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 3종세트

by JJ

밥 먹고 설거지하고 밥 먹고 설거지하니 밤이 되었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지나간다. 우스개 소리로 여자는 밥 하다가 싱크대 앞에서 죽고, 남자는 일하러 나가면서 신발끈 묶다가 죽는다는 말을 하던데 이제 그것도 옛말이 된 것 같다. 요즘은 남, 녀가 하는 일에 구분이 없다. 남성들도 애 낳는 거 빼놓고 여성들이 하는 모든 일들을 한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다.


나의 어머니는 어림잡아 60년 동안 설거지를 하신 것 같다. 주말에 한두 번 설거지를 하는 나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숫자와 세월이다.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곤 하는데 60년간 설거지를 하신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것을 깨달으셨을까 싶다. 그래서 많이 배우시지는 못했어도 지혜로우셨나 보다. 60년간 한다는 것은 아무리 미비한 일일지라도 그 자체로써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요리, 빨래, 설거지 3종세트는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 하는 일이다.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A, B, C 다. 밖에 나가서 아무리 폼 잡고 다녀도 이 3종세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밖에서 골프 치고, 영화 보고, 한우 소고기 먹는 사람들보다 집에서 빨래, 설거지하는 사람이 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자가 하든 여자가 하든.






오랜 시간 동안 외벌이 가정이었던 우리 집은 자연스럽게 아내의 영역과 남편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었다. 전업주부는 집안일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집안일을 할 수 있다. 물론 주말에는 나도 집안일을 함께 한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고 이기적이어서 주말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무엇이든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된다고 생각한다. 산책에 의미를 부여하면 산책이 의미가 있는 것이고, 독서에 의미를 부여하면 독서가 의미가 되는 것이고, 뜨개질에 의미를 부여하면 뜨개질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고로 설거지에 의미를 부여하면 설거지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빨래나 청소를 싫어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청소를 하고 나면 약간의 희열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귀찮고 더러운 일일수 있지만 나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김춘수님의 "꽃"이라는 시에서도 말하지 않던가? 꽃이라고 불러주면 꽃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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