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되지 않은 사회 - 에필로그

공간은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 말에 응답하고 있는가?

by 찬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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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되지 않은 사회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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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되지 않은 사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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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감정을 품은 공간, 사람을 담은 도시

: 건축으로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완성된 건축가가 아니다. 건축의 여러 과정 속에서 조금씩 배워나가는 중이며, 내가 하는 일은 대부분 다른 이들의 결정을 곁에서 지켜보고, 그 흐름을 정리하며 이해하는 일에 가깝다. 도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 적도 없고, 프로젝트 전체를 내 손으로 끌어간 적도 없다. 내가 맡는 일은 대체로 작은 보고서와 자료, 혹은 그날그날 필요한 정리다. 그러나 바로 그 작은 일들 속에서 나는 건축을 배운다.


때로는 선배들이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보며 놀란다. 그들의 손끝에서 단 몇 시간 만에 하나의 방향이 도출되는 것을 보며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이 든다. 나는 과연 그만큼의 속도와 감각을 가질 수 있을까? 그들의 눈에 비친 수많은 선택의 기준이 내겐 아직 낯설고 무겁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나는 내 나름의 속도로 과정을 음미하려 한다. 느리더라도, 그 느림 속에서 얻는 것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나는 과정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다. 한 줄의 문장을 고치며 오랜 시간을 보낼 때가 있고, 작은 공간의 창 하나를 어떻게 열어야 할지에 대해 집착한다. 때로는 이 습관이 전체를 보지 못하게 만들고, 마감에 쫓기게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성향이 언젠가는 내 강점이 되리라 믿는다. 건축은 결국 작은 요소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일이다. 작은 부분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 태도는, 결국 더 큰 건축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은 언제나 결과를 요구한다. 건축은 큰 돈이 오가는 작업이고, 클라이언트는 언제나 일정과 비용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 앞에서 과정은 사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과정이야말로 건축을 깊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과정을 통해 배우고,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며, 과정을 통해 건축가로서의 감각이 조금씩 자라난다. 결과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결과와 과정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든 붙잡고 싶다.


나는 아직 느리다. 그러나 그 느림 속에서 배운다. 보고서를 쓰며 사고의 순서를 배웠고, 도면을 곁에서 보며 결정을 내리는 눈을 조금씩 익혔다. 회의에서 오가는 언어들을 들으며, 건축이 단순히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이런 경험들이 아직은 미약하고 작지만, 그것들이 쌓여 나를 건축가로 만들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배움 속에서 태어났다. 나는 아직 완성된 답을 내놓을 수 없다. 다만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뿐이다. 왜 우리는 공간을 바꾸었는데도 삶은 그대로일까? 왜 효율과 제도가 사회를 지배하면서도, 사람들의 감정과 권리는 늘 뒷전일까? 건축은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아니면 결국 그 사회를 반영할 뿐인가? 나는 이 질문들에 명확히 답할 수 없지만, 질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가능성을 믿는다.


내가 쓴 글은 정답이 아니라 기록이다. 배움의 과정 속에서 흘려 쓴 메모 같고,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의 흔적과도 같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질문이 있는 사람은 아직 길 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질문을 잃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건축을 꿈꿀 수 있다.


아직은 멀다. 그러나 멀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겸손하게 하고, 다시 앞으로 걸어가게 만든다. 건축은 완성된 답이 아니라,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길을 찾는 과정일 것이다. 나는 지금 그 질문 속에 서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고백일 것이다.


나의 고민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건축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건축가들이 같은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을 찾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어떤 이는 건축을 힘으로 만들었고, 어떤 이는 시로 만들었으며, 또 다른 이는 존중으로 만들었다. 나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배우고, 또 나의 길을 찾으려 한다.


안도 타다오는 일본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그의 건축은 언제나 투쟁과 같은 긴장감을 품고 있다. 거칠게 다듬어진 콘크리트, 날카롭게 잘린 빛의 선,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압도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빛의 교회에서 사람들은 침묵 속에 몰입하고, 물의 교회에서는 경건한 시선으로 빛을 따라간다. 그의 건축은 분명 위대하다. 그러나 그 위대함 속에서 나는 어떤 강압을 느끼기도 한다. 감탄과 경외가 동시에 불편한 침묵을 만들어내는 순간, 나는 그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동시에 길들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건축은 사람을 압도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압도감이 건축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이타미 준은 그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제주도의 바람, 물, 돌을 품은 그의 건축은 조용한 시와 같았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위로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건축을 통해 자연을 새삼스럽게 느꼈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물의 소리와 스며드는 바람은 누구에게나 잔잔한 평화를 선물했다. 나는 그의 건축 속에서 건축이 반드시 거대할 필요는 없음을 배운다. 때로 건축은 바람처럼 스며들고, 그림자처럼 머무르며, 눈에 띄지 않게 사람을 감싸는 것이어야 한다.


알바로 시자는 또 다른 길을 보여주었다. 그는 크지 않은 건축으로도 사람들의 존엄을 지켜냈다. 사회주택을 설계하면서 그는 가난한 이들의 삶을 존중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인간적인 공간을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는 그것을 통해 건축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건축은 상징이나 기념비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 그 자체라는 사실. 그의 건축은 누군가를 압도하지 않았고, 시적인 풍경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대신 조용히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며 존중을 실천했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건축을 남겼다. 사회는 그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억했다. 안도의 건축은 경외와 불편함을 동시에 남겼고, 이타미 준의 건축은 위로로 기억되었으며, 시자의 건축은 존중으로 기억되었다. 나는 그들의 길에서 배우지만, 동시에 나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느낀다. 나는 사람을 침묵하게 만드는 건축이 아니라, 목소리를 열어주는 건축을 원한다. 나는 한 사람의 감정을 위로하는 건축을 넘어서, 공동체 전체의 감정을 위로하는 건축을 꿈꾼다. 나는 존중의 건축을 바탕으로, 그 존중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기를 바란다.


건축은 늘 사회와 함께 평가받는다. 어떤 건축은 권위의 상징으로 소비되고, 어떤 건축은 예술의 이름으로 존중받는다. 그러나 진정한 건축은 사회를 바꾸고 사람들을 새롭게 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나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지만, 이들의 발자취 속에서 나만의 길을 조금씩 더듬는다. 압도 대신 공감, 위로 대신 가능성, 존중 위에 희망을 더하는 길. 그것이 내가 찾고 싶은 건축가의 길이다.


건축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우리는 흔히 건축을 도시의 거대한 랜드마크, 유명 건축가가 지은 박물관이나 성당, 화려한 타워 같은 상징적 건물로 떠올린다. 그러나 건축은 그런 드러나는 상징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아침에 눈을 떠 바라보는 천장, 창가로 스며드는 빛, 출근길에 걷는 보도블록의 질감, 카페의 의자에 앉을 때 느끼는 편안함과 불편함까지. 이미 당신은 매일 건축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건축을 단순히 “전문가의 영역”으로 밀어내지 말았으면 한다. 건축은 당신의 삶의 조건이고, 당신의 권리를 담는 그릇이다. 휠체어가 오르내릴 수 있는 경사로는 단지 장애인을 위한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모두의 이동을 인정한다는 표시이고,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다. 병원 대기실의 의자가 차갑고 불편하다면, 그것은 단순히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 불안한 감정을 방치하는 태도의 문제다. 당신이 경험하는 공간의 크고 작은 조건이 곧 당신의 삶을 규정한다.


건축은 감정을 설계한다. 당신이 어떤 공간에서 위로를 느꼈다면, 그 공간은 단순히 기능적인 목적을 넘어 당신의 감정을 어루만진 것이다. 반대로 어떤 공간이 불편하고 차갑게 다가왔다면, 그것은 이미 그 공간이 당신의 감정을 소외시킨 것이다. 공간은 늘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어떤 장소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이유를 곱씹어 본다면, 거기에는 건축적 언어가 숨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바란다. 당신이 건축을 “내 삶과 무관한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매일의 경험”으로 받아들이기를. 당신이 살아가는 집, 일하는 공간, 머무는 길거리, 앉는 의자 하나까지 모두 건축이다. 그것이 편안했는지, 불편했는지, 존중받았다고 느꼈는지, 배제되었다고 느꼈는지. 당신의 감각이 곧 건축에 대한 가장 진실한 평가다.


건축은 건축가만의 것이 아니다. 건축은 사용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당신이 그 공간에서 살아가고, 기억하고, 웃고, 울 때, 건축은 비로소 완성된다. 나는 건축가가 되고 싶지만, 동시에 나는 믿는다. 건축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이 책이 건축가의 글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질문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건축은 삶을 설계한다. 그러나 삶을 설계하는 건축가는 건축가들만이 아니다. 당신 역시 당신의 삶을 설계하는 건축가다. 당신이 어떤 공간을 선택하고,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감정을 지켜내느냐가 곧 당신의 삶의 건축이 된다. 건축은 곧 삶이고, 삶은 곧 건축이다.


나는 언젠가 도서관이나 전시관 같은 문화 시설을 짓고 싶다. 성당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붙드는 공간, 풍경 좋은 곳에서 사람들의 삶을 넓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내가 바라는 건 단순히 멋진 건축물이 아니라, 그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책을 읽으며 마음이 차분해지고, 전시를 보며 세계를 새롭게 보고, 빛이 스며드는 공간에서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경험. 그것이 내가 건축을 꿈꾸는 이유다.


나는 건축이 건축가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건축은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건축가는 다만 하나의 시작점을 열어주는 사람일 뿐이다. 공간을 지나가는 이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건축을 완성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짓고 싶은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짓고 싶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나는 다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나는 무엇을 설계하고 싶은가? 우리는 무엇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이 질문은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것이기도 하다. 건축은 삶의 조건이 되고, 권리가 되고, 감정이 되고, 가능성이 된다. 당신이 어떤 삶을 원하느냐에 따라 당신이 경험하는 건축도 달라질 것이다.


건축은 단순히 벽과 지붕을 세우는 일이 아니다. 건축은 사람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힘을 가진다. 나는 아직 부족하고, 여전히 배우는 길 위에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건축이 희망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희망은 건축가만의 힘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드는 것임을.


이제 나는 당신에게 건네고 싶다. 당신도 자기 삶의 건축가라는 사실을. 당신이 매일 살아가는 공간이 곧 당신의 삶의 설계도다. 문턱 하나를 낮추는 선택, 창 하나를 열어두는 선택, 서로를 존중하는 자리 하나를 마련하는 선택이 모여 우리의 사회를 새롭게 만든다. 당신이 어떤 가능성을 꿈꾸느냐가 곧 우리 모두의 건축을 바꾼다.


나는 여전히 배움의 길 위에 있지만, 동시에 꿈꾸는 길 위에 있다. 건축이 희망을 짓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믿으며, 언젠가 내가 만드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웃고 울고 위로받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책이 작은 질문의 시작으로 남아, 당신의 삶 속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가기를 바란다.


건축은 곧 삶이다. 그리고 삶은 곧 건축이다. 우리가 함께 짓는 삶이 곧 우리가 함께 짓는 사회일 것이다. 나는 언젠가 그 사회의 한 벽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당신 또한 그 사회를 함께 짓는 건축가이기를 바란다.


2025년 어느 무더운 날,

이 책을 끝까지 읽어준 독자들과

미래의 건축가인 나 자신에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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