아.
참 어렵고 힘들다. 남들은 쉽게 아이를 낳고, 쉽게 아이를 키우는 것 같은데, 역시 내가 겪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 보다. 험난한 세상 살면서 눈물 한 번 흘리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든 상처도 있고 아픔도 있다. 대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져서 독서실에서, 군대에서 야간근무를 서며 초소에서, 직장상사에게 깨지고 난 후 화장실에서, 부모님의 임종을 맞이하며 병원복도에서.......
눈물을 흘릴 일도 많다. 그 정도의 눈물은 다 흘리며 살겠지만 그래도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더 공감해 주어야 한다. 어쩌면 이 정도의 눈물은 사치 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가? 아내는 눈물을 닦으면서도 세탁기 위에 놓여있는 빨랫감을 정리했다. 깊은 한숨이 나오고 코끝이 찡해 온다.
뻔한 위로라도 해야 하는데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아내의 모습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차라리 내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대신해 주겠건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동안 내가 너무 아이들에게만 신경을 쓴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한 때는 24시간 아내만을 생각하던 때도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