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J Dec 10. 2023

아빠의 일생

아빠의 일생

2012년 7월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104년 만의 가뭄이라며 온 나라가 떠들썩하더니, 오늘은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걱정이다. 적당히 필요할 때마다 한 번씩 내려주면 좋으련만, 적당하다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보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다 그런 듯 싶다. 적당하다는 것, 평범하다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들이 갖고 놀았던 블록을 치우기 시작했다. 어느덧 아빠 생활 5년 차에 접어들었다. 가끔 육아와 양육이라는 즐거움과 힘겨움이 공존하는 이런 일상이 지치기도 한다. 미운 짓을 많이 하는 첫째 딸과 이제 걷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말썽을  부리기  시작하는 둘째 아들.


늘 감사하고, 기도하며 살고 있지만 아빠이기 전에 인간이라 애들이 미울 때도 있고 짜증이 날 때도 있다. 그러한 최적의 타이밍에 아내까지 나를 괴롭히면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어쨌거나 힘들어도 우리는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어렸을 때도 어른이 되어서도 결론은 같다. 극복 아니면 굴복이다.






아내가 요즘 많이 지쳐 보인다. 덩달아 나도 힘이 빠진다. 아내가 미울 때도 있지만 사랑스럽고 고마울 때도 많다. 대부분 남편들의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좀 더 이해하고 사랑해야 하는데 나도 여러 가지로 미숙하고 부족하여 아내에게 미안한 것이다.


문득 아빠의 인생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의 뺨에 얼굴을 비벼 본다. 혹시 간밤에 아파 열이라도 나지 않는가? 그리고 기저귀를 만져본다. 오줌을 쌌으면 서둘러 갈아줘야 한다. 기저귀 발진이 생길 수도 있고, 감기에 걸릴 수도 있다.


어지럽혀져 있는 책상을 정리하고 서둘러 세수와 양치를 한다. 아침은 간단하게 스스로 챙겨 먹는다. 둘째가 태어난 후 아침상을 아내에게 받아본 기억은 없다. 아내에게 많은 것을 요구해선 안된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는다.


북적대는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출근하여 차를 한잔 마신다. 커피잔에 온기가 없어지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리고 업체에서 작업 진행 상황을 묻는 독촉 전화가 온다. 왼손에 커피잔을 쥐고 오른손엔 마우스를 쥐고 마우스를 클릭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숨 가쁜 하루가 시작되고 점심을 먹고 비슷한 오후가 시작된다. 무료함을 잊기 위해 라디오를 켜본다. 하루 중 가장 지루한 시간, 4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고,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다. 집에 전화를 한다.

“여보, 오늘 약속도 야근도 없다. 바로 집으로 간다.”


전화를 끊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보지만 집중력은 이미 많이 떨어졌다. 천천히 일을 하면서 틈틈이 웹서핑을 한다. 주식시장은 어떤가? 대통령선거도 다가오는데 무슨 얘기들을 하는지, 딸과 물놀이를 가야 하는데 어디가 좋을지.


유난히 퇴근길에 소주 한잔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러나 딱히 눌러볼 전화번호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들 너무 바쁘다. 내가 시간이 났다고 상대방도 시간이 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누르기가 더 망설여진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긴장 속에 있다가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이번에 아이들과 씨름이다. 물론 아내의 하루도 만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저녁은 서로가 지쳐 있는 시간이다.





가끔 아내는 내가 밖에서 놀고 온 것인 양 내게 잔소리를 하며 투정을 부리는데, 나도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왔다. 아이들의 떼를 받아주는 것도 힘든데 거기다가 아내까지 고집을 부리면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다. 전쟁을 치르듯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샤워를 하는 둥 마는 둥 얼른 끝내고 잠자리에 든다.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딸은 틈을 주지 않는다. 영어놀이를 하자며 보채고,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늦은 밤에 노래를 불러댄다. 동네 사람들은 이젠 딸의 고성방가에 포기를 한 듯싶다. 그러나 딸의 노랫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도 잠깐이다. 눈을 떠보면 어느새 아침이다.


그렇게 하루가 간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의 반복이다.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대부분 아빠의 인생은 이렇다. 행복이기도 하고 고난이기도 한 아빠들의 인생. 성경말씀에도 있지 않던가?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행복을 주면 그만큼의 노력과 희생도 주신다. 세상 어떤 것을 둘러보아도 다 좋은 건 없다. 그것은 진리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안하고 고맙고, 열정, 다시 감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