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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버리지 못한다

by lululala


너를 버리지 못한다



구석에 잔뜩 웅크린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너를 본다

늘어가는 주름살에

너는 얼굴을 펴지 못하고,

생기를 잃은 모습에

더는 눈길이 가지 않는다



어릴적 너는,

언제나 나와 함께였다
비에 흠뻑 젖은 거리도

눈이 소복이 쌓인 산길도

말없이 나와 함께 했다

어느새 낡아버린 몸.
안팎으로 해진 너를 볼 때마다
미안함이 밀려온다


온통 새것으로 반짝이는 세상에서
너는 너무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볼품 없는 모습이 부끄러워

더는 고개를 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너 없이는 이 길을
걸어올 수 없었음을


그래서,

나는 너를 버리지 못한다


닳아버린 밑창만큼

나를 대신해 거친 길을 견뎌준,

내 지친 하루를 묵묵히 지탱해 준,


오랜시간 나와 함께 걸어온

낡은 신발을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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