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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Sep 29. 2024

중년의 성(性)

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므로 자유롭고 건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지만 내게는 여전히 어색하고 쑥스럽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쓸 때 이런 마음가짐으로 글을 쓴다. 우리 아이들이 스무 살, 서른 살쯤 되었을 때 아빠의 글이 도움이 되기 바라고, 마흔 살 쉬흔 살이 되면 아빠를 기억하는 글로 남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들이 읽어도 부끄럽지 않고 솔직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청년의 성과 중년의 성은 경험을 해보았으나 노년의 성은 모르겠다. 중년까지의 성()과 성생활에 대한 생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중요하다. 핵심만 얘기하면 성은 중요한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별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만 남편들도 아내들도 그것을 간과하고 있다.


성욕도 변한다. 20대에 성욕이 왕성했다가 30대부터 성욕이 줄어들 수도 있고 반대로 30대 40대로 갈수록 성욕이 점점 왕성할 수도 있다. 노년은 되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피지컬은 퇴화하나  욕구는 더 왕성해질 수도 있다고 본다. 신체적 나이와 성욕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성관계를 자주 해야 한다는 말과는 또 다른 것 같다. 모두 개인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변화무쌍한 것이다.



20대의 성관계의 의미와 30대, 40, 50대의 성관계의 의미는 그때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다. 본질은 같겠지만 삶(생활)에 미치는 영향력, 비중다를 수 있다. 쉬운 예로 사회적으로 부, 명예 모든 것을 이룬 사람들이 배우자와 섹스리스로 이혼을 하는 경우도 흔하다. 모든 것을 다 이룬 그(he, she)에게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이 섹스인데 그것이 없는 것이다.


성생활 없이도 잘 사는 사람이 있고 성생활 없이는 못 사는 사람도 있다. 청년의 섹스와 중년의 섹스 그리고 노년의 섹스는 모두 중요하다. 그 말은 섹스를 접하는 태도와 자세와 마음 가짐도 비슷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일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음란물을 보면서 섹스를 경험하지 않아야 하고, 단순 호기심으로 첫 섹스를 경험해야 하지 않아야 한다.


호기심으로 섹스를 경험하면 계속 섹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수 있다. 그러면서 애인이 있어도 바람이 나고 배우자가 있어도 외도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섹스는 호기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고 좋아해서 하는 것이다. 그것이 디폴트 값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일단 그런 생각을 깔고 가야 한다.


그래도 호기심으로 섹스를 하는 사람도 있고 별생각 없이 섹스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연인 간의 성관계는 선택이지만 부부간의 성관계는 의무이기도 하다. 이것도 모두가 아는 얘기지만 역시 간과하고 있다. 잠자리를 하기 싫어도 배우자를 위해서 어느 정도는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 아내 모두 마찬 가지다. 살다 보면 무던해지고 무감해질 수 있으나 명심해야 한다. 배우자에게는 섹스와 스킨십이 너무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잡은 물고기도 계속 먹이를 주어야 하는 이유다. 따뜻한 말과 따뜻한 스킨십이 결혼 생활 내내 필요한 것이다.



얼마 전 손석희 씨가 진행하는 "질문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배우 최민식이 나와서 인터뷰를 한 내용이다.


손석희: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습니까?"


최민식 : "멜로영화의 주인공을 해보고 싶습니다. 오래전에 상영했던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를 인상 깊게 봤습니다"


대충 이런 인터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영화 "죽어도 좋아"는 2002년에 상영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데 각자 사별한 일흔이 넘은 노인들이 만나 사랑에 빠져서 섹스도 즐기며 외롭지 않게 산다는 이야기다. 2002년 내 나이는 서른 즈음이었다. 세간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던 영화이지만 나는 보지는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약간 어색하고 한편으로는 망측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중년의 성, 노년의 성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젊었을 때는 노년의 성이 "주책맞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내가 중년이 되고 보니 너무도 편협한 생각이었다. 노인의 성도 충분히 즐길 권리가 있고 중요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또 다른 편견에 빠져있는 것은 없는가? 생각을 해 본다. 내가 노인이 되어보지 않고는 노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것이다. 지금은 노망이 아니라 로망이 되어버린 노년의 성이다. 생각은 늘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노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노년의 성은 더 활발해질 것이다.


비례해서 노인 범죄, 혹은 노인 성범죄도 늘어 날 수 있다고 본다. 인구가 증가하면 좋은 사람도 늘어나고 나쁜 사람도 늘어나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성관계없어도, 성을 몰라도 잘 살고 행복했는데 어른이 되면 왜 성행위를 못해서 그렇게 안달이고 성범죄까지 일어나는 것일까?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일까?


차라리 몰랐으면 모르는 데로 살아가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평범한 행복을 누리기란 참 어려운 것 같다.  성은 쾌락적이어서 그럴까? 돈은 탐욕 때문일까? 돈이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부, 명예를 얻는 답시고 너무 꼴값 떨지 말아야 한다. 우리 인간은 먹고, 자고, 배설하고, 섹스하는 본능 앞에 이성과 정신력은 힘없이 무너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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