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잠이 좀 부족해서 그런가?' 아니면 '며칠 힘들게 일을 해서 그런가?' 이리저리 이유를 찾아보지만 언제 왔는지 모를 슬럼프는 이유도 정확히 말하기가 어렵다. 왜 슬럼프가 온 것 같으냐는 질문에 "일은 많은데 성과는 잘 나지 않는 것 같고,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라고 답한다.
답은 명쾌하게 나오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일을 했다고 무조건 슬럼프가 오는 건 아니다.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슬럼프가 꼭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아도 잘 버틸 때가 있고, 성과가 나지 않아도 씩씩하고 우직하게 시간이 쌓이는 걸 기다리기도 한다. 그런데 어째서 예고도 없이, 공식도 없이 슬럼프가 찾아올까?
까치발을 하고 팔을 높이 들어도 손가락 끝에 잡히지 않는 물건이 있을 때는 있는 힘을 다 쥐어짜서 몸을 뻗어본다. 그러다 운 좋으면 한 두 번 만에 물건을 집어 내리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주저앉아 쉬었다가 다시 팔을 뻗어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해도 안 되면 의자를 가져오던지 막대를 가져오던지 차선책을 찾는다. 어쨌든 손끝에 닿을락 말락 하는 그것이 꼭 필요하다면 시간이 걸릴 뿐 우리는 결국 손에 넣고 만다.
슬럼프가 왔다면 손끝에 닿아있는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 두 번 만에 손에 넣으면 좋은데 주저앉아야 한다면, 그때가 바로 슬럼프가 찾아오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펑펑 울며 포기해버릴까 생각도 하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나서 손을 뻗어 보는 것. 그게 우리가 슬럼프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깊은 좌절을 경험할 때 우리는 더 성숙해진다.
내면에 있는 진짜 원하는 것을 돌아보기도 하고,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했나 고민하기도 하면서
자신을 짓눌렀던 슬럼프를 이리저리 관찰한다.
극복 방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 광활한 우주에, 그중에서도 수많은 별들 중 하나인 지구에, 지구의 수많은 사람들과 문제들 중 하나인, 모래알만큼 작을지도, 먼지 같을지도 모르는 현생의 이 순간 이 슬럼프가 생각보다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
불쑥 어깨에 들러붙은 이 녀석을 떼어내는 일은 제법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것마저 느끼는 사람의 주관에 달린 문제지만 멀찌감치 떼어놓고 보면 먼지 같을지도 모르는 찰나의 순간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