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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Sep 29. 2023

그때 그 시절12(연재)

12편 자치기

야구나 축구, 수영, 승마, 볼링은 고급 운동 종목이다. 그러나 그런 놀이가 없었어도 친구들끼리 모이면 그보다 더 재미있게 게임을 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여러 명이 할 수 있는 자치기가 있다.


두 팀을 만들어 타이틀은 두당 쇠 구슬 1개와 유리구슬 백 개다. 나는 이미 쇠 구슬 두 개 확보, 신발 주머니에 그동안 모여놓은 구슬만 100개 이상이다. 손이 불어 트며 어렵게 모아 놓은 구슬 전부가 털리느냐 마느냐 하는 치열한 게임이다


자치기 룰은 야구와 비슷한 면이 많이 있다. 스트라이크 존 격인 직경 2m 크기 둥근 원안에서 큰 방망이로 작은 막대기를 쳐낸다. 멀리 보낼수록 유리하다.


방망이는 30cm 한 자(尺) 정도고 공으로 쓰는 작은 막대기는 10cm 정도 되며 단단한 나무 양쪽을 비스듬히 엇갈려 깎아 쓴다. 막대기 한쪽을 큰 막대기로 살짝 톡 건드리면 치기 좋게 튀어 올라오게 한 것이다. 메뚜기라고 불렀는데 이해하기 쉽게 공이라 하자.


먼저 양 팀은 몇 자로 끝낼 것인가 정해놓고 먼저 도달하는 팀이 이기는 것이다. 우리는 5000자 걸어놨다. 거리로 약 1.5km다.


한자에 30cm 정도라서 자치기라 하는지 모른다.


공격팀 타수가 원에 들어가 방망이로 왼손에 공을 들고 힘껏 때려 멀리 가게 만든다. 수비팀에서 다행히 받아 그걸 스트라이크 존에 던져 넣으면 아웃이다. 그러나 못 넣었거나 원 안으로 던져진 공을 공격수가 방망이로 내리치면 공격이 계속된다. 공격수가 친 공이 떨어지는 곳에서 시작해 톡 튀는 공을 때려 3번을 간다. 이때 튀는 공에 헛손질하면 아웃이다.


세 번을 성공해 도달했을 때, 거리를 가늠하여 방망이 길이로 몇 개인지를 수비팀에 말한다. 인정하면 그대로 점수에 합하면 되는데 의심이 되면 직접 재 본다. 한자(30cm)라도 적으면 실격, 바로 아웃. 더 나왔어도 불렀던 수만큼만 인정된다.


예를 들어 30m쯤 보내놨으면 10자쯤 되지만 5자를 불렀으면 5자만 점수 인정한다. 최대 근접해서 불러야 손해가 없다 그렇다고 오바하면 아웃된다. 욕심은 금물이다. 


홈런도 있다. 스트라이크 존에 던지는 공을 방망이로 치지 않고 직접 받아서 냅다 튀면 된다. 담을 넘어 약 1.5km만 튀면 바로 이기게 된다. 그러나 수비팀이 운동장 주위에 진을 치고 있어 뚫고 나가기 어렵다. 수비팀에서 터치하면 바로 아웃이다.


우리 팀에 운산리 사는 김형규가 있었다. 키는 작지만, 동작도 빠르고 달리기도 빠르다. 별명이 운산리 오토바이다.


오토바이 형규가 공을 잡아 튀기 시작했다. 운동장 정문과 후문은 이미 수비팀이 진을 치고 있고 튈 곳이라곤 쓰레기장 옆 개구멍이다. 형규는 구석진 쓰레기장 옆에 개만 들락거리는 구멍이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 그 개구멍으로 마치 개처럼 잽싸게 빠져나와 달아나기 시작했다. 홈런이고 대박이다. 오토바이를 따라올 친구가 없다. 어느 정도 달려 지남리까지 왔을때 공을 내려놓고 목표치 5000자를 불렀다.


5000자면 x 30cm ,1500m 되는 거리다. 그걸 인정해 주면 패배 그날은 게임아웃~!


패배를 인정하기 싫으면 직접 재서 5000자가 넘어야 인정되는 데 시비가 생겼다. 달려왔던 다리 건너 물 건너 꼬불꼬한 길을 인정해 주느냐, 아니면 직선거리로 재느냐 하는 것이다. 길이 아닌 직선으로 갈려면 물이 고여있는 논을 가로질러야 한다.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는 합의를 하고 직선으로 재기로 했다.


골프여제 박세리 선수가 양말을 벗고 맨발로 물속에 들어가듯 우리도 맨발로 논에 들어가 재기 시작한다.


중간쯤 재고 있는데 논 주인아저씨가 회초리를 들고 달려와 농사진 것 다 망친다고 야단을 치며 우리를 해산시킨다.


회초리 몇 대 맞고 그날 게임은 허망하게도 파토, 무승부로 경기를 중단했다. 미국에 야구가 있었다면 변산에는 자치기가 있었던 셈이다.


볼링도 50년 전 변산반도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아버지 독 둥그러 가유~” 이 말은 충청도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돌멩이 많은 변산에서 나온 말인 것 같다.


유영곤이라는 친구는 내변산 중계에 살다가 지남리로 이사 왔다.


월명암 등산로 입구(지금의 남녀치 근방) 산비탈에 새집을 지었다. 아직 새집이라서 미완성된 담과 헛간이 있어 작은 돌멩이가 많이 필요했다.


집 주위에는 큰 돌 작은 돌 둥근 돌 네모난 돌이 많아 구르는 재미가 쏠쏠했다. 돌멩이는 집을 완성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산비탈이라서 굴리면 쉽게 굴러갔다.


“아부지 독 둥그러 가유~~~” 말이 끝나자마자 어디서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개구쟁이 몇 명이 산 정상까지 올라가 돌멩이가 아닌 바윗덩어리를 굴려 버린 것이다. 탄력을 받아 속도가 나면서 영곤이네 장독대로 돌진, 12개 장독 중 4개를 해 먹었다. 사람이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소와 친했다. 소 꼴을 베고 소띠 끼고 배가 빵빵하면 돌아오는 냇가나 바닷가에서 소를 씻겨주고 함께 놀다 집으로 돌아왔다. 소가 의외로 수영을 잘 하는 동물이다. 물속에서는 소 등에 올라타다 떨어져도 다치지 않았다. 물속에서 승마 아닌 승마를 연습하고 즐겼다.


길이 안 든 소를 올라타면 놀라서 풀짝풀짝 뛰는 통에 소에서 떨어져 다치기 쉽다. 그런 과정을 거쳐 훈련된 소는 풀밭에서 올라타도 놀라지 않는다 


고삐를 오른쪽으로 땅기면 우회전, 왼쪽으로 땅기면 좌회전, 두 개 동시 땅기면서 워~워 하면 스톱, 두 개 동시 느슨하게 하고 소 엉덩이를 두들기면서 ‘이랴~’ 하면 전진, 쎄게 때리면 악셀레이터, 후진은 할 일이 별로 없어 훈련에서 제외했다.


누구는 수십억을 지원받아 승마를 했지만, 나는 수십 년 전 직접 소를 키워 승마, 아니 승소를 즐겼다.



출처 : 부안독립신문(https://www.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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